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Act당의 David Seymour의원이 발의한 안락사 법안 (End of Life Choice Bill – http://www.legislation.govt.nz/bill/member/2017/0269/latest/DLM7285905.html)과 관련하여 지난 사법 위원회 (Justice Select Committee)에 의견서를 제출하였고, 지난 8월 초 사법 위원회에서 구두로 발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글은 해당 의견서와 구두 발표를 바탕으로 작성하였고 글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국한이 되며, 속해있는 그 어떤 의료 기관이나 단체 등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안락사라는 주제 자체가 뉴질랜드 사회의 극렬한 논쟁 속에 있습니다. 안락사는 사회적 범주뿐 아니라 개개인에게 있어서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찬성과 반대, 양 편의 주장과 그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논리들에 각기 다른 이유로 공감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1. 필연적으로 내포될 수 밖에 없는 오진의 가능성(법안 4조 c 항 i목)
의료 수준은 개인의 질병에 있어 그 마지막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안락사를 결정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온전한 결정을 할 수준까지 발전한 것은 아닙니다.
사형의 찬성과 반대에 있어 큰 논쟁 중 하나가 바로 법 집행에 있어서 오판이 전혀 없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사법 체계를 만들어 오기 위해 역사와 체계 속에서 수많은‘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음을 우려해 뉴질랜드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사형 제도를 사문화 시키거나 폐지하고 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사형 여부에 대한 오판보다 생사 여부의 오진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뉴질랜드 내의 의료 전문가들이 최선의 노력과 헌신을 바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질환 말기에 있어 생사 여부(특히 6개월 이내)를 판단한다는 것은 역시나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환자의 임종이 실제로 오기 전에 죽음을 판단하고 권하는 안락사를 허용한다는 것은 뉴질랜드 사회에 극복하기 힘든 위험을 가져올 수 밖에 없습니다.
2. “견딜 수 없는 고통” 에 대한 기준과 “용납할 만한” 완화 방법에 대한 판단(법안 4조 e항)
통증과 고통, 그리고 이런 경험에 부여하는 “의미” 를 생성하는 과정까지 이 모든 경험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고 당사자 이외의 사람이 판단한다는 것은 매우 강압적인 일이기도 하며,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말 자체에 모순이 있습니다.
이 모순에 의한 난제는 심리적, 정신적인 질병과 연결될 때 더 큰 난관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필자는 정신 건강 의학과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환자(이하, 내담자로 칭함)분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겪게 되는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가며, 그들이 간직했던 내면의 이야기를 듣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하고 있고, 더 나아가 그 분들이 그 어려운 시간을 견뎌낸 이후의 시간 역시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한 개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함께 이해해가고, 나아질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해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담자들이 치료를 마치고 회복한 후 하는 이야기에는, 그 힘든 시기를 겪어내며 경험해야 했던 참을 수 없었던 고통에 대한 회상이 포함됩니다. 그 고통은 견뎌내기 너무나 힘들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굴레와도 같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언급하면, 너무 많은 분들이 자살로써 이 고통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경계성 인격 장애와 같은 심각한 인격 장애를 경험하는 내담자들은 극심한 정신적, 감정적 고통을 겪게 되면서 여러 차례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적합한 치료와 지원을 받는 경우 상당수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회복 이후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긍정적 결과만을 가지고 장, 단기간에 걸친 고통을‘참는 것’을 정당화 할 수는 없지만 적절한 치료와 지원이 있을 경우 분명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은 확실합니다.
따라서 안락사는 많은 이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회복의 기회를 앗아 가는 것이며, HDC(Health and Disability Commissioner) 보건 및 장애 서비스 소비자 권리 강령 4조항- 필요에 맞는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을 권리- 을 위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적 병리 현상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외로움을 겪는 현실과, 차별을 경험하게 되는 현실의 민낯을 직업상 더욱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고, 때로는 충분하지 못한 지원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과 차별, 제도적 미흡은 정신적 질병에 있어 필요 이상의 고통을 겪게 만듭니다.
겉으로 보이는 ‘사회적 안녕’의 현상을 유지하게 하는 도구로써 사회가 책임을 지고 같이 가야 할 개개인 구성원에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전가’하기 보다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개인의 건강과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고, 질병으로 인해 개인이 짊어질 삶의 부담을 줄이는 노력을 먼저 하여야 할 것 입니다.
또한 안락사 법안은 정신적 질환에 대한 오명을 더욱 강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신적 질환에 대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가족들조차 해당 질병을 인정하기 보다는 외면하고 싶어하며, “무의미한” 치료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가운 시선 속에서 내담자들 조차도 자포자기에 빠져 회복될 수 없다고 이미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실제로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우리 사회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어려움을 이해하고 같이 극복해 가야 할 과제입니다.
게다가 정신 건강 의학과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심각하고 복잡한 정신 질환에 대해서는 치료의 ‘무의미함’에 대한 견해가 첨예합니다. 2016년 JAMA라는 유수 의학 저널에 발표된 안락사와 관련된 한 연구에 따르면(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5530592/) 대상이 된 66건의 사례 중 16건(24 %)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고, 해당 16건의 사례 중 13건의 사례는 치료의 유, 무의미에 대한 의견 차이였습니다.
치료의 유, 무의미함에 대한 견해는 전문가가 제공하는 조언과 정보 외에도 치료 과정에 수반되는 관계 안에서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이는 단순히 질환의 유형이나 심각성을 떠나, 치료 도중 발생하고 변화하는 외적 요소들 역시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치료에는 여러 변수들이 상존하고 따라서“견딜 수 없는 고통을 용납할 만한 방법으로 완화 할 수 없을 때 안락사를 시행 할 수 있다”는 법 조항에 대해 늘 충분히 신뢰할 만한 일관성을 가지고 적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3. 자기 의사 결정 능력 평가의 문제(4조 f항)
뉴질랜드 의료 체계 내에서는 <자기 의사 결정 능력 평가Competency Assessment>가 필요할 때가 있고, 주로 정신 건강 의학과 의사가 이 평가를 이행합니다. 특히 생물학적, 사회적, 심리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사례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신 건강 의학과 전문의로서 명확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이 평가가 이론적으로는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책을 벗어난 현장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위에 언급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 위 사례 중 8건의 사례(12%)에서 자기 의사 결정 능력 평가 결과에 대한 이견이 있었습니다.
특히 4조 f항 ii목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하는 죽음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 그 당사자가 이해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has the ability to understand the consequences for him or her of assisted dying.”라는 문장은 이해하는 입장에 따라 상이한 해석이 가능하기에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간단히 두 가지 예만 든다고 해도, 한 편에서는 이 문장에 대해 “결심 후 실행되면 생이 마감됨을 이해한다”로만 해석될 수도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사망자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사망 당사자가 이해해야 함” 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후자의 경우, 과연 누가, 본인 혹은 당사자의 죽음 이후, 고인과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많은 상황과 결과를 미리 앞서 모두 헤아리고 이해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4. 의료 윤리와의 양립 불가성, 대립적 관계, 불일치성
2015년, 2005년, 1987년 WMA(세계 의학 협회)의 안락사에 대한 선언과 2005년, 2001년, 1996년 NZMA(뉴질랜드 의학 협회)의 안락사에 대한 입장에 따르면 안락사는 비윤리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이에 따라 뉴질랜드 내 의료 종사자들 안에서 안락사에 대해 지지하지 않는 것이 더 우세한 의견임을 간주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임종을 앞둔 사람들을 돕는 호스피스 Hospice NZ의 입장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스피스 NZ은 “임종 전 돌봄 및 고통 완화 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는 것이 정부의 우선 수위가 되어야 한다” 며 “모든 뉴질랜드인들이 양질의 임종 전 돌봄을 받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안락사에 대한 균형 잡힌 토론이 가능하다” 라고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5. 자살과의 상관 관계
자살 혹은 자살의 위험을 타 직종보다 높은 비율로 마주하는 직업인으로서, 자살의 위험에 놓인 이들에게 이 법안이 매우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는 바입니다. 안락사와 자살은 다른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법안의 주 목적과 동기가 고통 받고 있는 사람에게 삶을 마감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자는 것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특히나 뉴질랜드는 청소년(15-19세 기준) 자살률 1위입니다. 청소년 자살률을 낮추고자 하는 많은 사회적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때에, 과연 이 법안은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가에 대한 중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사회에서, 여러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 청소년들에게 과연 죽지 말고 생을 살아보자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법안의 취지가 어떻든지 간에 이 법안이 통과된 후 미칠 여러 사회적 영향 중 자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많은 이들. 특히 그 중에서도 청소년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어떤 가치를 전달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심각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6. 다문화 사회로써의 고려
이 법안은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매우 개인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법안은 뉴질랜드 다문화적 사회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법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마오리와 파케하의 두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뉴질랜드는 지난 세기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며 다민족 국가, 다문화 국가로 성장하였습니다. 아시안 인구는 뉴질랜드에서 3번째로 큰 인종 그룹이며, 향후 20년을 볼 때 2번째로 큰 인종 그룹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집단주의(Collectivism) 문화 성향을 가진 나라에서 온 1세대 이민자들과 뉴질랜드에서 교육 받았지만 1세대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2세대들에게서도 이런 가치관은 상당 부분 동일하게 전달됩니다.
그러나 현재의 안락사를 바라보는 주요 개념과 논쟁들은 서구 중심적 사고에 치우쳐 있습니다. 서구적 사고에서는 개인의 결정에 있어 개인의 의지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지만, 동양적 시각에서 개인의 삶과 죽음은 가족과 주변 공동체와 굉장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사실 이런 사고는 백인 위주의 문화를 제외하면, 마오리 문화나 주변 퍼시픽 국가들의 문화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7. 노인 자살
5, 6번과 연결하여, 뉴질랜드에 살지만, 여전히 가족과 자녀에 대한 책임을 매우 중요시 하는 문화와 가치관을 갖고 있는 많은 아시안 노령 인구에게 있어서 이 법안은 원 취지와는 전혀 다른 예상치 못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법안은 뉴질랜드 사회 내의 노인 계층. 그 중 특히 아시안 노인들과, 사회 경제적으로 고립되거나 위험한 상태에 놓인 노인들 모두에게 어떤 무언의 압력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에게 육체적, 심리적,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노인들에게 죽음을 선택하도록 심리적 압박을 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자녀에게 스스로의 존재가 부담이 된다는 혹은 될 것이라는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지난 몇 년간 뉴질랜드에서도 노인 학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고, 노인 자살률이 올라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선택권이 부여된다는 것은 소외되거나 학대의 상황에 놓인 노인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 할 수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크리스천으로서 가지는 신학적, 성경적 반대에 대한 이유를 포함해 더 많은 쟁점들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의사로서의 – 특히 정신 건강 의학과 전문의로서의- 시각과 이민자로서의 문화적 배경을 요점으로 하여 글을 작성했음을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