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라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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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느냐 아니면 죽느냐 하는 총체적인 위기의식 속에 살고 있다. 살아남느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라고 하면 막연하기만 하다.

더욱이 한반도에는 북한의 절대적인 핵의 위협에 놓여있어 남한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에도 심각한 위기감을 주고 있다.

또한 총체적인 부정과 부패로 인한 사고에 대응하는 능력도 부실하다. 안전불감증이 만연되어 있다. 안보, 외교, 군사,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예술, 체육 그리고 종교를 보아도 어느 곳에서도 희망을 보기가 어렵다.

기독교 역시 500년 전의 상황과 비슷하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어 종교개혁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접근하려는 의도로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수많은 세미나와 행사 그리고 집회가 있지만 진정으로 종교개혁의 본질을 그대로 지키려는 의지와 행동은 미미하다는 자성의 소리가 있다.

이를 통해 다시 한번 교회개혁 500주년을 통해 교회개혁을 위한 접근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의 핵심은 오직 성경중심이었다.

사제에 의한 성경을 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으로 번역되었다. 또한 성당을 짓기 위한 면죄부 판매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었다. 사제에서 직분대로 교회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의 중심주제를 받아들여 교회는 사물보다 사람에 초점을 두어 영혼구원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교회 성장만을 위한 집회와 행사에서 성도의 성숙을 위한 영적 체험과 사회에서의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살아내도록 해야한다.

또한 교회와 사회를 섬기는 일에서 목회자 중심에서가 아니라 성도들도 각자의 삶이 사역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예루살렘의 가증한 일을 보고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에스겔 16장 6절)”고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나오는 실력과 경력 그리고 재력과 능력보다 성령체험으로 오는 영력을 제대로 덧입어야 거북한 영적 교만과 위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태도가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 사람과 재물을 모으는 사업이 아닌 사역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의 정체와 침체를 넘어 쇠퇴의 길에 선 치명적인 위기 속에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높은 도덕과 윤리를 제시하는 삶을 목회자와 성도가 살아낼 때 사회에서 인정받고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과 이성, 그리고 명예에 깨끗하고 진실해야만 한다. 그 길만이 오늘날 우리가 살 길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