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과의 대화

0
10

요즘 들어 바깥세상에 대한 요나의 관심이 부쩍 커졌다. 호수 건너편을 다녀온 뒤부터 생긴 현상이다. 갈매기 기드온을 보자마자 대뜸 부러움을 표한다.

“오, 하늘을 나는 새의 자유로움이여! 하나님은 왜 내겐 날개를 주지 않고 지느러미만 주셨을꼬?
난 평생 이 호수를 벗어날 수 없으니…..”
“요나야! 넌 갈릴리 호수가 좁다고 생각하니?”
“아니니?”
“갈릴리 호수는 말이야, 사실은 더 넓은 세상과 통해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넌, 네가 헤엄치며 사는 호숫물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니?”
“음…..아니!”

기드온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여기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헐몬산이란 큰 산이 하나 나타나. 꼭대기에 흰 눈이 항상 덮여있어서 우리 갈매기들이 백발노인이라 부르는 산이지. 백발노인은 기도하는 산이야. 세상엔 슬픈 일이 많잖아. 그래서 그 산은 기도하며 눈물을 많이 흘린대. 사람들이 이슬이라고 부르는 백발노인의 그 눈물이 실은 갈릴리 호숫물의 시작이야.”

바나바도 어느샌가 요나 옆에 나란히 앉아 기드온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이슬이 방울방울 모여 요단강의 물이 된 후, 흘러 흘러 갈릴리 호수에까지 오게 되는 거지. 그러나
이곳이 끝은 아니야. 물은 갈릴리를 지나 계속 아래로 흘러가. 저 밑에 있는 사해에 이를 때까지.”
“사해? 사해라면, 죽음의 바다란 뜻이야?”

요나는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자 갑자기 한기를 느꼈다.
“응, 맞아. 사해는 막혀있는 곳이야. 물이 한번 거기에 들어가면 밖으로 흘러나오질 못하지. 헐몬의
이슬은 거기서 생명을 다하고 죽게 돼. 그래서 그 곳은 사해, 죽음의 바다인 거야.”

요나는 늘 마주하는 물방울이 그토록 깊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물방울에도 출생과 죽음 이 있다니! 친구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얼굴에 부딪치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그 때 어디선가 ‘안녕!’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그러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나야, 나!”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요나는 머리가 쭈뼛했다.

“누구지?”

그러다가 머리에 뭔가 번득 스치는 게 있었다.
“물? 혹시, 너 물방울이니?”

그러자 바로 옆에 있는 물방울 하나가 작은 진동을 일으키며 말했다.
“맞아. 휴우, 이제야 내 말이 들리나 보네. 그 동안 널 얼마나 불렀는데.”
“정말? 오, 미안. 근데 너 울고 있니? 설마 내가 대답을 안 해서 울었던 거니?”
“아니, 거꾸로야. 네가 이제라도 대답을 해주니 기뻐서 눈물이 난 거지. 우리 물방울들은 눈물이 많아. 노래할 땐 특히 더. 우리의 노래를 들려줄까?”

물방울은 자기들 노래를 몹시 들려주고 싶은가 보았다. 요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노래를 불렀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노래를 듣던 요나에게 한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영생?”

그러자 물방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응. 헐몬의 이슬은 영원한 생명을 품고 있어. 그건 이슬이 세상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이야. 그거 알아?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흘리는 눈물은 죽지 않는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는 걸.”
“어째서?”
“그게 사랑이거든. 사랑은 영원해. 세상 전부터 세상 후까지, 영원한 건 오직 사랑이야.”

요나는 작디작은 물방울 속에 백발노인의 지혜가 담겨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때 그 동안 잊고 있던 한가지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요나의 가슴을 두근두근, 북처럼 두드리기 시작했다.

‘가만, 가만! 혹시 아빠의 말이 이것이었나?’

깊은 물 사건 때 그물에 잡혀가는 수많은 틸라피아를 보며 아빤 그렇게 말했었다. 우린 암눈, 즉 돌보는 물고기라면서, 내가 죽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비록 그것이 하찮은 물고기의 삶일지라도 얼마든지 위대해질 수 있다고.

난 아빠의 말을 그저 힘없는 자의 변명이라 여겼는데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 어부에게 잡힌 게 아니라 어부를 위해 우리 몸을 내준 것이라던 그 말. 메기에게 사냥 당했던 친구 데마도 사실은 그의 먹이가 되어 메기를 살린 것이라던 그 말.

우리 마음에 세상을 위해 흘리는 헐몬산의 눈물을 담을 수만 있다면, 한낱 갈릴리 호수의 물고기조차 정녕 위대한 사랑을 꿈꿀 수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