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징그러운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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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끄러운 묵상은 다시 나의 전공인 재즈 연주 곡이다. 제목은 ‘Stubborn’, 직역하면 ‘고집있는’인데, 인용은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바로의 ‘완악한 마음’에서다.

작곡한 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최근에 친구들과 신학적인 고민들을 나누면서 다시 이 부분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노래의 탄생비화를 나누자면,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색소폰 연주자가 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Pharoah Sanders다. ‘Pharoah’라는 단어가(철자는 다르지만) 한국말로 ‘바로’다. 본명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기 본명 Farrell에서 Pharoah로 불리기 시작한다.

이 사람의 음악의 특징을 쉽게 설명하자면, 개성 있는 색소폰 소리와 이국적이고 자연적인 음악이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표현인데, ‘더럽다’는 표현이 가장 알 맞는 듯하다. 더럽다는 것은 깨끗하고 청아한 소리가 아니라, 숲에서 방금 나온 듯한 동물이 노래하는 듯한 소리이다. 설명으로는 이해가 안 가겠지만 더럽고 징그러운 음악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음악이다.

게다가 종교적으로 분명하지는 않지만, 음악에서 하나님을 많이 언급한다. 그 하나님이 기독교 하나님인지 다른 하나님인지는 사실 잘 모른다. 듣는 내 입장에서는 이 시끄러운 묵상과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가 바로 “The Creator has a Master Plan”인데 “창조주는 완벽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라는 노래이다.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은 방식에서 많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내가 이 음악가를 존경하고 따라 해보려는 마음에, 학교 과제 중에 시도해 볼 만한 과제가 있어서 “Stubborn”이라는 노래로 했다. 바로 “modes of limited transposition”이다.

이 음악 이론을 다 설명하기엔 글자 수가 너무 많아지고, 나의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지만 쉽게 말하면, “조옮김이 제한되는 선법”이다.

장조 선법, 단조 선법은 조가 13이기 때문에 그 만큼 바꿀 수 있고, whole tone scale(온음음계)은 반음이 없는 선법이기에 딱 2개만 존재한다.

Diminished scale(팔 음 음계)은 한음, 반음, 한음, 반음 올라가는 선법이기에 3개 밖에 없다.
Whole tone scale과 diminished scale이“조옮김이 제한되는 선법”에서 1번과 2번이고, 내가 만든“Stubborn”이라는 노래에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조옮김이 제한되는 3번째 선법”이다.

이 선법부터는 이름이 따로 없을 정도로 흔하지 않은 소리여서 들을 때 바로 음의 편안한 곳이 없다. 그래서 교수님께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 음계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작곡하는 데에는 더 걸렸다.

워낙 익숙하지 않다 보니까 무작정 컴퓨터에 이 선법만을 사용하면서 코드도 만들고 해보는데 들을수록 내가 음악적으로 지향하는 소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시끄러운 묵상을 하면서 나의 모든 표현을 하나님께 음악적으로 풀어내는데 너무나 행복한 발견이었다.

이 노래는 3 부분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작곡할 때부터 정해놓은 게, 피아노 솔로, 드럼 솔로, 그리고 색소폰 솔로였고, 아쉽지만 베이스는 항상 서포트하는 역할이었다.

교수님께 이 과제를 낼 때에 과제의 내용인 “조옮김이 제한되는 선법”을 어기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 음악적인 기술이고 소리인데, 거기에 얽매여 더 좋은 음악을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이 아쉽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작곡하면서 그 기술을 버리기도 하고, 최대치로 사용할 때도 있다.

음악적인 기술일 뿐이지만, 그 기술로 하여금 새로운 소리, 화음을 만들어,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이끌어내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신학이라 하면 설교와 세미나와 신학을 배운 친한 사람들한테 들은 것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내가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평신도’라 하는 사람들이 신학에 대한 고민, 하나님과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은 건강하다 못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지금 다루려고 하는 말씀도 워낙 신학적으로 토론이 많이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 개인의 신학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미리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었다는 말씀에 대해 고민을 불러 일으켰으면 하는 마음이다. 교단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의 행동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는가? 아니면 나의 선택이었는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하심과 공의로우심이 동시에 어떻게 나를 통치하고 있는가?

이 모든 것들이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끝없이 사랑하신다는 것도 사실인데,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공의롭다는 것도 사실이다. 참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인데 이해하기 쉽지 않아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