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눈길 보내는 곳에

이른 아침 카페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중, 아슬아슬 흔들리는 그림자 하나가 제 눈길을 끕니다. 다리가 불편한지, 남들과는 걷는 모습이 조금 다릅니다. 흔들리는 그림자 뒤로 더 큰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따라옵니다. 마치 걸음마 하는 아이를 따라가는 아빠의 모습 같지요.

그들을 못 본 척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기지개를 펴는데, 두 그림자의 주인공이 제 옆자리에 앉습니다. 삐뚤거리는 그림자의 주인공이 제 옆에 앉더니 더 삐뚤거리는 손으로 커피 한 모금을 마십니다.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커피의 흔들림과 커피잔을 놓치듯 내려놓는 소리. 그 흔들림을 보아하니 아마 파킨슨병 초기쯤을 지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래도 아직은 뇌 속의 도파민의 힘이 조금 남아있어 자유롭게 걷고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 뒤에 따라오던 그림자의 주인공이 앞자리에 마주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한 중년 여성이 밝게 웃으며 조잘대고 있습니다. 웃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는 듯 바라보는 남성의 눈빛이 너무 예뻐 같이 빙그레 웃게 된 아침.

흔히 우리의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눈은 말 한마디 없지만 말보다 더한 것을 뿜어냅니다. 눈빛에는 당신이 궁금합니다. 좋아합니다. 아름답네요. 미안해요. 나는 진실합니다 라는 진심이 묻어 나옵니다.

지난 3년간 병원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아픈 사람과 그의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는 입가에 미소 짓게 하는 추억으로 남은 사람들이 있고 추억과 함께 그들의 눈빛과 웃음이 같이 떠오릅니다.

병원에는 아픈 환자들의 눈빛도 있지만, 아픈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과, 아픈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눈빛, 오랜 친구를 마주하는 눈빛, 사랑하는 배우자를 바라보는 눈빛같이 따뜻한 눈빛이 오갑니다.

네가 어떠한 모습, 어떠한 상태여도 나는 너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눈빛들이죠. 마치 이른 아침 카페의 남성의 눈빛이 그러하였던 것처럼요. 그리고 그 모든 눈빛의 공통점은 그저 바라봄이 아닌 살펴봄의 눈빛이라는 점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위독해져서 병상에 누워있습니다. 그 옆에 앉아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이 하루 종일 할머니 머리칼을 쓰다듬습니다. 의사와 함께 할머니를 보는데, 의사가 할아버지에게 한마디 합니다. “심장에 물이 차는 병이에요” 라고요.

할머니의 심장에 물이 찬다는 말에 할아버지 눈에도 물이 차오릅니다. 할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으시더니 한마디 하십니다 .“이제 준비해야 해요?” 하고요.

할아버지라고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겠지만, 의사의 끄덕임과 동시에 할아버지의 눈물도 뚝 떨어집니다. 말없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보고, 할머니가 언제 깨어날지 몰라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옆에 두고 기다리는 할아버지. 며칠 후에 할머니 가는 마지막 날에 입을 옷을 직접 고르고, 마지막에 할머니 손에 쥐여줄 꽃 한 송이도 준비합니다.

그 모습이 예쁜 건지, 안타까운 건지, 지나가는 모든 의료진이 같은 눈빛으로 부부를 바라봅니다. 옆에서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의료진들의 눈빛과 손길을 보는데, 세상이 참 예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은 아픈 사람이 모이는 곳이지만, 아픈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괜스레 더 위안과 감동을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픔을 저런 눈빛으로 쳐다보실까? 우리가 우리 주변의 상한 몸과 마음을 보살필 때에 하나님도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곳.

병원에는 이렇게 예쁜 커플과 가족의 이야기도 있지만, 가끔 떠오르는 환자들 중에는, 아픈 몸과 마음을, 눈물과 불만, 그리고 욕과 폭력으로 표현하던 환자와 가족들도 있습니다.

“병원만 아니었다면, 나도 같이 쌍욕을!”, “당신이 뭔데 나에게 삿대질을 해?” 하고 불쑥 튀어나오는 생각들도 있지만 간호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가만히 듣고 있기 뿐입니다.

처음 2년간 아픈 사람들의 불만, 욕과 폭력을 보며, “하나님 내가 왜 이래야 해요?”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럼 예수는 왜 그랬겠니?” 하시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화가 날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참아내던 때에, 같은 교회를 출석하는 임상심리사 언니가 던진 한마디가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Sometimes, all you need to do is be soft for the sake of every hard heart; show them with every movement of your body, your face and your language that gentle does not mean weak. And most importantly, what it means to be Christ like.”

강자가 약한 자를 이기는 것이 당연한 사회, 약육강식이 정당한 사회 속에서의 병원의 존재는 아이러니합니다. 병원에서는 오히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 약한 사람이 보살핌을 받는 곳입니다.

강한 자들의 거만한 눈빛이 아닌, 건강한 자들이 낮아져서 섬기고 보살피는 눈빛, 몸집, 언어를 관찰할 수 있는 곳! 병원에서의 의료진으로서 그러하듯, 세상 속에 크리스천들도 낮아져 약한 자들을 섬기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병원 밖 세상 어디에도, 조금 바꿔 말하면 교회 밖 어느 곳에도 아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 또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람, 영이 아픈 사람이 있겠죠. 하나님이 그 약자들을 그저 바라봄이 아닌 살펴봄의 눈빛으로 보시듯, 하나님의 눈빛을 우리도 갖게 되길, 하나님이 눈길 보내는 곳에 우리 시선과 기도도 나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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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연
해밀턴에서 간호학 전공. 해밀턴 지구촌교회 청년. 새내기 간호사로 일하면서 병원에서는 사람을 공부하고, 병원 밖에서는 카페에 앉아 시, 소설, 음악, 미술, 역사, 철학을 통해 하나님을 공부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인 빛과 색 그리고 인간의 창조물인 문화와 예술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