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순위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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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에는“초대교회를 닮자”는 성령행전적인 교회가 되기를 갈망하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래서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표어들을 자주 발견하게 되고, 그 간절한 기도의 응답의 결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인 동시에 성령 하나님의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놀라운 구원의 역사의 기록인 동시에 성령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 선교사의 행전인 셈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뿌리와 교회의 본질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사도행전 1:8절의 명령은 바로 우리 교회가 성경적이며, 성령론적인 교회인가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시금석과 같은 것이리라 믿는다.

지형론적 경계를 벗어나라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흔히 듣는 하소연과 같은 불평은“아직도 한국에 전도해야 할 데가 많은데 국내선교를 먼저 해야 해외 선교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선교사니까 선교이야기를 하는 거지 정말 현실을 이해한다면 해외선교만 이야기하는 것이 온당치 않다라는 일종의 핀잔이자 원망일 수도 있다.

아직도 어려움 가운데 사역하는 미자립 농어촌교회 사역자들과 교회들을 보면 해외 선교하는 기금의 10%만 써도 훨씬 낫지 않겠느냐는 항변이다. 통계적으로 어쩌면 현실적으로 맞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단코 단 한번도 예루살렘을 선교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나서 땅끝까지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헬라어 단어 카이(Kai)는 단계적인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분사로서 동시적으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의 해석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사도행전 2장의 부흥을 기다리며 지금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의무를 복종하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선교는 경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교회가 재정적 자립과 풍요할 때 선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교회는 참으로 선교하는 교회로 전환하기에는 어쩌면 매우 어려울 지도 모를 것이다.

세상의 어느 교회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에 선교사를 파송한 적이 없다. 따지고 보면 교회에는 수많은 더 큰 경제적 필요들이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선교사 파송은 제일 중요한 우선순위이자, 사역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도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순종을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옛날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유명한 모라비안 교도들은 5가정이 한 밴드가 되어서 한 가정의 선교사를 파송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 것처럼 선교는 교세나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론적 입장에서 보아야 함을 일깨워준다.

시니어 선교사들의 후원을 끊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기현상 가운데 하나는, 선교지에서 10년 또는 20년 이상 되어 실질적으로 현지문화 적응과 언어 능력을 갖추고 실질적인 사역이 더 원활해지고 깊이가 있는 선교사들이 실제적으로 파송교회나 후원교회로부터 후원이 중단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점이다.

교회는 10년, 또는 20년 이상 지원을 하다 보니 새로움이 없고, 뭔가 보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함을 느껴 새롭게 시작하는 신임 선교사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물론 선교지원을 한 지역교회의 사정이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선교사가 적어도 한 문화권에서 제대로 사역을 하려면 적어도 10년 정도의 현지생활과 언어훈련이 필요하다.

마치 한 명의 조종사를 길러내는 데 수억 원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것처럼, 한 명의 현지사역이 가능한 선교사를 길러내는 데도 동일한 투자가 필요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선교사 지원을 현 시니어 선교사 지원을 끊고 그 동일한 후원금을 새로운 신임 선교사에게 후원한다는 점에 있다.

즉 새로운 지원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대체하는 것으로 머문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한 명의 선교사를 육성하고 키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가 간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선교는 그 무엇보다도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에게 있음을 우리는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선교사 선발과 지원결정에 있어 인간관계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신중한 결정을 하여야 하고, 그리고 그 지원은 지속적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사의 삶과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라
내가 선교현장에 있을 때 함께 동역하던 미국이나 유럽에서 파송 받은 선교사들에게 늘 갖는 부러움이 하나가 있었다.
즉 그것은 후원교회나 파송교회가 매달 보내는 선교후원이 전부가 아니라, 성탄절, 부활절, 생일, 심지어는 결혼 기념일, 그리고 자녀들의 생일들이 돌아오면 교회로부터 카드와 선물을 받는 모습을 볼 때이다.

그리고 안식년이 돌아올 때쯤 되면 교회가 선교사에게 안식년을 보내는 계획을 함께 의논하고 그 지원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러운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은퇴 이후 선교사의 국내 귀환을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개인 복지기금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에게 있어 선교사 지원이란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선 인생의 전방위적 사이클을 함께 하는 동반자적 관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한국교회도 단순히 선교사를 파송하는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가 시간이 지나면 그 선교역량의 확대가 늘어남을 확인하고 보다 전방위적인 동반적 관계를 구축하는 즉 선교사 멤버케어와 더불어 관리의 영역까지 함께 동행하는 관계로 증진되어야 할 것이다.

흔히들 교회는 선교사를 돕는다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선교사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함께 동역하는 관계임을 다시금 생각해보며, 선택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교회의 우선순위임을 다시금 확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