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예루살렘 돌무덤>
지난 금요일은 하늘과 땅이 두 조각난 충격적인 날. 태어나 그토록 슬픈 날은 없었다. 지난 이틀의 무게는 스무 해 고뇌 무게만큼 무겁다.
칠흑 같은 흑암으로 커튼을 내린 하늘, 다시는 해를 맞이할 엄두를 못 낸다. 얼마 만에 그런 사랑과 소망으로 가슴 벅차했던가. 그분은 힘과 권력 그리고 돈만 아는 혼란과 무질서 세상 정부를 속이 시원하게 평정시킬 분이었다.
하지만 지난 이틀 동안 보석처럼 빛나던 소망과 기대는 짓밟히고 말았다.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온갖 고통에도 그분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않았다.
한때 그분으로부터 살 용기를 얻은 사람부터 불구의 몸이 날아가듯 새 생명을 얻은 이들마저도 날 선 화살처럼, 칼처럼 조롱과 저주를 무참스레 그분의 가슴팍에 내 꽂았다.
그러나 그분은 한마디 말도 없었다. 욕설이나 저주의 말도 그 입에는 없었다. 변명이나 흥정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을 버린 친구들을 향해 감정 섞인 서운한 말 한마디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이렇게 하여 끝났다.
블랙 프라이데이 늦은 오후 시간, 해가 넘어가기 전 급히 서둘러 장례를 치러야 한다. 십자가 처형 후 시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다들 잘 안다.
두 가지 선택이 기다린다. 연고자 없이 죽은 흉측한 죄수들의 시신은 해묵은 뼈로 가득한 음산한 골짜기 게헨나(Gehenna)에 쓰레기처럼 던져진다.
짐승 사체와 예루살렘 도시 쓰레기, 그리고 이름도 모를 범죄인들 시신들과 함께… 아니면“십자가에서 까마귀밥이 되도록”(Feeding crows on the cross) 그대로 버려두었다고 말한 라틴 시인 호러스(Horace)의 증언처럼1) 십자가에 그대로 방치하여 독수리나 까마귀밥이 된 후 피 묻은 뼈만 남은 채 썩는다.
유대 관습에 따르면, 십자가 처형 시신은 그들 조상 무덤에 함께 묻힐 수 없다. 칼에 맞아 죽거나 목매달려 죽은 시신, 혹은 돌에 맞아 처형받거나 화형당한 시신 역시 어디에다 묻을지 산헤드린(Sanhedrin)의 결정권에 달렸다. 2)
죽은 원수도 묻어주는 것이 유대인들의 의무였지만 예루살렘 성 밖 한 곳에 처형당한 죄수들을 처리하는 곳이 있었다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도 전한다. 3)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 두 사람이 이 절망의 틈새에 나타난다. 이 사람들 누군가? 유대 정치 종교를 대표하는 최고 의회 산헤드린 관원이다.
이 두 사람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바쁜 걸음으로 로마 관청과 골고다 그리고 무덤을 오가며 장례 절차를 밟는다.
다행이 빌라도는 그의 요청에 동의한다. 이제부터 발 빠르게 뛰면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우선 십자가에서 그분의 시신을 내리는 일이 급선무.
온갖 처참한 고문과 십자가 처형으로 싸늘한 시신이 된 그분의 몸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조차 두렵고 심히 역하다. 게다가 죽은 시신은 무겁다. 시신을 내리는 동안 온몸에 엉긴 그분의 피는 그들 몸과 옷을 피로 물들인다. 하지만 그분의 친구 열 두 명 누구에게도 그분의 핏자국은 묻지 않았다.
니고데모와 요셉 두 사람, 그분의 피를 나눈 자들. 널따란 바위에 시신을 누이고 또다시 그들 손에 피를 묻힌다. 가시관을 썼던 상처에 남은 피부터 닦는다. 두 손 못자국 상처에 고인 피도 닦는다. 창에 찔린 허리 상처 깊이 엉긴 피 역시 닦아낸다. 못 막혔던 두 발에 남은 큰 상처 핏덩이 역시 마지막으로 닦아낸다.
그들 손은 무척 빠르다. 해 떨어지면 하던 일도 손을 놓아야 한다. 혹 이 장례에 관여했다가 안식일 종교 관습을 어기는 날 엄청난 불경죄 면할 길 없다.
아마포로 온몸을 동여 싼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준비한 몰약 그릇 뚜껑을 연다. 주변은 금세 향내로 가득하다. 아마포로 온 몸을 싸는 동안 알로에가 섞인 몰약(Myrrh)을 온 몸에 바른다.
몰약은 아주 값진 물품이다. 죽음을 향내로 감싸는 놀랍고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몰약은 높은 산 석회암 바위틈에서만 자라는 가시나무 계통 감람나무과 미르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을 가공한 향유다. 나무 그 자체를 만지기만 해도 특이한 향내를 뿜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나무 진액을 추출하여 의료와 향료 그리고 미용을 위해 사용한다(아가 5; 마 태복음 2:11; 마가복음 15:23; 요한복음 19:39).
그리고 알로에(Aloe) 역시 값진 향유다. 인디언 알로에라 불리는 것으로 이집트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향유다. 니고데모가 준비한 몰약을 무게로 따지면 100파운드(Lbs) 혹은 45Kg에 해당하는 엄청나게 많은 양(요한복음 19:39). 그런 양이면 죽은 사람 200명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값을 따진다면 오늘날 미화 약 15 만 내지 20만 불어치!
혹시나 자존심 상할까 봐, 아니면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그의 본성처럼, 늦은 밤 은밀하게 그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밤 이후 그는 거듭나는 은총에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눈이 열린다(요한복음 3:1, 2).
그분의 안위를 생각해서 그분과 거리를 둔 채 은밀하게 따라왔다. 그분을 섬긴다며 별나게 부산떠는 편보다는 숨은 제자로 그분을 따른 사람 니고데모. 왜 그토록 값진 향유를 그분의 시신에?
거듭난 후 그에게 찾아온 구원의 감격은 제아무리 값진 향유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사랑과 존경과 숭배(Love, Respect, Reverence) 그 세 단어를 빼고는 그의 은밀한 선행을 해석할 길 없다. 그분을 메시아로 믿지 아니하고는 도저히 이런 값진 헌신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충격적인 선행은 왕과 메시아에게 바치는 예배 의식 그 자체. 집 한 채 값 향내 나는 기도를 드린 셈!
한 편 요셉은 무덤을 바친다. 당대 지상 위 돌로 깎아 만든 이런 무덤은 왕족이나 엄청난 갑부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 내는 거액에 해당하는 가치.
아리마대 요셉 역시 조용히 따르는 제자요 후원자(요한복음 19:38). 이 두 사람, 참 신기하게도 은밀한 제자의 모습으로 그분의 마지막 장례를 책임진다. 그분은 무일푼으로 지난 3년간 거리 거리 동리 동리 오가며 선교를 펼치셨다.
우리가 종종 넉넉한 목회 재정 꿈꾸는 동안, 그분은 저축할 엄두는커녕 그분 포함 열 세 사람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 선교 살림 꾸리셨다.
그분의 장례비는 지난 3년간 한솥 밥을 먹은 친구들 호주머니에서 한 푼도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이 두 경건한 사람이 바친 비용. 하지만 이 호사스러운 장례는 결코 그분의 유언 아니다. 오로지 이 경건한 두 사람의 감동이 지급한 은혜다.
이 호사스러운 장례는 오늘날 교회의 성을 쌓으라는 목회의 모본이 결코 아니다. 나와 나의 교회가 추구하는 것, 그 최고의 목적과 의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최고 가치를 우리가 소유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에 감동하여 지급하는 일.
혹 향내 나는 몰약으로 내 삶 치장하고 싶은가? 혹 향내 나는 몰약으로 내 목회 치장하고 싶은가? 혹 내 몸에 몰약 뿌리고 내 몸이 들어가 쉴 무덤 가꾸기에 바쁜 우리의 선교나 목회는 아닌가?
아낌없이 몰약으로 기름 부음 받을 몸은 나 개인이나 나의 교회나 나의 목회도 아니다. 오로지 그분만이 최대의 경배와 감사와 사랑으로 기름 부음 받으실 분! 이것이 바로 니고데모와 요셉이 조용히 외친 향내 나는 설교다.
부활 메시지에 감추어진 이 엄청난 헌신적 스토리, 우리는 종종 건너뛴다. 부활하실 주님 그분께 우리가 바칠 것은 우리가 준비할 향유다.
주님 그분께 바칠 사랑과 존귀와 영광을 가로채면서 부활을 축하하고 찬양할 수 없다. 주님께서 이 땅을 처음 방문하실 때 먼 나라 동방에서 찾아온 동방박사 역시 이 향내 가득한 몰약을 아기 예수께 선물로 바쳤다.
그 첫 몰약, 이집트 피난길 주님의 가정 생활비 밑천. 그리고 마지막 선물 몰약은 부활의 향내 뿜어낼 니고데모와 요셉의 헌물. 또한 우리의 헌신이다.
*Reference:1)Horace, 호라티우스; 로마 시인, 65-8 B.C. Epistle 1.16.46-48. 2)Lightfoot, 2.374; emphasis original. 3)Wars 3.8.5; Lane, 578
*Source:https://gracerector.wordpress.com; https://www.biblestudytools.com; http://footstepsineden.blogspot.co.uk; http://www.plaza1.net; https://www.dailystar.co.uk; https://www.christiancouri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