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만 들었던 빌라델비아교회, 책망만 들었던 라오디게아교회

변치 않는 영적 풍요함을 간직했던 빌라델비아교회 터

빌라델비아라는 도시에 개척된 빌라델비아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여섯 번째로 나타난 교회이고 가장 오래 지속된 교회이다.

용기와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빌라델비아교회
칭찬만 들었던 교회가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인데 두 교회 다 연약하나 핍박 가운데서에도 인내하였고, 변치 않는 영적 풍요함을 간직한 교회였다. 서머나교회의 장점이 순교였다면 빌라델비아교회의 장점은 견실성이었다. 그들은 비록 순교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역경 속에서도 견실하게 그들의 믿음을 지켰다.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는 작은 아덴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신을 섬기고 있었고 헬라문명의 중심으로 인간의 철학들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곳은 고원 지대라 지진이 자주 일어났으나 그럴 때마다 교인들은 믿음, 소망, 사랑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서 다시 교회당을 복구하고 거기서 봉사하고 충성하므로 거룩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면 빌라델비아교회가 아무런 허물이 없어서 칭찬만 들었겠는가? 인간이 모이는 곳에는 허물이 없을 수가 없다. 빌라델비아교회도 약간의 허물이 있었겠지만 칭찬만 들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빌라델비아라는 이름의 뜻(형제의 사랑)이 말해주듯 형제의 사랑으로 그 허물들을 덮어 주었다. 베드로전서 4:8에“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는 말씀처럼 허물을 사랑으로 덮었다.

또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결정적인 과오를 범하지 않았고 오직 주님의 전도적 사명인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전념했다.

이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작은 교회였지만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칭찬을 받을만한 질적으로 훌륭한 교회였다. 이 교회는 다섯 달란트를 받은 교회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잘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는 어느 정도의 여건이 허락되어야 하고 많은 달란트를 받아야만 주의 일을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교회다.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던 빌라델비아 교인들
그들에게는 열린 문을 두시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이기는 자의 축복으로 성전에 두 기둥이 되게 하셨다. “내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라고 하신 것은 천국의 일군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집을 짓는데 기둥은 아주 중요하다. 기둥이 무너지면 집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지에 가면 무너진 건물의 잔재들 사이에 기둥들은 견고하게 서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음을 기억하라고 상징적으로 솔로몬 성전 안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을 세웠다. 성전 기둥은 성전 전체를 짊어지고 있는 지주이기에 성전에서 떠날 수 없다. 이는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을 버리라는 뜻이다.

야곱의 12아들들 중 제사장권은 레위가 계보권은 유다가 받았지만 장자권은 요셉이 이어받게 되었다. 그래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는 가나안 정착시 두 몫의 땅이 분배되었다.

큰 실망을 준 라오디게아교회
이 교회는 우리에게 실망을 주었지만 그들이 실패했던 원인들을 살펴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기에 일곱 교회 중에 마지막으로 넣어 놓으셨다고 생각된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에바브라에 의해 설립되었고 바울의 지도하에 성장한 교회였고 바울이 직접 서신도 보냈으나 분실하고 없다.

이 교회의 대표적인 결점은 열정이 없고 이 교회가 보여주는 교회상은 유행교회, 물질주의 교회, 자기만족과 타협의 교회, 세속주의 교회로 세속적으로는 부유하나 영적으로는 곤고한 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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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으로는 부유하나 영적으로는 곤고했던 라오디게아교회 터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다. 국가나 단체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리이다. 그런데 라오디게아교회에는 장점이나 좋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은 교회로 알려진 사데교회에도 약간의 칭찬이 있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교회에는 칭찬이 전혀 없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경제적으로 풍부하였고 이단 사교의 영향도 별로 없었던 무풍지대라 마치 온실에서 자란 화초와 같은 교회였다. 결과적으로 이 교회는 영적인 자극과 도전이 없었다. 바람이 많은 지역에 심기운 나무는 뿌리가 깊이 박히지만 온실 안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의 서구교회와 같은 라오디게아교회
라오디게아교회는 오늘날의 서구교회와 같다. 바울이 먼저 로마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므로 유럽에 먼저 기독교가 들어갔다. 카타콤이나 콜로세움 등에서 이들은 많은 핍박을 받고 무수한 순교자를 낸 후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여 로마의 국교로 삼았다.

영국은 스웨덴, 노르웨이 등과 함께 원래 해적의 나라였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후 신사의 나라가 되었고 영국은 세계선교의 종주국으로 청교도들을 계기로 미국으로 복음을 수출했다.

그러나 요즘의 교회들의 특징은 미지근함이다. 라오디아교회도 신앙의 열심이 없었다. 열심과 신앙은 정비례한다.

오직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금전의 부요를 자랑했고, 아름다운 의상을 자랑했고, 그들의 명 수출품을 자랑했지만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보지 못해서 내적으로 곤고한 인생들이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칭찬받을 만한 일이 하나도 없는 교회였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랑으로 권면하시고 그들이 권면에 순종할 때에 상 주실 것을 약속 하셨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내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