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마을에서 만난 선교사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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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었는데 그 중 잊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수상마을 방문이었다. 내가 홀로 남기 전 우리 선교팀과 함께 수상마을을 방문했었다.

수상마을은 배를 타고 약 2시간 동안을 쉬지 않고 달려야 했다. 그것도 그때 비가 와서 물이 있어 배로 건널 수 있었지만 건기 때는 강이 다 말라 오토바이로 가야 한다고 했다. 가는 길 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그 여정은 쉽지 않았다.

배는 비좁았고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뒤집어질 수도 있었다. 한 자세로 2시간을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위에는 아무런 커버가 없어서 땡볕 아래 그대로 노출되어야 했기에 나에게 있는 모든 걸로 햇빛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수상마을에 다녀와서 엄청 탄 사람들도 많았다.

중간에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어졌는데 중간에 멈출 곳이 없었고 배를 운전하는 캄보디아 아저씨는 계속 10분만 더 가면 된다고 했다(캄보디아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했다. 1시간 남았는데 10분이라고 얘기한단다). 나중엔 ‘그냥 물에 뛰어들어 자연스럽게(?) 볼일을 볼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게 고생고생 해서 간 그곳에는 여자 선교사님과 선교사님의 젊은 딸이 선교하고 있었다. 그곳 마을 아이들은 선교사님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고 선교사님과 딸은 유창한 캄보디아어로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또 그 마을 목사님을 도와 사역했다.

그곳에서 선교사님의 이야기와 또 내가 함께 있는 선교사님이 동역 할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 하는데 우리 모두 너무 깊은 감동을 받아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그곳에 다녀온 후 나는 한번은 혼자라도 꼭 더 가보리라고 마음 먹었고 연락이 닿아 수상마을을 한번 더 방문할 수 있었다.

수상마을 선교사님은 육지에선 카페를 운영하였고 먹을 것 등 필수품을 장만하러, 또는 일이 있을 때 육지로 나왔다. 그때 선교사님이 2틀 연속으로 육지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함께 가면 어떻겠냐고 해서 같이 동행했다.

처음에 갈 땐 한 3일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나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수상마을은 이름처럼 주로 밥벌이가 고기잡이였다. 그리고 내가 갔을 때가 한창 고기잡이 철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이 가난하고 한 철 일하고 한 철 번 것으로 연명하게 될 때가 많으니까 어린 나이 때부터 아이들은 집안 일을 하고 학교 대신 일터에 함께 가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들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것이 안타깝지만 그들을 뭐라고 할 순 없는 것 같다.

결국 답은 다음 세대가 될 지금 세대의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는 것뿐. 선교사님 또한 아이들이 미래라고 생각했다. 어른들도 물론 함께 예배하지만 아이들에게 많이 집중했고 아이들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마음을 열고 선교사님을 잘 따랐으며 나보다도 성경구절을 더 많이 외우고 있었다.

성경공부 시간이 되면 알아서 아이들은 선교사님이 집에 모여들었고 리더 역할을 하는 언니오빠들은 어린 아이들을 이끄는데 자연스러웠다. 찬양에 맞춰 율동을 하는 그 모습이 어설퍼 보일지언정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예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보기에도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웃음이 났다.

수상마을 집들은 대부분 겉은 그럴 듯 해 보여도 속은 아니다. 방으로 나눠진 곳은 많이 없고 밖에서 들여다보면 안이 훤히 보인다. 화장실이 없는 집도 많고 우기 때는 물이 차서 뱀이 집으로 올라오기도 한다고 했다.

선교사님 댁은 그나마 나았다. 선교사님도 처음엔 이렇지 않았지만 현지인들과 똑같이 사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했다. 처음 집에서 자고 며칠 동안 너무 벌레에 시달려 결국 장판을 깔았고 그렇게 하나 둘씩 필요한 것을 갖춰 나갔다고 했다.

물이 부족할 땐 씻는 것도 어려웠고 요리시설도 협소해 수상마을에선 건강하게 먹지 못하고 때우듯이 먹는 경우가 많아 보였다. 장을 보는 것도 수상가게의 물건값은 육지의 두 배이기 때문에 한번 나갈 때마다 한 가득 실어 온단다. 모기장도 철저히 치고 잤지만 모기인지 벌레인지 모를 것들에 수십 방이 물려 한동안 고생해야 했다.

전기가 있어 작은 불은 킬 순 있지만 밤에는 벌레들이 너무 날라 들어 켤 수가 없었다. 사방이 뚫려있어서 혼자 자는 게 아니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어두운 밤이 되니 은근히 무서워서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가끔은 선교사님도 무서울 때가 있어 마을 아이들 몇 명과 함께 잘 때도 있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리를 걷고 바닥을 쓸었더니 까만 색 벌레들이 정말 한 가득 나와 경악했다.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나니 3일 있을 자신이 조금 사라졌다. 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을 보며, 마을 사람들의 변한 모습들을 보며 선교사님이 힘들어도 왜 이곳에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선교사님의 딸은 나보다 조금 어린 친구였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구하지 않고 엄마와 함께 이곳에서 섬기기로 결정했다. 물론 사회생활도 만만치 않지만 젊은 시절을 이렇게 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면 이곳이 너무 그립다고 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도 그 곳이 그리운걸 보면 하나님의 일은 우리 머리로 헤아릴 수 없는 것 같다.

잠시 있었던 나에게도 그곳은 그렇게 다가온다. 하루도 그냥 편하게 넘어가는 날이 없는 그 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너무도 큰 것에 놀라울 뿐이다.

Really, God works in mysterious w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