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성경을 붙들어야

김기오 목사<타우랑가 샘물교회>

목사와 성경!
참 명확하면서도 또한 글을 쓰기가 쉽지 않은 주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 대한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너무나도 많이 소개되어 있고 특히 목사 된 자로서 성경을 말하라면 할 얘기가 무척 많지만 나의 경험과 연관된 ‘목사와 성경’에 대해 말해야 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했다.

이모 할머니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나의 신앙의 뿌리는 이모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모 할머니는 감리교의 전도사로 평생을 홀로 사시며 충청남도 당진, 예산, 홍성 등을 다니며 복음 전도자의 사역을 하셨고 교회를 세우셨는데 그 이모 할머니의 전도로 어머니께서 복음을 받아들이셨고 나와 동생들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까지 온 가정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어린 시절 이모 할머니께서 집에 오셨을 때마다 늘 곁에 지니고 계셨던 성경 책을 보았는데 내가 처음으로 성경 책을 본 것이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다. 그 이후 교회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목사님, 전도사님, 선생님들의 설교와 여러 성경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성경은 나에게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은 나를 잡아당겼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당시 교회보다 재미 있는 곳은 없었다. 유년 시절에 만화책과 더불어 재미있었던 책이 성경책이었다. 그렇게 성경책은 천천히 내 손에 들려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성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성경을 통독하게 하고 1년에 두 번씩 성경 시험을 치르게 했지만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성경을 신학 연구하는 용도로 접근했던 것 같다. 성경을 대하는 것이 일종의 학문과 의무감이 되면서 그때부터 성경은 하나의 책이 되어 버렸다.

성경을 읽자
성경 책을 본격적으로 가까이하게 한 것은 교회에서 현장 사역을 하면서부터 였다. 전도사와 강도사 시절 유년주일학교, 학생회, 청년회를 지도하면서 말이 지도하는 것이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르칠 자료와 재료 찾기에 급급했던 시절이었다.

가르치고 지도하면서도 늘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급증에 목말라 있었다. 나 스스로 목마름과 지침이 반복되다가 어느 날 기독교 교육의 원천인 성경에서 답을 찾자고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성경을 한 권 사서 펜으로 줄을 그어가면서 성경을 통독해 나갔다. 어느 날 보니까 성경 책 겉가죽이 닳았고 손 때 묻은 성경이 보기에도 좋고 성구를 찾기에도 편하고 실제로 사역에서 활용하기에도 유용했다. 그만큼 그 성경책이 손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 때 묻은 성경에 스스로 만족해하는 내 모습에 어리석음이 비쳤고 앞으로 최소한 일년에 성경을 한 권씩 사서 읽자고 새롭게 마음을 다졌다. 그렇게 구입해서 읽고 통독을 마친 성경 책들이 쌓여져 갔고 내게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성경으로 설교하자
성경이 설교를 설교 되게 한다. 목사가 되고 강단에 서게 되면서 설교는 목회의 가장 중점 사역이 되었고 성경 통독과 암송을 통해서 쌓이게 된 성경의 지식은 설교를 준비함에 있어 매우 유용했고 큰 힘이 되었다.

내게는 설교를 준비할 때 분명한 원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설교 준비의 시작을 성경의 본문을 정하고 삼십 번 이상 읽는 것이다. 성경을 접하는 사역자의 삶을 해왔기에 한두 번 읽으면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니까 별 감흥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이 본문으로 뭘 설교할 수 있을까 싶은데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성경 본문을 읽다 보면 성경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영감의 구름이 떠오르게 한다. 영감은 삽시간에 밀려온다. 그때 그 영감을 붙들기 위해 펜을 들고 써 나가다 보면 평범한 본문의 내용에 드디어 설교의 뼈대가 세워지고 내용들이 채워지고 옷이 입혀진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와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달라고 기도 한 다음에 강단에 올라 설교하게 된다. 그러면 참 이상하다. 참 신기하다. 별것 없어 보이는 그 설교에 은혜를 받고 교인들의 마음과 삶이 달라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설교를 위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있는 성경 지식을 뽑아서 쓰기 시작했다. 설교가 아닌 내 생각을 담아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교만은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했다.

그것이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신으로 끝마치려는 것인지도 모르고 여러 책들과 자료들을 수집했고 거기에 성경을 꿰어 맞추는 식으로 설교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익숙해져 갔다. 더 점입가경이었던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설교를 잘 준비하는 것이고 설교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것이 설교의 외도(外道)라는 것을 몰랐다. 알게 되었을 때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설교는 세련된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간혹 그런 소리를 듣기는 하는데 사람들이 달라지지 않는다. 강단에서 보면 설교를 잘 듣는 것 같은데 들을 때 뿐이다. 설교를 듣고 난 다음 그들에게서 건강한 신앙생활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뭐가 잘못된 것이지?’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머리로 준비해서 전한 설교를 듣고 교인들이 머리만 커진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상황을 보면서 내가 전도사 시절의 풋내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설교를 잘하려고, 사람들 듣기에 고상한 말을 하면서 설교에 온갖 멋을 부리고 있었다. 성령께서‘너 잘못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주신 후 맛깔스럽지 않고 멋스럽지 않아도 모든 것을 성경에서 찾고 성경을 통해 준비하고 성경으로 말하는 설교를 하기 위해 예전처럼 다시 성경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도 성경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성경으로 설교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설교가 설교에서 멈추지 않고 진정 성경의 울림이 되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다. 성경이 설교의 처음이요 끝이라는 마음으로 성경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성경으로 설교한다. 이 중심으로 죽는 날까지 성경을 붙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