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위기속에 등장하는 해결사로서의 기업 무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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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창세기38:1-5).”

Genesis 38:1-5(New International Version)
At that time, Judah left his brothers and went down to stay with a man of Adullam named Hirah. There Judah met the daughter of a Canaanite man named Shua. He married her and lay with her; she became pregnant and gave birth to a son, who was named Er. She conceived again and gave birth to a son and named him Onan. She gave birth to still another son and named him Shelah. It was at Kezib that she gave birth to him.

의역: NIV 영역 성경을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본다.
그 때에 유다가 그의 형제들을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머물렀다. 그곳에서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사람의 딸을 만났다. 유다는 그녀와 결혼하여 동침하여 아이를 가졌고 아들을 낳아 엘이라 불렀다. 그녀는 다시 아이를 가졌고 아들을 낳아 오난이라 불렀다. 그녀는 계속해서 또 다른 아들을 낳고 셀라라 했다. 그녀가 셀라를 낳을 때 거십에 있었다.

단어공부
Lay with:동침했다, 함께 눕다 Conceived: 임신했다, 상상했다, 마음에 품다 Gave birth to: 아이를 낳았다, 출산했다

말씀의 나눔
창세기 37장은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어 결국 미디안 상인들에게 넘겨져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가는 장면으로 마쳐진다. “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더라 – Meanwhile, the Midianites sold Joseph in Egypt to Potiphar, one of Pharaoh’s officials, the captain of the guard(창세기 37:36).”

창세기 39장은 그렇게 팔려간 요셉의 이야기가 다시 이렇게 시작된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 Now Joseph had been taken down to Egypt. Potiphar, an Egyptian who was one of Pharaoh’s officials, the captain of the guard, bought him from the Ishmaelites who had taken him there(창세기 39:1).”

이렇듯 38장을 빼버리면 37장과 39장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렇다면 창세기 38장의 내용은 어떻게 시작될까?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 – At that time, Judah left his brothers and went down to stay with a man of Adullam named Hirah(38:1).”

우리말 성경은 ‘그 후에’라고 기록하지만 NIV영역 성경은 이처럼 ‘At that time’이라 기록하며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후’ 그곳에 남은 그의 형제들에게 있었던 일을 알려준다. 핵심적인 내용은 그 사건 이후 어떠한 이유인지 모르지만 유다 또한 자신의 형제들을 떠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

계속되는 창세기 38장의 이야기 속에 유다의 아들들이 장성하여 결혼을 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안타깝게도 첫째 아들 엘은 젊은 나이에 죽고만다. 성경은 엘이 이렇게 죽었음을 기록한다.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 Judah got a wife for Er, his firstborn, and her name was Tamar. But Er, Judah’s firstborn, was wicked in the LORD’s sight; so the LORD put him to death(창세기38:6-7).”

엘의 죽음은 병사도, 과로사도 사고사도 아니었다. 영역성경은 “the LORD put him to death”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흔히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을 설명할 때 사용되었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엘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록하지 않고 있지만, 확실한 사실은 아버지 유다는 당시 자신의 아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엘이 죽자 아버지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을 대신하여 형수에게 들여보내 아이를 낳도록 명령한다. 유다는 오난에게 ‘기업 무를 자 – Kinsman Redeemer’의 의무를 다하도록 한 것이다.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 Then Judah said to Onan,“Lie with your brother’s wife and fulfill your duty to her as a brother-in-law to produce offspring for your brother(창세기 38:8-9).”

이것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기업 무를 자 – kinsman redeemer’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결론은 너무도 비극적이었다.

유다의 이 둘째 아들 오난은 자식을 낳아봐야 자기 아들이 아니라 형님의 아들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 But Onan knew that the offspring would not be his; so whenever he lay with his brother’s wife, he spilled his semen on the ground to keep from producing offspring for his brother. What he did was wicked in the LORD’s sight; so he put him to death also(창세기38:9-19).

오난은 의도적으로 다말이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피임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역성경은 ‘producing offspring – 후손을 생산하는 것’이라 기록하지만 우리말 성경은 그렇게 오난이 피임한 이유가 형에게 ‘아들’을 얻게 하지 아니하려 했다’고 기록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분명 ‘아들’을 유다의 가족에게 주시려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10절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 so he put him to death also.’ 이 곳에서 말하는 첫번째 ‘He’는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두번째 ‘him’은 ‘오난’을 말한다. 역시 오난 또한 이러한 자신의 행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put him to death also – 사형선고’를 받아 죽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난이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사형 언도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아버지 유다가 자신의 아들 오난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알았을까? 안타깝게도 유다는 이번에도 그 사실을 몰랐다. 따라서 유다가 취한 행동은 셋째 아들 셀라를 며느리 다말에게 보내지 않았다.

유다는 그들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며느리 때문이라 생각했으며 셋째 아들까지 보내면 그 또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꾀는 며느리 다말에게, 셀라가 너무 어리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울좋은 핑계였다. 유다 또한 기업무를 자의 의무가 계속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유다의 이러한 행동 또한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유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이었을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두 아들들과 같이 유다에게 사형을 언도하시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다를 씻을 수 없는 치욕 가운데로 몰아넣으셨다. 아내를 잃은 유다는 그만 양털깎는 시기에 자신의 며느리 다말과 동침해 아이를 낳게 되며 그는 뭇 사람들로부터 며느리와 동침한 시아버지라며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결코 죽음보다 약한 심판이 아닌 것은 그의 이야기는 적나라하게 성경에 기록되었고 그는 영원토록 그 수치를 안고 살아야 했다. 이것은 가히 죽음보다 더 가혹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해서라도 유다 가문의 기업무를 자의 의무는 반드시 마쳐져야만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창세기 38장의 내용을 부끄러워한다. 그것은 유다의 이 이야기가 거룩한 성경에 전혀 어울릴 만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38장의 내용이 기록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유다의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통해 그의 후손으로‘온 인류의 기업 무를 자 – Kinsman Redeemer’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야 했기 때문이다. 유다로 인해 크나 큰 위기에 처했던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통해 계속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