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일을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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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천주교회의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에 대한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대학 교회문에 붙인 사건을 종교 개혁일의 시작일로 여기고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는 다양한 기념행사와 집회 그리고 세미나와 출판이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진정한 개혁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겉치레로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다.

한국은 자기 성공을 위한 거짓말이 난무하다. 고소와 고발이 세계에서 단연 최고이다.‘괘씸죄’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고소와 고발은 기나긴 재판을 거쳐 대부분 무고로 처리되지만 재판과정에서 무형과 유형의 손실은 막대하기만 하다. 거짓고소와 고발은 사회전반에 걸친 부정부패지수를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까지 겹쳐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한반도의 핵전쟁 가능성은 긴장과 불안을 넘어, 전쟁불가의 이유를 믿거나 아니면 체념이나 현실을 인정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시대를 사는 여러 세대에서 일어나는 사회의 타락보다 더 무서운 것은 종교의 타락이다. 종교의 타락은 반드시 이단과 유사종교의 성장을 가져온다. 이단과 유사종교의 현상에서 추악한 종교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불신과 거부감을 가지고 기독교를 보고 있다. 이단과 유사종교를 정통적인 기독교와 구분하거나 분별하지 못하고 다같이 기독교라고 인식하거나 알고 있다. 이단과 유사종교도 기독교의 한 분파인 것처럼 정통 교단의 명칭과 비슷하게 사용하여 사람들에게더욱 혼란을 주고 있다.

개혁의 외침은 단지 사람중심의 집회와 인문과 신학적인 학술모임에서 화려한 말로 쏟아내고 있다. 기독교적인 공의와 정의는 사회 전반에서 약해졌거나 사라져버리지는 않았는가 보라. 종교개혁의 정신과 의지는 어디로 갔는가. 진정 종교개혁을 하려는 용기는 없는가.

종교개혁 500주년의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기념만하고 끝날 종교개혁이라면 차라리 무릎을 꿇고 회개와 회계를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교단과 교회의 갈등과 분열에서 화해와 일치가 먼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의 부정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는 결단을 통해 이해와 신뢰를 얻어야 한다. 기독인으로서의 성경적인 윤리와 도덕성의 회복과 더불어 기독인의 공동체인 교회운영과 재정의 투명성이 강력히 요구된다.

다시 한번, 자신의 이기심에서 오는 거짓의 허영과 교만을 벗어버리지 못하면서 타인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하며 비판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먼저, 자신부터 개혁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성격이나 성질이나 성향이 바뀌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다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오직 순간순간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자신의 죄와 죄성을 깨닫고 예수가 진 십자가처럼, 우리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만이 진정한 기독인으로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