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포용의 리더십

두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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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한국의 어느 인터넷 신문에서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들인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사 등의 새 최고경영자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구글의 경우 지난해 8월 전 CEO인 래리 페이지가 사임하고 인도 출신의 선다 피차이가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경우도 인도 출신의 사티아 나델라가 새로운 최고경영자가 되었습니다. 노키아, 펩시코, 마스터카드, 어도비 등의 기업들도 모두 인도 출신의 새로운 최고 경영자들을 세웠습니다.

왜 최근들어 인도출신의 최고경영자들이 환영을 받는 것일까요? 사실 인도하면 아직도 빈민가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연상되는 가난한 나라인데 어떻게 그들이 세계 굴지의 대기업들을 이끄는 최고의 리더들이 되었을까요?

그 해답은 바로 인도식 경영에 있었습니다. 경영에 있어 세계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미국식 경영의 핵심은 ‘효율성’입니다. 즉, 투입에 대비한 산출량을 늘리도록 효율성을 높이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인도식 경영은 그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인도식 경영은 포용력으로 대변할 수 있고, 효율성보다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미국식 경영은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가 강력한 권위를 내세우며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직원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식 경영은 배려와 포용으로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데 더 집중합니다. 예전과는 달리 개성이 강한 요즘의 세대들에게 권위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들을 배려하고 포용하면서 리더로서의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 인도 출신의 최고경영자들은 자신들이 최고의 리더가 된 후에 급진적인 혁신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 갑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현재의 일들이 잘 진행되도록 만든 후에 다음 변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택합니다. 직원들은 안정감을 갖고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게 됩니다.

교회적인 상황도 그렇다고 봅니다. 주로 미국교회를 본보기로 삼는 한국교회는 지금도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강력한 권위로 교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이미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보여주신 리더십은 바로 배려와 포용이었습니다. 그분은 세리와 창기들 같은 죄인들까지 배려하시고, 자신을 팔아넘긴 제자까지 포용하셨습니다.

이민사회에서의 교회가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 배려와 포용의 리더십이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이민교회의 리더로서 여전히 시행착오를 거칠 때마다 제 스스로를 돌아보면 제 자신이 얼마나 배려와 포용에 약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인해 교회 안에 그늘이 생기고, 그 그늘이 길어지면서 잃어버린 사람들의 얼굴을 가슴 아프게 떠올리게 됩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조차 성경적 가치와 일치하는 배려와 포용으로 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교회가 그러한 성경적 가치를 세상에서 실현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정희성 시인의 ‘숲’ 이라는 시의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건너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참된 리더는 제각기 서 있는 나무들을 모아 배려와 포용으로 숲을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