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 나욧’을 꿈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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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의외로 성공보다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백성들은 문제만 생기면 왕이 없어서 우리가 고통을 당하니, 왕을 세워달라고 하소연했다.

하나님은 각 지파 별로 공동체를 이루고, 모든 백성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관계를 맺고 살며, 제사장과 레위인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 평화의 나라를 원하셨기 때문에 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사무엘 시대에는 사무엘 때문에 백성들은 왕 타령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무엘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가 사사로서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자, 다시 왕을 세워달라고 사무엘을 압박했다. 그래서 사무엘이 어쩔 수 없이 제비를 뽑아 사울을 왕으로 세웠는데, 사울이 처음에는 겸손하게 백성들을 섬기는 듯 하더니 급변해서 곧바로 왕의 본색을 드러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는 백성 중심이었고, 서로 평등하게 어우러지는 평등공동체였고, 사회적 약자가 먼저 배려를 받는 인간존중의 공동체였는데, 왕이 다스리는 왕국이 세워지면서 왕권중심, 평등이 깨지고 계급으로 사람들이 구별되는 계급 사회가 되었으며, 강자 중심의 명령체제로 바뀌었다. 평등관계가 깨지고, 왕을 위한 왕의 노예로 바뀌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은 자녀교육에 실패했고, 장로들과의 소통에서 실패했고, 올바른 왕을 세우는 일에도 실패했다. 그의 말년에 삶을 뒤돌아보니,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의 말년에 세운 사울 왕에게서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그는 마지막 선택을 해야 했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고향 라마로 내려가서 나욧을 세우는 일이었다.

이민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고, 일 세대들이 살아남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그리 크지 않다. 점점 이래 저래 고립되어 가고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만약 사무엘이 세웠던 라마 나욧을 우리가 이곳에서 세워낼 수 있다면, 뉴질랜드로 이민 온 일 세대 신앙인들에게는 가장 위대한 선택이 될 것이다.

라마 나욧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사무엘상 15:34에서, 사무엘은 사울과 결별하고, 고향으로 낙향했다. 삼상 16장에서, 사무엘은 다윗을 찾아가 새로운 왕으로 기름 부었다. 17장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 병사들 앞에서‘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사무엘상 18:7)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 질투심이 발동되었고, 그 이튿날 악신이 들어가서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질투심이 미움으로, 미움이 살인할 마음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러자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도망간 첫 번째 피난처가 바로 라마 나욧이었다.

‘나욧’은 지역의 명칭이 아니다. 나욧은 ‘거처, 처소’를 의미한다. 갈대아 역(Chaldee Versions)에서는 ‘기숙사’로 번역하고 있다. 나욧은 사무엘이 그의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세운 ‘선지학교’였다. 실제로 사무엘상 19:20절에 나욧에 모여있는 제자들을 ‘선지자 무리’라고 했다.

사무엘은 라마 나욧에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드리는 일을 주관할 수 있는 선지자 학교를 세웠다. 영적인 지도자들을 양육하는 일에 그의 마지막 모든 힘을 다했다.

이스라엘을 위한 사무엘의 마지막 대안은 영적인 지도자들을 기르는 일이었다.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 뉴질랜드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가 진짜 준비해야 할 일은 영적인 지도자들을 양육하는 일이다.

사무엘상 19장 18절-24절은 라마 나욧은 어떤 곳이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울은 다윗이 라마 나욧에 숨어있다는 보고를 받자, 공개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암살자들을 보냈다. 그런데 그들이 다윗을 잡으러 라마 나욧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지자들에게 임한 성령 충만함이 그들에게도 임해서 예언자들과 같이 그들도 예언했다.

하나님의 신이 그들을 사로잡아 버리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느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사울은 다시 2차 3차 암살자들을 보냈지만 그들에게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신에 취해서 예언하느라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다 잊어버렸다. 악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사울의 암살 계획이 번번이 무산되자, 이번에는 사울이 직접 다윗을 잡기 위해서 라마 나욧으로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울이 나욧에 도착하기도 전에 가는 도중부터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사로잡아 예언하기 시작했다. 라마 나욧에 도착했을 때는 자기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하며 하루 종일 밤낮으로 벌거벗은 채 누워 있었다.

얼마나 가슴이 뜨겁고 몸이 뜨거웠으면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없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후에 `사울도 예언자란 말인가?’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게 되었다.

은혜가 흘러 넘치면 죄 지을 수 있는 틈이 없다
교회는 성령이 임하는 곳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하나님의 영이 너무 강력하게 임해서 감히 죄지을 생각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다면, 그런 라마 나욧의 역사가 일어나는 하늘 문이 열리는 뉴질랜드 교회들이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라마 나욧을 꿈꾼다. 문지방만 넘어도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오려고 마음만 먹고 발걸음을 옮겨도 성령 충만하여 예언이 줄줄 흘러나오는 라마 나욧의 역사가 뉴질랜드 전국의 교회들에게 부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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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관
크라이스트처치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이다. ‘오직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 모든 것들이 새롭게 살아나는 새로운 종교개혁을 꿈꾸며, 성경일독에 맞추어 ‘통성경 통설교’를 13회 동안 연재하면서 성경을 함께 읽으며, 같이 공감하고, 같이 깨닫고, 같이 울고 웃으며, 같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