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를 지나 시험산으로 가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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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시험산 전경>

갈길이 머니 도시락 좀 챙겨 줄까?” 예수님, 이른 새벽 어머니 마리아와 작별 인사를 나누신다. 세례 요한을 만나기 위해 길 떠나는 아들을 보내는 어머니 마리아,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예수님의 생애는 작별의 생애다. 지난밤 온 식구들 모여 가족모임이라도 하셨나?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시큰둥하여 등을 돌린 채 일찍 잠자리 청한 형제들은 없었나?

오늘 이 길 떠나면 새벽 일찍 일어나 지어주는 고슬고슬 어머니 마리아의 쌀밥 사랑도 더는 기대할 수 없다. 이제 더는 가족의 정이 눈앞을 아른거려선 안 된다.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 나눌 시간만이 필요한 시간이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누가 나의 어머니이고, 누가 나의 형제냐?”(마가복음 3:31-35) 예수님의 이 답변을 들어보면 집을 떠나신 후 더는 집을 찾지 않으신 듯하다.

곧장 요단강에서 광야의 소리, 세례자 요한을 만나신다. 두 사람 서로 친척이라지만 왕래가 없었다. 요한은 그 동안 광야 수도생활에 바빴다. 이 땅을 끌어안은 두 중보자, 마치 선수 교체라도 하듯 요한은 광야에서 나오고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곧장 광야로 들어가신다.

40일 금식기도!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으셨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Driven by the Spirit…” 영어 표현을 빌린 내 표현으로 말하자면, 요단강에서 나오자마자 갑자기 성령께서 찾아오신 후 예수를 차에 태우고 목적지도 밝히지 않은 채 덜커덩거리는 비포장도로 길 따라 흙먼지 날리며 어딘가로 바삐 향하신다. 도착한 곳은 바로 광야다.

요단강에서 시험산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냐고 구글맵에 물어보니 대답을 못 한다. 하여 눈대중으로 일직선을 긋고 계산해 보니 직선거리 9km 정도. 오늘날 이 코스는 예루살렘에서 사해로 내려가는 남북 횡단 고속도로 90번 길목이다.


시험산 안내판과 시험산 중턱에 세워진 케이블카 승차장

다시 말해, 해발 750m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해면보다 250m 낮은 곳을 향해 줄곧 거의 1,000m에 이르는 비탈길 코스 끝에 만나는 도시가 여리고다. 하지만 낮은 요단강 골짜기에서 사막 고지대 시험산으로 올라가자면 엄청 힘든 코스다.

그리고 반드시 지나쳐야 할 곳이 바로 BC 9000년경부터 지구촌 인류가 세운 가장 오래된 문명 도시로 알려진 광야 한가운데 자리 잡은 여리고 도성이다. 예루살렘 북동쪽으로 36km, 요단강과 사해가 합류하는 북서쪽으로 15km 지점, 지중해 해면보다 250m낮은 현지 아랍인들이 아리하라고 부르는 신기한 도성이다. 이러한 지형 덕분에 땅이 비옥하여 예로부터 종려나무 성이라 불렀다.

오늘날 역시 푸른 야자나무와 오렌지 농장으로 부유한 도성이다. 삭개오를 만나셨던 주님을 생각하게 하는 수 천년 나이를 먹은 뽕나무도 이곳에서 만난다. 본래 요르단 영토였으나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 땅이 되었다.


시험산 아래 펼쳐진 기름진 여리고 오렌지 농장

오늘날 여리고의 콰란타니아라 불리는 동리에 도착하면 자발 알 카란탈이란 아랍어 이름을 가진 366m 높이의 거대한 바윗덩이 산이 눈앞에 다가온다. 바로 시험산이다!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을 치르신 현장은 산 중턱 동굴이 있는 곳으로 추정한다.

신기한 것은 이곳 주변 광야 어디서나 만나는 빵처럼 생긴 돌투성이! 차를 타고 지나가도 보이는 온통 광야에 빵을 쏟아부어놓은 모습!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광경을 만나지 못했다.

눈에 들어오는 세상 왕국을 주겠다며 마귀가 거래를 제안한 곳은 이 산의 정상으로 추정한다. 나사렛 촌동리 출신 예수님, 마치 요즘 흔한 드론 카메라로 상공에서 여리고 도성을 보고 계셨다고 상상하시라! 시험자는 가까이 다가와 아마 이 여리고 도성을 내어주겠다며 부동산 거래를 한듯 하다. 하지만 예수님 역시 말씀으로 맞서신다.“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라…” (신명기 6:13, 6:16, 8:3).

시험산과 산 아래 여리고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예수님 당시 무려 12,000여명에 이르는 유대 종교 고위층들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기름진 이 여리고 땅에 진을 치고 살았다. 고위층들도 가끔 시험산에 올라가 금식하였을까?

한편 이시대, 고위층 종교인 행세하는 성직자들은 없는지 걱정이다. 이 거친 시험산을 금욕과 겸손의 신앙 틀을 잡아주는 장소로 여긴 희랍 정교회 비잔틴 승려들이 주후 4~6세기경부터 자연 동굴을 터전으로 삼고 수도생활을 시작한다.

그들에게 있어 척박한 삶의 환경은 극복해야 할 시험거리였다. 험한 바위산 기슭 빗물을 저장하여 예배실과 방 및 창고를 만들어 금욕의 삶을 꾸렸다. 614년 페르시아 침범으로 방치된 후 12세기 마카비스의 하스몬가의 요새가 된다.

그 후 십자군이 도착하여 두 개의 교회당을 세운다. 1875년 현재의 희랍 정교회 수도원이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를 잡는다. 마치 당시 시험 광경을 대변이라도 하듯 바람에 뒤룽거리며 공중에 매달려 있는 수도원을 만난다. 수도원 교회당은 성경 인물과 성자들 그리고 성경 사건을 묘사한 아이콘으로 꾸며져 있다.


낭떠러지에 매달려있는 희랍 정교회 수도원

19세기 말 다른 정교회 수도원을 짓다가 기금이 부족하여지자 중단한 다른 수도원 유적지도 산 정상에 있다. 오늘날 약 6명의 승려들이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산 정상까지 걸어 30여 분 걸리는 길을 1998년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합자회사가 건립한 4,300피트에 이르는 케이블카 덕분에 5분 만에 정상을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 승차장이 세워진 여리고의 텔 에스 술탄은 현재도 발굴 중인 여리고의 선사시대 및 성경 고도시 유적지다. 사순절 순례길, 여리고 도성을 지나 시험산을 걸어가신 주님의 발자취를 생각하며 오늘 나의 삶의 현주소를 묵상한다.

*Reference: F. W. Farrar, The Life of Christ, Cassell Petter & Galpin (London, Paris & New York: 1904); John Milton, Paradise Lost (Book 4. 800); https://en.wikipedia.org; http://www.seetheholyland.net; http://bethlehem-israel.info; http://abrahampath.org; https://sacredsites.com; http://makeshiftdarkroom.com; https://www.monergis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