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어떠한 질병도 앓지 않고 항상 건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신체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건강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모든 인류는 공통적으로 전인격적인 손상을 입은 피조물로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는 항상 ‘완벽’하거나 온전히 ‘건강’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육체적 질환을 겪고 있는 분들과는 달리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크리스천들을 만나면 거의 매우 강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을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됩니다.
신체적 질병과 달리 정신 질환은 피검사 혹은 CT, MRI 같은 ‘객관적’ 수치나 사진으로 보이는 병이 아니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많은 크리스천들이 정신 질환을 전인적 건강의 측면에서 보다는 정서적인 연약함이나 영적인 문제만으로 이해하기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 됩니다.
또한 신체적 질병은 욥이 걸린 욕창이나 사도 바울이 ‘육체의 가시’로 표현한 자신의 신체적 질환(심한 안질이나 간질로 여겨지는)등 구약과 신약을 통해 성경 안에서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되고, 이런 사례들은 육체적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을 생각 할 때 개인의 ‘죄’나 믿음의 상태와 연관 짓지 않고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이에 반해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통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질환에 대한 이미지는 ‘악한 영’과 ‘귀신들림’으로 축약됩니다. 그러하기에 정신 질환을 겪는 당사자와 그 주위에 사람들은 정신 건강의 어려움을 스스로의(혹은 그 사람의) 죄로 인한 결과로 혹은 믿음이 연약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너무나 쉽게 단정짓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울증에 걸린 것으로 충분히 사료 될 수 있는 한 사람을 우리는 시편 102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시편 102편은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 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시편이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당시에 다윗이 지은 시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다니엘이나 느헤미야와 같은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있을 때 지은 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확히 이 시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편 기자가 102편 2절에서 11절까지에 써내려 간 자신의 상태에 대한 표현을 만약 지금 저나 정신 건강 관련 종사자 누구에게든 말하였다면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으므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사오며 나의 탄식 소리로 말미암아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비방하며 내게 대항하여 미칠 듯이 날뛰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나는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나는 눈물 섞인 물을 마셨나이다. 주의 분노와 진노로 말미암음이라 주께서 나를 들어서 던지셨나이다.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시편 102편 2-11절
이 시편의 2-11절을 통해 이 시편기자는 우울한 기분과 삶에 대한 흥미 감소 (2-3절, 5절, 11절), 식욕 감퇴와 체중 감소(3-5절), 불면(6-7절), 피로감 (11절), 무가치감과 자책(8절, 10절), 빈번한 울음(9절), 외로움 혹은 대인 기피(7절), 정서적 고통이 육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신체화 증상(3-5절)등 우울증의 주요 증상들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현대 정신 의학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이 시편기자는 이 시편을 쓸 당시에 우울증을 겪고 있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시편의 작가가 다윗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증상들은 더더욱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자신을 대적해 반란을 일으킨 아들에게 느끼는 배신감 뿐만 아니라 그 깨어지고 일그러진 관계에서 느끼는 상실감, 그리고 쫓기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느꼈을 후회와 생사가 걸린 위험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긴장으로 인해 느꼈을 피로감 등의 정서적 요소뿐만 아니라 불면과 불규칙한 식사 등으로 인해 생겨난 육체적 선행 요인 등 다윗이 경험하고 있는 우울증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자가 지금 이 시대에 있었다면 약물 치료도 물론 가능했겠지만 정서적 그리고 사회와 관계적 요인 등을 치료하는데 집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시편기자가 우울증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 이것은 이 사람의 믿음이 약해서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시편기자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고(1절) 또한 하나님이 영원하시며 긍휼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12-17절).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안에서 찾는 소망을 고백해 갑니다(18-28절).
즉 이 시편기자는 이 시편을 썼을 그 당시 영적으로는 분명 아직 건강하지만 정신적인 질환으로 인해 깊은 심리적, 육체적 고통과 탄식 가운데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비슷한 상황과 고백을 시편 42편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이와 같이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이 되십니다. 이는 육체적으로는 건강해도 영적으로는 완전히 침체에 빠져있는 이들에게도 그렇지만 반대로 영적으로 건강할지라도 암이나 당뇨와 같은 육체의 질병 혹은 우울증이나 불안증 같은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는 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 건강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정신적 건강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영적인 침체에 있는 이에게 필요한 말씀과 권면 또 기도와 기다림처럼 정신적 건강을 위한 적절한 치료와 예방 그리고 전인적 건강의 측면에서 요구되는 균형잡인 접근이 필요함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