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애굽의 상형문자가 가득히 새겨진 거대한 비문 앞에서
어떻게 6인조 도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이곳으로부터 벗어날 것인가! 나는 용기를 내어 영어를 할 줄 아는 간사한 사내들에게 말했다.
“그대들과 이곳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심히 즐거우나 12시 자정에 카이로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다네 (애굽은 늦게 자는 민족, 이 시간의 만남 약속은 뻥으로 들리지 않는다). 내가 사막길을 모르니 마을까지 바래다 줄 수 있겠는가….?”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두 청년이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 바래다 주지. 대신에…”
두 사내들의 입가에는 간사함이 가득했다.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음산한 기운을 감지하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카이로로 향하는 교통편이 있는 길목까지 데려다 줄테니, 가기 전에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기자(Giza) 보다 더 오래된 피라미드를 꼭 구경하고 가야해. 너를 데려온 이유가 바로 이 피라미드 때문인데 이걸 안보고 그냥 돌아가면 섭하지!”
나는 수십 번이나 거절을 하고 급히 카이로로 가야한다고 설득을 시도했지만 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두 녀석이 먼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피라미드로 향한다.
30초에 한번씩 섬뜩한 눈길로 힐끗거리며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덩치 큰 아흐메드 녀석의 손에는 그나마 배터리 손전등이 쥐어져있기에 칠흙같은 어둠은 모면했다.
내가 입고 있는 베두인 전통복장 차림의 호리호리하고 민첩하게 생긴 이브라힘이 내 옆구리에 바짝 붙어 견제하며 인도를 하고 있기에 도망갈 생각일랑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 그렇게 우리는 천막에서 50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어두컴컴한 사막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이 피끓는 주의 청년이 이집트 사막 한복판에서 원수의 손아귀에 끌려가도록 계속 보고만 계실 건가요? 이 악독하고 간사한 애굽 도적들에게 지금 당장 불을 내리소서! 이 악한 녀석들을 속히 심판하소서!”
내 서른살 평생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찬스를 울부짖고 있는데도 나의 하나님은 깜깜 무소식.
“자 바로 여기야, 웰컴 투 아부 씨르 (Abu Sir) 피라미드! 잘 감상해보라고, 왠만한 관광객들은 구경 못하는 아주 특별한 곳이니까 말이야”
아흐메드가 손전등 불빛으로 고대 애굽의 상형문자가 가득히 새겨진 거대한 비문과 바위들을 비추고 있다. 분명 애굽의 고대 유적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고대 유물이 가득한 흥미로운 현장이었다.
하지만… 이 간사한 두 녀석들과 사막 텐트안에 있는 권총과 막대기를 든 네 명의 장정들이 무슨 수작을 벌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기에 나에게는 이 모든 유적들이 빨리 휙휙 훑고 빠져나가버리고 싶은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저기 말이야, 이렇게 귀한 구경을 시켜주어 참 고마운데 내가 실은 역사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어서 이제 그만 마을로 돌아가면 안될까…? (제발… 플리즈… 부탁이다!)
“쳇, 기껏 모셔왔더니 별 흥미가 없다고? 이런 기회가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한데도 말이야. 그럼 다음 코스로 넘어가자”
공포에 사로잡힌 나의 감정을 배려해주길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이건 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사막 투어 패키지 상품이 아닌, 말 그대로 애굽 사막의 도적들과 함께하는 음침한 어둠의 투어이기 때문에… 나는 이 녀석들의 성질을 돋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침착하고 단호하되 정중한 말투로 일관했다(심장은 쿵쾅쿵쾅!).
이 녀석들이 나를 인도한 곳은 애굽의 파라오가 묻혀 누워있었다는 바로 그 무덤의 한복판, 내가 딛고 있는 땅에서 낮게 잡아도 2.5미터는 되어보이는 그 구덩이를 손전등 불빛으로 비추며 아흐메드가 내게 재촉하는 어투로 한마디를 내뱉는다.
“점프!”
“뭐라고?!”
“뛰어 내려서 구경하고 오라고. 이 곳이 바로 오늘의 하이라이트 중 하이라이트, 여기서 사진을 찍어가면 넌 아마 전세계에서 손가락에 꼽는 모험가에 등극할 수 있을 거야”
사탄의 속삭임이 분명했다. 세상 부귀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닌 실속 제로의 점프… 번지 점프, 스카이 다이빙 등 워낙에 높은 곳에서 뛰는 걸 좋아해 점프 스포츠를 4번 정도 뛰어본 나였지만 고대 애굽 파라오가 묻혔던 무덤을 향해 뛰라고…?
<애굽 헤럴드 1면 기사 - 아부 시르 사막에서 한민족 유전자를 가진 파라오 유골 발견>
내가 지금 이곳을 향해 점프하면 몇 십년이 지난 뒤에 애굽 역사학계를 뒤흔들고도 남을 속보 거리 하나를 장식하게 될지도 몰라… 나는 극구 거절했다. 발목이 안좋아서 보호해야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쳇, 알고 보니 치킨(겁쟁이) 이구만. 낄낄낄…”
이 녀석들이 드디어 나를 대놓고 능욕하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겁쟁이가 되지 않을 사람이 있다면 내 평생 그를‘형’이라고 부르며 따라다닐 자신이 있었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지금이라도 제발 이 원수들의 머리 위에 불을 내려 주소서! 주의 백성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마옵소서!”
그 동안 냉철한 척하며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던 나의 페이스가 급격히 무너져버리고 있었다. 차마 입밖으로는 소리내어 뱉지 못하고 목구멍 속에서만 처량하고 애절하게 신의 가호를 구하는 울부짖음…
“헬프미… 헬프미 로오드…!!”
<9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