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래의 제목은 Mourning To Dancing이다. 시편 30:11에서 나온 말인데, “You have turned my mourning into dancing for me”이라는 구절이다.
한글로는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라고 쓰여있다. 이 노래 또한 내 공연을 위해 쓰여진 노래인데, 다른 작곡된 노래들과는 달리 완전히 이 성경 구절에 맞춰서 쓰여진 노래이다.
다른 노래들은 어느 정도 나의 생각과 깨달음이나 고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면, 이 노래는 나의 생각을 최대한 배제 시키고 이 성경 구절을 가지고 음악만 고민했던 노래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하나를 짚자면 이 노래는 두 개의 장르를 갖고 있다. 한꺼번에 장르 두 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두 장르를 따로 노래를 반으로 잘라서 나눠져 있다. 첫 번째는 재즈힙합의 풍이고, 두 번째는 라틴 풍이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하나 나눈다면 나에게 가장 눈물을 고이게끔 하는 재즈 장르는 힙합이다. 왜인지는 전혀 모르겠는데 그 예쁜 화음들이 음악 위에서 놀고 있고, 드럼의 멋이 흐르는 비트가 밑을 깔 때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정말 좋다.
여러분이 나와 같은 감성일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나의 작곡의 의미와 그 뿌리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힙합이 슬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의도했던 그런 음악은 어떻게든 나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정이 북받쳐 오는 그런 음악이다.
그 동시에, 나에게 춤을 추게끔 하는 재즈 음악은 무조건 라틴 음악이다. 라틴 춤이 유명하기에 상상도 쉽겠지만 라틴 음악의 흥겨움이 나의 흥이 되고 그 흥이 몸과 목소리에서 분출 되면서 즐기기 좋다.
밴드 일원들이 모두 스스로의 역할을 알고 무엇을 연주할지 알기에 모든 작은 음악의 부분들이 큰 그림으로 흥이 충만한 음악을 만든다. 특히 피아노 부분이 하는 montuno라는 기술이 있는다.
이것은 반복적인 패턴이 코드에 따라 움직이는 건데 나의 개인적인 의견에서는 라틴 음악에서 가장 흥이 나게끔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완전하게 나의 개인적인 음악적인 취향과 감성으로 두 절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최대한 음악으로 슬픔의 눈물이 기쁨의 춤으로 바뀌는 이야기를 펼쳐야 하는 내 자신의 철학과 신앙이 또 나와야 했던 것이다.
작곡을 하면서 그 시편 구절을 묵상하던 가운데 깨달았던 부분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을 바꾸지 않으시다는 것이었다.
“주께서 나의 슬픈 상황과 고난을 없애주셔서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라고 전혀 쓰여있지 않은 것이다.
어려운 상황들과 고난과 환경이 그대로 있고 버티고 있을 때, 하나님은 나의 슬픔을 춤으로 바꾸셨던 것이다. 기쁨은 상황에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기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복으로 주셨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는 음악으로 풀기 너무나도 쉬워졌다. 벌써 힙합과 라틴 두 절로 만들려는 의도는 있었기에 이 깨달음을 표현하기는 쉬웠다. 똑같으면 되는 것이었다.
힙합 절과 라틴 절의 멜로디는 똑같았다. 장르가 달라서 들리기엔 다르겠지만 거의 똑같았다. 이 의미는 멜로디가 똑같더라도, 전혀 바뀐 것이 없을지라도 그 장르 자체가 바뀌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정반대라는 것이다.
만약에 라틴 풍에서 내가 멜로디를 새로운 걸로 작곡했다면 그 어려운 상황이 좋은 상황으로 바뀐 느낌일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세상에 말하고 싶지 않았다.
환경은 그대로 어렵고 어둡겠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 자체를 바꾸어서 그 환경 마저 감사의 제목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