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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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자화상> 윤동주, 전문.

윤동주가 찾아간 우물은 산모퉁이를 돌아 논과 산의 경계에 있다. 우물은 흐르는 물이 아니고 고인 물처럼, 한없이 떠돌던 생각과 마음은 어두움에 스며든다. 어렵고 힘들고 지친 영혼이 깃드는 외딴 우물은 외롭다.

겨울의 이미지는 깊은 우물과 같다. 겨울의 우물은 마음의 거울로 비쳐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 우물의 거울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낯설고 물 설고 말까지 설은 이민자의 삶은 마치 섬에서 떠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온다.

이민 온 사람은 언어와 정서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의 단절을 날마다의 삶에서 체험한다. 결국 어제의 살아온 삶보다, 내일의 살아갈 삶과의 틈바구니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민자의 삶은 오늘을 반드시 살아내야 하기에 언제나 고달프고 힘겹다.

이민자와 유학생으로 땅끝 뉴질랜드에서 살아가는 동안, 믿었던 사람에게 속고 당하고 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받은 상처로 인해 흉터가 진 영혼의 자리는 영혼의 겨울이 오면, 늘 시리고 아프고 덧난다. 이로 인해 찌르고 아프게 한 사람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등을 졌더니 신앙과 신앙공동체까지 떠나버려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가버리지는 않았는가 보라.

그럼,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족의 중병이나 임종소식에 놀라서 전화기를 들었지만, 전화 한 통을 할 사람이 없는 이민자로 남겨진 자신을 보게 된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했다면 전화기를 붙든 손은 심하게 떨리면서도 마음의 자리에 찬송가 가사가 불현듯 떠오르게 될 것이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와 정처 없이 다니니… 섭섭하여 울 때에…다니다가… 쓸쓸한 곳 만나도 홀로 있게(멀리 멀리 갔더니, 통합찬송가 440장)” 되어 버린 자신과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흔들리는 마음의 갈등은 허망한 그림자로 어른거린다. 한없이 가엾은 자아가 보인다. 연민이 생긴다. 외로움이 그리움으로 변한다. 이민자의 삶이 우울 속에 갇힌 초상이 아니라, 신앙인의 삶으로 성경을 거울삼아 살아가며, 자화상으로 거듭나야, 진정한 자아를 있는 그대로 끄집어 내고 밝힐 수 있다. 이때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