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즈스탄 비쉬켁에서 박쥐 250마리와의 피튀기는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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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쉬켁(Bishkek)에 도착한지 사흘째다. 지난 두 달간 배낭 두개를 메고 쉴새없이 걷고 움직인 것 외에는 딱히 운동다운 운동을 못해서 아쉬웠는데… 비쉬켁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익스트림 와일드 스포츠에 푸욱 빠져 정신없이 보냈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즈스탄에서 태어나 처음 접해보는 생존생활체육 종목, “박쥐 테니스!”

5일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출발, 40여 시간에 걸친 육로 국경 이동과 국내 이동을 마치고 고단한 몸으로 비쉬켁의 숙소에 도착하자 나의 호스트인 한국인 동생 민규가 반갑게 환영해주었다.

그런데 그 반가움도 잠시. 동생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아파트 4층 숙소의 거실로 조심스레 앞장서며 내게 말했다.
“형, 실은 미처 말하지 못했던 서프라이즈가 있어요. 따라와보시면 알아요”

어찌된 일인지 거실문은 굳게 봉쇄된 상태, 문유리 사이로 거실 내부를 들여다보는 순간 나는 기겁하며 뒷걸음질쳤다.
“저… 저… 저게 뭐야?? 비행중인 시커먼 저 비행 물체? 생물들은? 저거 박쥐… 아니야?!!”

7마리의 시커먼 박쥐들이 여유로이 거실 천장을 비행중이었고 나는 동생의 얼굴과 박쥐를 번갈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은채로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이 아파트에서 2주간을 묵어야 하는데… 기각 막힌 타이밍이다. 내가 국경을 넘고 있던 딱 그 시간 즈음에 박쥐들이 아파트 안으로 날아들어왔다고 하니.

박쥐들의 침략 소식을 듣고 동생이 일하고 있는 회사의 본부장과 키르기즈스탄 현지인 직원이 동생의 아파트로 출동했다. 박쥐소탕에 도움이 될만한 도구들과 두꺼운 옷, 모자, 목장갑 등 박쥐 테니스 용품(?)을 대거 보급해온 그들과 4인 1조가 되어 박쥐들과의 전투 준비에 돌입했다. 남자 네 명, 키르기즈, 한국, 뉴질랜드 연합군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무장을 마쳤다.

심지어 한국에서 메르스 시즌에 챙겨왔던 일회용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집주인에게 제출할 증거확보를 위해 액션 캠까지 머리에 장착. 드디어 악의 무리가 득실거리는 거실 문을 열고 들어가 전투 개시!

테니스 라켓, 빗자루, 파리채, 서류 폴더와 박스를 무기로 갖춘 인간 팀과 날렵한 비행실력을 갖춘 박쥐 팀의 전투, 인간 팀은 안간힘을 다해 날아다니는 박쥐들을 향해 스파이크, 발리, 스매싱, 스윙을 시작했다. 박쥐 팀의 날쌘 움직임에 고전, 인간 팀 무기 사이사이를 잘도 피해 다니는 박쥐 팀, 계속되는 헛스윙의 연속…… 그리고 드디어……

‘따악~~!!!! 처억!!! 투욱…’

인간 팀 공격수의 라켓에 맞은 박쥐 팀 1번 선수, 처절하게 벽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인간 팀 영어, 러시안, 한국어 3개국어 환호성을 터뜨리며 자신감 상승, 선취 스코어! 30분 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다니, 역시 남자는 스포츠로 통한다!

선취득점으로 자신감에 도취할 뻔 했던 인간팀을 비웃기라도 하듯 곧이어 박쥐 팀의 대반격이 시작됐다. 커튼 뒤, 벽 구석, 소파 밑, 콘센트 안, 천장 전구 안, 에어컨 필터 속에서 잠잠히 수면 중이던 수많은 검은 날쥐들이 떼거지로 비행을 시작헀다.

‘닭살 돋는다’는 표현으로는 감히 그 순간에 마주했던 극한 공포를 표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모든 세포와 신경이 생전 처음 마주하는 박쥐 50여 마리와의 전투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 외치고 있었지만 이미 우린 전쟁터에 들어와 있었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 아비규환! 적군도 아군도 눈에 보이지 않고 오직 살아야겠단 의지 하나만으로 모두가 풀 스윙으로 혈투! 

“으악~~ 오호~~ 노~~ 끄아~~~ 끄아~~” 인간 팀의 소리.
“(초음파) 찌르르 찌르르” 처음 들어보는 박쥐들의 울음소리.
“파악!! 처억!! 따악!! 찌르르 찌르르~~ 으악!! 퍽!! 탁! 척! 휙!”

응원단도 티브이 중계도 없지만, 이보다 더 치열하고 흥분되고 감정이 고조되는 경기는 평생 본 적도, 해본 적도 없다. 우리는 치열하게 후회없이 후퇴없이 싸웠고, 결국 창 밖으로 대부분의 박쥐들을 내다버리며 다시 한번 경악했다. 세어보니 250마리의 박쥐와 싸운 것이었다.

전투를 마치고 전우들과 시원한 수박을 한 통 잘라 나눠먹었다. 만난지 하루도 채 되지않은 사람들인데 피튀기는 전투를 함께한 우리, 느낌상으로는 세 달 정도 함께 지낸 가족들 같아 한없이 감사하고 반갑다. 나를 사납게 반겨준 박쥐 떼 덕분에 이 땅에 전우들이 생겼으니, 고맙다 박쥐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