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목사, 아! 그 목사님! 사람들이 말하는 이 한 마디에 그가 어떤 목사인지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이민사회 속에서 우리 목사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또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목사이며 어떻게 불리고 있을까? 이 문제는 목사 된 자의 정체성과 그 사역인 목회를 되짚어 보게한다.
이민사회의 다양하고 많은 한인 커뮤니티들 가운데 교회는 가장 중심에 있는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늘 목사가 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꾸준히 오르내리는 말 거리가 교회와 목사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이민사회 역시 목사의 위상과 영향력은 존경받는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사회적 이슈가 다양하지 않은 이민사회 속에서 목사는 사람들의 입 도마 위에 오르는 생선과 같고, 사람들의 입 속에 들어있는 껌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은 목사 하기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건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상황까지 고려하면 목사는 잘 해도 욕을 먹을 수 있다. 즉 목사는 일을 안 해도 욕을 먹고 일을 해도 욕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래저래 욕 먹을 바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욕을 먹는 것이 옳다. 그 마음이 모든 상황에 대하여 자유를 누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라이프 신문으로부터 2016년 한 해 이민 목회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의뢰를 받았을 때 주보에 작은 칼럼을 쓰는 일도 버거울 때가 있건만 한 해 동안 신문에 연재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 분명하기에 여러 날 고민이 됐다.
하지만 내 마음과 생각, 그리고 목회적인 경험 속에 뭉쳐 있던 실타래를 풀어 옷을 짓는 심정으로 ‘목사여, 목회여!’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목사와 평신도 또 여러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진솔하게 짚어보고 함께 고민하고 은혜 가운데 가려운 곳을 함께 긁어보려고 한다.
목사 직(職)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명이고, 목회는 목사 된 자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감당하는 사명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았다는 천명(天命)의식이 뚜렷하지 않으면 목회선상에서 교회와 주님의 양 무리들을 섬길 때 여러 일들과 상황을 겪으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올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분명히 보내심을 받은 자만이 목사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수많은 부르심 가운데 목사로의 부르심은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며, 목회로의 보내심은 가장 숭고하다. 왜냐하면 셀 수 없이 다양한 부류와 장르의 사람들을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다 포용하여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그 분 앞에 세워야 하는 직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꿈을 현실로 삼거나, 때로는 너무도 열악하고 힘들게 살아온 것이 마음에 한이 되어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내용이 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목사가 된다는 것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목사는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여 부르셔야만 그 직분을 받을 수 있으며 또한 그 이후에 목회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가 되어 목회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자기에게서 생성된 자기 꿈의 실현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선택 받고 구별 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통하여 누구나 성소의 찢어진 휘장 사이로 들어가 하나님 전에 설 수 있는 만인 제사장이 되었지만 목사는 그 만인 제사장들을 목양하는 사명을 띠고 그들 가운데서 다시 한 번 선택 받고 부름 받은 자이다.
모세는 나이 80세 때에 호렙산 떨기나무 사건을 통해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사무엘 선지자는 어머니 한나의 기도를 통해 구별된 나실인이었으며,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모태에 짓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알았고 출산되기 전에 성별 받아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으며, 구약과 신약의 400년 중간역사를 깨고 나타나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반드시 하나님께로 부터 부름 받은 것이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목사가 된다는 것이 쉽고 간단해 보여서일까?
우리 시대의 난감함 가운데 하나는 쉽게 목사가 되고 또한 쉽게 목사임을 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나 은혜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신학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 성경을 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어서 신학교에 들어가겠다는 사람들을 나는 여럿 말렸다. 왜냐하면 어떤 사건을 겪고 은혜를 받았다고 다 목사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학교는 성경이 아닌 신학을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에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오히려 더 혼란과 의문이 가중되고 증폭되면서 오히려 현재의 믿음마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은혜를 받았으면 받은 은혜를 바탕으로 교회 안에서 자신의 은사를 따라 감당해야 할 일을 찾아 섬기는 것이 옳다.
뭐든지 많아지면 존재가치와 희소가치가 희박해지면서 귀하게 여김도 함께 사라지는데 우리 시대에 목사가 많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어쩌면 목사 자신도 스스로를 귀히 여기지 않고, 사람들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분명한 소명(calling)을 받은 사람만이 목사의 길을 가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어찌 목사가 되었다고 해도 목회 현장에서 사람과 상황의 다양한 벽에 부딪칠 때마다 자신도 방황하고, 자신을 보고 있는 교인들도 알게 모르게 방황하게 되기 때문이다. 부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찌 보내심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이건 모든 목사들이, 또한 목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문제이다. 목회는 직업이나 낭만이라고 하기에는 그 현장이 너무 냉엄하다.
이민 목회의 격정적인 현장 속에서 주님께 부여 받은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며 고군분투하는 목회자가 겪는 애환과 고뇌를 진솔하게 이야기해 가면서 목사와 평신도 모두가 바라는 그런 목사, 참 목회자 상의 모습에 다가서려고 한다. 그 일을 위해 지혜의 샘에서 좋은 물을 길어 글을 쓸 수 있도록 여러 독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