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부활한 증거는 변화된 제자의 삶이 증거해

“언제까지 죄와 싸워야 하는가?:

“그것은 육신의 죽음이 이를 때까지 일 것이다. 그래서 너희 구원 받은 자들은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요 죄에 대한 삯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영생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너희가 육신을 갖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성령의 도움이 있어도 완전히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힘들다. 이 세상에는 사탄의 끊임없는 유혹이 있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 있으며 연약한 육신의 한계로 인한 괴로움이 있다.

이런 모든 요인들이 너희 마음 속에 있는 죄성과의 싸움을 더욱 힘들게 한다. 너희가 육신을 벗고 천국에 가게 되면 더 이상 죄와의 싸움은 없게 된다. 너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모든 환경적 요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로지 죄를 지을 가능성으로는 네 마음 속에 있는 자유의지일 것인데 그것은 너희 믿음이 이미 그것을 충분히 통제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너희는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럼, 구원 받은 자에게 이 세상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방금 말했듯이 너희 마음 속에 있는 죄성을 완전히 억제할 수 있는 믿음의 훈련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 세상은 비록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저주받은 곳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를 훈련시키기에는 쓸모 있는 곳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하지 않았더냐? 그래서 누구든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했다. 너희가 구원을 얻으려면 나를 진정으로 마음으로 믿고 나를 주라고 시인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주로 시인을 하면 내가 한 말대로 이 땅에서 너희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을 내가 살아내야 한다는 것인가, 성령이 살게 한다는 것인가?”

“성령의 도움 없이는 살아내지 못할 것이지만 그 삶은 너희가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도움은 이런 것이다. 너희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너희 갈 곳을 알지 못할 때 그 숲을 잘 아는 이가 나타나서 너희 갈 곳을 안내해 준다고 가정해 보자.

너희는 그 안내자의 도움 없이는 너희가 가고자 하는 곳을 결코 찾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안내자를 믿고 그를 따라가는 사람은 바로 너희이다. 그 가는 길이 험하거나 불편하더라도 안내자가 너희를 대신해서 걸어갈 수는 없지 않느냐? 그 길이 너희가 생각했던 길과 다르더라도 그 안내자를 전적으로 신뢰해야만 결국에는 너희가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도움도 그와 같은 것이다.

너희가 구원 받은 것은 성령인 그 안내자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그를 신뢰하고 그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해야 비로서 구원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 길을 가는 자는 바로 너희인 것이다.”

“당신이 부활해서 제자들에게 한 말 중에‘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마가복음 16:17)’고 한 구절이 있다. 이 말은 당신을 믿는 자들은 모두 이런 능력을 갖게 되며 이런 능력이 없는 자는 믿지 않는 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가?”

“허허, 그 말을 오해하지 마라. 그 말은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할 때 한 것으로 나를 믿는 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증거하는 표적으로 성령께서 그들에게 필요에 따라 그런 능력을 보이게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런 능력은 믿는 자들에게 속한 능력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성령이 그들의 말에 신뢰를 더해주기 위해 일시적으로 부여해주는 능력인 것이다. 마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내 말이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해 병자를 고치거나 귀신을 쫓거나 오병이어와 같은 이적을 행한 것과 같은 의도인 것이다. 그러니 말씀 곧 복음이 중요한 것이지 표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복음을 전하는 초기 시기에는 말씀만으로는 사람들의 관심과 신뢰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 능력이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나 믿는 자들이 많아지면 이런 표적보다는 믿는 자들의 삶의 모습이 복음의 증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이런 표적만을 구하거나 이런 표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자책하는 자들은 믿음이 없거나 약한 자들이며 이런 표적을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자랑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정죄를 받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은 성령이 거듭나게 한 자들이며 그들에게는 필요하면 성령이 어떤 능력이라도 부여해 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필요한 경우도 있고 그들 자신의 믿음을 키워주기 위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필요하면 고난 또한 주실 것인데 이 또한 그 고난을 이겨내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일 때도 있고 그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너희가 너희의 믿음을 확증하는 최종 표적이 되는 것은 이런저런 능력이 아니라 육신의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맞이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당신은 이제 하늘 나라로 가야 할 것 같아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육신의 부활이 이루어진 후에 있을 새 하늘 새 땅에서의 삶이 궁금하다. 내가 알기로는 나중에 당신은 당신의 제자 중의 하나에게 세상 종말에 관해 보다 자세한 계시(요한 계시록)를 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때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는가?”

“하하하, 글쎄… 나중에 알려주마.”

부활한 예수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해서 끝났다. 성경(신약)에 따르면 예수는 부활한 후 40여 일 동안 이 땅에 머물며 약 5백여 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가 이 기간 동안 한 일은 부활한 자신을 제자들에게 보임으로 그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였고 다시 한번 성경(구약)이 그를 증거하고 있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성경(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는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 구름 속으로 사라졌으며 그때 천사가 예수가 올라간 그 모습 그대로 그가 재림할 때 오시리라고 하였다.

예수가 부활한 목적이 이제까지 인터뷰한 내용 그대로라면 확실히 예수의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나타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오늘날 예수가 부활했음을 증거하는 사실로 예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점, 수의가 잘 정돈되었다는 점,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난 성경의 기록, 제자들의 변화 등을 꼽는다.

그런데 사실은 그의 부활을 굳이 증명하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믿지 않은 자들에게 부활한 예수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증거를 대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그 자체로 인간의 이성적 논리나 지식으로 이해될 내용이 아니다. 다만 선입관 없이 예수의 부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에게 예수가 실제 부활했음을 증거하는 내용을 들라고 하면 나는 그 무엇보다 제자들의 변화를 들 것이다.

예수의 부활 목적이 바로 그를 믿는 제자들에게 있었던 만큼 그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대표적 예로 베드로를 들 수 있다. 예수가 붙잡혀 가던 날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인한 사실은 4대 복음서에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고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그 동안 이 이야기를 그냥 예수의 예언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삽입된 스토리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4대 복음서마다 빠뜨리지 않고 이 이야기를 강조한 의도가 있었다. <계속>

이전 기사사라진 GPS 아줌마
다음 기사“왼발은 모스크에, 오른발은 교회에?”
최성웅
연세대 졸업. 한국 워킹우먼 전 편집장. 해밀턴 지구촌교회에서 집사로 섬기고 있는데, 2016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2년 여의 항암 투병기간을 보내던 중 자신이 만난 예수를 인터뷰 형식으로 쉽게 풀어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복음의 핵심을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썼다. 2018년 1월 2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의 유고를 분재한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른 시각의 기사가 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