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교회를 지켜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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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월입니다. 한국 같으면 거리에 아카시아 향이 넘쳐날 시기이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이제 서서히 겨울을 준비해야 할 계절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지고 간혹 춥게 느껴지는 날이 있는 걸 보니 진짜 겨울을 준비해야 될 때가 된 것 같네요.

운전을 하다 보니 계절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요, 운전석 창으로 부딪히는 낙엽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한국에 있는 어머니들, 친구들 생각이 나곤 합니다. 저 가을 타는 건가요? 저 추남(秋男)이 된 건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두 가지 기관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첫째가 가정이요, 둘째는 교회입니다. 나머지 기관들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 우리의 의지와 계획으로 세워진 것들일 뿐이지요.

우리 삶에 있어서 가정과 교회는 우리 존재의 기본이자 가치가 됩니다. 따라서 교회가 없는 삶은 피폐해지고, 가정이 없는 삶은 외로움과 허무함이 차지하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정과 교회를 삶의 기본 출발점으로 보고 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오늘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에 대해 얘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뉴질랜드인들의 삶을 보면, 무엇보다 ‘내가 먼저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가정을 꾸리지 않고 혼자 지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그러면서도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끊임없이 청춘 사업에 매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정을 꾸려 살아가자면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고 돌보아주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공을 들이지 않고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만약 공을 들이지 않고 얻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얻은 이후에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행복을 위해 우리는 당연히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합니다.

젊은 나이에 내 한 몸 돌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가정을 꾸려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고 또 그 배우자로 인한 친족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며, 또 그 가정에서 난 자녀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며 노력해야 하나요? 그러면서도 사회적인 활동을 해야 하고 생계도 꾸려가야 하니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런 막막함이 젊은 세대로 하여금 가정을 꾸리기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자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감당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그 분께서 주신 지혜로,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분의 사랑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젊을 때에 좀 즐기며 살고 나중에 나이가 들면 그 때 가정을 가져도 늦지 않다? 늦게나마 가족을 만들고 싶고 자녀를 얻고 싶어진다고 한들 가족은 그렇게 순식간에 생기지 않습니다.

어느 날, ‘나도 15살짜리 딸이 있어서 함께 쇼핑하고 수다 떨며 길을 걷고 싶다’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열심히 노력해 한 1년만에 15살짜리 딸이 있는 단란한 가정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15살짜리 딸이 있는 화목한 가정은 적어도 16년 이상 공을 들여 그 아이를 잉태하고 낳고 키우며 울고 웃는 세월을 함께 해야 15살짜리 딸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15살짜리 딸이 있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면 됩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15살짜리 사춘기 딸을 내 딸처럼 느끼게 만드는 수고를, 16년치 수고를 몇 년 안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따라서 미래에 행복한 가정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책임과 의무, 희생하는 현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수고하여 얻은 가정에서 얻는 행복이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가정들이 모여 한 사회를 이룰 때 그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만듭니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가능한 나이에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함께 할 가족을 구성하는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것은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대단히 소중한 일입니다.

일하는 중에 만나는 승객들 중에 가장 대하기 힘든 그룹을 꼽으라 하면 단연 청소년들입니다. 한번은 버스 안에서 스마트 폰 볼륨을 크게 틀어 음악을 듣는 소녀들이 있어서 ‘볼륨을 줄여달라’부탁했는데 나중에 그들이 앉았던 자리 좌석에 가봤더니 씹던 껌을 보란 듯이 가지런히 놓고 내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버스기사님 엿 드시라는 뜻이었나 봅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버스에 탄산음료를 갖고 타지 말아달라 부탁했더니 몰래 가지고 타서는 숨어서 먹다가 내리면서 자랑스럽게 트림소리를 거하게 내며 내리는 아이도 봤었구요, 버스 맨 뒷좌석에 누워서 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발을 앞 좌석 등받이 위에 올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오해한 것이지요. 그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피해가 가는지 알려줄 수 있는 어른은 부모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이들의 가정에, 그들의 부모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한 잘못을 아무나 지적하고 고쳐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그들의 부모가 가정에서 지도해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뉴질랜드 교과과정에는 우리나라처럼 엄격하고 장기적인 도덕, 윤리교육이 없습니다.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에서 예의범절, 사회규범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가정이 올바로 서야 아이들이 사회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 의무, 책임을 배웁니다.

그런데 가정이 붕괴되고 개인화가 강해지면 이것이 불가능해집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성공만을 바라보며 사는 성공지향적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기회를 점점 놓쳐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사회를 점점 더 각박하게 만들어 갑니다.

부모에게서 사회생활의 기본을 배워야 하는 가정이 붕괴되어 기본을 배우지 못하니 서로 충돌이 많이 일어나고 점점 이기적인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올바른 가족관, 사회관을 배우지 못하니 좋은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뉴질랜드 가정들은 건강한 편입니다. 허나 세대가 젊어질 수록 성경적 가정관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속한 뉴질랜드 사회가 성경적인 가정관을 갖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스스로가 바람직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가 오르면 행복해질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아닙니다. 트리나 파울루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을 보면 수많은 애벌레들이 탑을 쌓고 서로 꼭대기에 오르려고 경쟁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주인공 애벌레가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다른 애벌레들에게 상처를 주며 꼭대기에 올랐을 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진짜 행복은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속적 성공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과 교회를 지켜주십시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이들이 우리의 가정을 보고 부러워하게 해 주십시오.

그들도 그런 아내, 남편, 아이들을 갖기를 소망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래서 이 땅에 속한 모든 가정이 하나님께서 원래 주신대로 아름다운 가정, 가정을 이루면서 다짐했던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힘써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의 다음 세대가 행복한 뉴질랜드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초를 잘 다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만나는 많은 이들이 행복으로 가득한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저는 오늘도 운전대를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