개인적인 취향이라 말하면 별 할 말이 없지만 나는 ‘성서’란 표현보다 ‘성경’이란 표현을 더 선호한다. 나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성서’란 성경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이며 ‘성경’은 비판하지 않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는 자들이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성경’이란 한자어로서 ‘거룩한 경전’이란 뜻이다. 동양에서는 오로지 역사적으로 진리 됨이 검증된 책을 ‘경’이라 불렀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진리 됨이 검증된 이 거룩한 책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부른다.
이러한 표현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일까? 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생명의 말씀’ 혹은 ‘살아있는 생명의 하나님의 말씀’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이처럼 성경을 ‘살아있는 생명의 하나님의 말씀’이라 특별하게 대하지만 이 성경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세상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한다.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이 성경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사람의 가치를 달라지게 만드는 유일한 책이다.
다윗은 시편 19편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말했다.
이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가지로 표현 했다. 그는 제일 먼저 성경을 ‘여호와의 율법’이라 불렀는데 다윗에게 성경이 ‘여호와의 율법’이라 불리워질 때 그것은 너무도 완전(완벽)하여 그의 영혼까지도 새롭게 하며, 그에게 성경이 ‘여호와의 증거’라 불리울때는 너무도 확실하여(믿음을 주기에 충분하여) 우둔한 자신으로 하여금 지혜롭게 해주었다 고백한다.
다윗에게 성경이 ‘여호와의 교훈’이라 불려질 때 그것은 정직하여(옳아서) 그의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 주며, 성경이 ‘여호와의 계명’이라 불리우면 순결하여(빛이 나서) 그의 눈을 밝게 해 주었고, 성경이 ‘여호와의 도’라 불릴 때 정결하여(순수해서) 그를 끝도 없는 영원까지 이르게 하였고, 성경이 ‘여호와의 규례’로 불리 울 때 비로서 확실해서(확신하건데) 모두 의로워 다윗은 그 귀한 금, 혹은 정금보다 더 성경을 사모할 것이고 그 성경은 꿀 혹은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표현했다.
다윗이 성경을 이렇게 표현했던 것은 그것이 그 자신을, 그의 삶을, 그의 생각과 영혼까지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성경을 통해 이러한 변화가 없었다면 성경을 대하는 다윗의 이 고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장 4-6절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고 말했다.
이렇게 다윗의 가치를 변화시키는 셩경은 우리에게 교훈(가르침)을 주기위해 기록 되었고, 우리는 인내(참음)로, 그리고 그 성경이 주는 안위(격려)로 소망을 가지게 하여 그 결과로 우리가 하나님꼐 영광을 돌리게 한다고 고백하며 성경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최종적인 목표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중요한 결정을 했다. 따라서 지난 수개월간 나름 최선을 다해 그 일에 매진했다. 물론 주위의 가까운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도 받았다. 성과도 있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으며 가까운 지인들은 그래도 나니까 그 정도 할 수 있었지 자신들은 엄두도 못 내었을 것이라 이야기 했다. 그렇게 한껏 고무되어 있던 순간에 뒤통수를 한대 세차게 두들겨 맞는 일이 있었다.
지난 주, 주위의 사랑하는 선후배 동료 목사들과 함께 일명 “비(Biblical Education By Extension)”라 불리우는 성경연장교육원에서 간행 된 ‘그리스도인의 자녀교육’이란 교재로 성경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일에 매진 하느라 너무도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그만 예습 하는 것을 깜빡 잊고 말았다.
성경공부 당일 아침에야 오늘이 그 날임을 알게 되었고 예습도 안 했는데 참석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러한 내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것은 공교롭게 그날이 그 성경공부교재를 마치는 마지막 날이라 도무지 참석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뒤통수를 세차게 한대 얻어 맞았던 순간은 바로 그날이었다. 연습문제를 함께 하던 중 이런 질문을 얻었다.
‘여러분이 최근에 내린 결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알고 있었습니까? 무엇에 근거해서 여러분의 결정을 내렸습니까? 여러분의 결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한 역할은 무엇입니까?’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의 심장박동수도 올라가고 있음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인도자가 함께 나눌 것이 없냐고 물었지만…. 나는 너무도 부끄러워 차마 지난 수개월 동안 집중했던 그 일의 결정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한 역할이 아무것도 없었음을 고백할 수가 없었다.
목회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란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다. 목사인 내게 성경은 날마다 순간마다 함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내가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목사로서의 나의 가치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다.
하지만 이게 왠 일이란 말인가? 지난 몇 달 동안 심사 숙고해 결정하고 그렇게 신나고 즐겁게 했던 그 모든 일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한 역할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목사인 나는 너무도 부끄러워 자숙하며 회개의 나날들을 지내고 있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 되었다. 태양은 어김없이 내 머리위를 비추고 있다. 정말“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라고 했던 다윗의 고백이 절로 생각 나는 하루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이 하루, 난 오늘도 이 하루를 살아감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