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성경을 접했던 곳은 교회였다. 부모님의 종교는 불교였지만 나는 여섯 살 때부터 누이들과 함께 종종 주일학교에 다니곤 했다.
유년기에 주일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던 모친께서 자녀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막지 않으셨던 까닭이다. 주일학교에서는 그저 친구들을 따라 다녔었지만, 예배를 드리고 공과공부를 하는 중에 자연히‘성경’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목사님과 주일학교 선생님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다. 그 책이 왜 하나님의 말씀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교회에서는 항상 그 책을 읽었기에 성경이라는 책은 교회라는 장소와 늘 연결되는 책이었다. 학교에서는 읽지 않지만 교회에서는 읽는 책, 어릴 적 나에게 성경은 그런 책이었다.
시간이 좀 흘러 불교 신자였던 아버지도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고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여 목회자가 되셨다. 그 후로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가정예배를 드리셨던 아버지로 인해 나와 누이들은 매일매일 성경을 읽게 되었다. 이제 성경은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읽는 책이 되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버지의 설명으로 인해 조금씩 성경과 친숙해지게 되었고 점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인식이 내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수주의 계열에서 신학 공부를 하셨던 아버지에게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비평적 접근은 전혀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의 신앙 지도 아래 초, 중, 고 시절을 보냈던 나 역시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을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다.
성경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이 흔들렸던 시기는 대학 시절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비과학적 설명들과 윤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여러 사건들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때까지의 신앙적 관성에 의해 나는 성경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을 약화시키는 이성적 자각을 짐짓 모른 체하며 끝까지 내 신앙의 일관성을 지키려 하였다. 그러나 철학을 전공한 나에게 이성의 역할은 믿음 못지 않게 중요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내 믿음은 앞으로 이성을 배제한 반쪽자리 믿음에 불과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 불편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대학시절 나는 인문, 사회과학의 다양한 서적들과 함께 그 때까지 거리를 두고 있었던 고등비평을 바탕으로 하는 신학 책들까지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성경은 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성경은 그저 수천 년 전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윤리의식, 사회의식,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적어 놓은 책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성경은 내게서 멀어져 갔고 언제부터인가 나는 더 이상 성경을 읽지 않게 되었다.
내가 다시 성경을 읽게 되었던 때는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고 나서였다. 그때까지 교회 안에서 자라며 세상을 멀리하고 자라왔던 내가 직장 생활을 하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접하게 되면서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삶을 마주하면서 내 머릿속에 남아있던 성경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다시 손에 든 성경 속에서 나는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와 내 이웃들처럼 고민하고 좌절하며 인생의 풍파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그 속에 있었다.
문자화된 성경이 있기 전에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그 속에 있었다. 성경은 그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셨던 하나님과의 특별했던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책이었다.
다시 성경을 읽으며 나는 그들의 삶 가운데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여전히 이 땅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일하고 계시며 그 구원 사역에 나의 참여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은 하늘에서 던져진 책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기록된 책이다. 그 책에는 하나님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존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을 경험한 이들은 당시의 지배적인 세계관, 윤리의식, 사회인식에 당당히 도전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처한 악한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을 꿈꾸었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꿈꾸었고 그 꿈을 현실 속에서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고백한 하나님은 지금도 성경 속에 살아계셔서 나를 주장하여 말씀 앞에 무릎 꿇게 하고, 형제의 죄를 용서토록 하며, 이웃을 사랑하게 만든다. 성경을 맹목적으로, 아니면 비판적으로 읽는다고 그 책이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고통을 나누고, 세상의 악과 싸우며 그 분의 구원 사역에 참여하는 과정 중에 성경은 나에게 실제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던 것이다.
성경은 고통 중에 처해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삶 속에서 실제로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담고 있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 나는 삶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어 절망하던 자들에게 찾아가 그들을 구원해 주셨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겹겹이 쌓인 역경으로 인해 삶이 막막해졌을 때,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을 때, 나보다 먼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던 성경 속 인물들이 그들의 후손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성경을 읽는다. 성경 속에서 나는 지금 여기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수천 년 전 성경을 기록했던 공동체의 삶 속에도 함께 계셨음을 확인한다.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상황 속에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통해 그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갔던 모습들을 본다.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그 분에게 끝까지 소망을 두는 모습들을 본다. 그리고 특별히 예수님에게서 생명력 있는 태초의 말씀이 그 분의 삶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모습을 본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밝히 드러났던 하나님의 말씀은 과학의 언어도 아니요 철학의 언어도 아니었지만 진정으로 세상을 살리는 구원의 말씀이었다. 그 구원의 말씀은 예수님의 인격과 삶과 십자가를 통하여 온 세상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열어주었다.
그 말씀에 의지하여 자신의 삶을 재구성해나가는 자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성경이 증거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중에 있는 나와 이웃의 삶에 함께 하고 계심을 깨닫게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