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된 기드온과 드보라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신혼여행지는 성전의 도시 예루살렘! 사실 기드온은 애초에 해외여행을 생각했으나, 드보라가 예루살렘으로 가 둘이 성전 지붕에라도 앉아 하나님께 평생 변치 않을 결혼서약을 바치고 싶다고 해 그리 정했다.
다행히 예루살렘은 기드온이 어릴 적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 드보라의 가이드 역할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진 말로 달리면 사흘 길이었다. 하늘을 나는 새로선 하루가 채 안돼 당도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신혼여행에 나선 둘은 일부러 요단강을 따라 쉬엄쉬엄 날아갔다.
갈릴리 호수를 출발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둘은 드디어 목적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저길 봐! 예루살렘이야.”
더욱 무르익는 신혼여행의 단꿈 덕에 둘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며 느낀 예루살렘의 분위기는 매우 심상찮았다.
많은 사람들이 성벽 북쪽 바깥편의 한 언덕에 운집해있었다. 서슬퍼런 로마 병사들도 눈에 띄었다. 언덕은 수직으로 깎아 내린 절벽에 두 개의 동굴이 뻥 뚫린 눈처럼 위치해있어 꼭 해골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눈을 옮겨 위를 보니 꼭대기 평평한 곳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기드온은 각각 세 개의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가운데 사람에게 시선이 향하면서 그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 아니! 저기, 저 사람은 예수 아냐?”
날개로 눈을 부비고 다시 봐도 틀림없는 예수였다.
“맞아. 그분이야. 근데, 저게 대체 무슨 일이래?”
드보라도 깜짝 놀라 소리쳤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몰골은 차마 두 눈 뜨곤 볼 수 없는 참혹한 것이었다. 이마엔 가시면류관이 씌워져 있는데, 여기저기서 핏줄기가 줄줄이 흘러내려 어떤 건 굳고 어떤 건 계속 흐르며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온 몸은 얼마나 채찍으로 맞았는지, 가슴팍이며 등짝이며 할 것 없이 곳곳에 살이 찢어지고 터져 핏빛으로 도배를 해놓았다.
대체 예수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리 모질게 고문했을꼬! 드보라의 마음이 날카로운 발톱에 할퀸 듯 쓰리고 아팠다. 뭐라도 돕고 싶었으나 갈매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하늘에서 십자가 주변만 맴돌며 신음하는 예수를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길 몇 시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예수가 안간힘을 다 써서 마지막 말을 내뱉곤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다 이루었다!”
예수의 마지막을 보자 기드온과 드보라는 날개에 힘이 쭉 빠져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근데 그 직후 매우 기이한 일이 발생해 정신 줄을 놓을 수 없었다. 돌연 예루살렘 전역이 암흑천지로 변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한낮인데 이게 무슨 변고람.’
기드온이 옆을 보니 드보라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거기 더 머물러있어선 안되겠다 싶었다. 원래 예루살렘으로 온 가장 중요한 목적이 성전을 들리는 것이었으므로, 기드온은 드보라를 데리고 성전 쪽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보니 성전 상황 역시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아!”
“오, 하나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우왕좌왕 뛰어다녔다. 성전 일대는 혼돈, 그 자체였다.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드보라가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잘 모르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기드온이 얼른 도움말을 줬다.
“드보라, 저건 이스라엘의 생명 줄이 왔다갔다할 큰 사건이야.”
“어째서?”
“어릴 적 가족여행 왔을 때 아빠한테 들은 기억이 나. 지성소는 성전 중에서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가장 거룩한 장소래. 거긴 늘 휘장으로 가려져있는데, 대제사장만 1년에 한번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근데 방금 그 휘장이 찢어졌다는 거잖아.”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음….”
기드온은 골똘히 뭔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드보라! 휘장이 찢어졌다는 건 이제 지성소가 모두에게, 언제나 열렸다는 거야. 더 이상 1년에 한번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구. 잠깐! 그런데…”
“그런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 뿌연 안개 같아. 원래 허락 없이 함부로 하나님 가까이 다가서면 모두 죽임을 당한다고 들었거든. 그렇다면 이제 다 죽는 건가? 아니면 혹시 다 살게 되는 건가?”
둘이 대화하는 사이에 예루살렘은 점점 더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심지어 무덤이 열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 아우성치는 사람까지 있었다. 낮인데도 해가 빛을 잃어 사방이 어두운데, 예루살렘 하늘은 통곡이라도 하듯 억수같이 비를 퍼붓고 있었다. 기드온은 얼른 예루살렘을 벗어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보라, 우리 일단 갈릴리로 돌아가자.”
“내 생각도 그래. 신혼여행은 담에 다시 오지, 뭐.”
기드온은 문득 삼총사 친구들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요나와 바나바에게 십자가 예수 얘기를 빨리 들려주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서로 모이기만 하면 예수가 그들 화제의 중심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기드온이 어두워진 하늘 위로 높이 솟구쳐 먼저 길을 잡자 드보라가 재빨리 뒤에 따라붙으며 둘은 쏜살같이 갈릴리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