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자존감 사이

누군가에게 세상은 그저 매일이 즐거운 곳이나, 누군가에게 세상은 지치고 또 지치는 곳이다. 누군가에게 삶이란 매일 새로운 일을 꿈꾸는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 삶은 그저 그냥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시간일 뿐이다.

이처럼 누군가는 세상에서 본인이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살고, 누군가는 세상에서 본인이 가장 힘든 사람인 것처럼 산다.

남들과 나와의 비교는 끝이 없어
사람은 같은 상황이 주어져도 누군가는 그 상황의 비관적인 면만 바라보며 힘들어하지만, 누군가는 그 상황의 가장 긍정적인 면을 보며 일어난다.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내면에는 단 한 끗 차이로 ‘열등감’과 ‘자존감’이 존재한다.

단편적으로 단어만 적어놓고 보면 굉장히 다른 것처럼 보이나, 의외로 살아가면서 가장 착각하기 쉽고, 가장 많이 착각하는 부분이다.

이 둘 가운데에 존재하는 가장 큰 폭은 ‘비교’. 자존감엔 비교가 없고, 열등감엔 비교가 끝이 없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듣고, 또 늘 듣고 싶어하는 얘기는 ‘멋지게 산다’이다. 나는 늘 내 삶에서 ‘예쁜 것’보다는 ‘멋진 것’을 원했고 그렇기에 내겐 굉장히 힘이 되는 한마디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올바른 길에 서서 맞게 잘 가고 있다 라고 확인받는 한마디이기도 하달까.

나 또한 열등감이 가득한 사람이지 않았었나, 돌아보면 그렇다. 고등학생 때 나는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었다. 수학도 싫어했고, 과학도 싫어했고, 영어도 싫어했다.

다른 친구들은 척척 골라서 해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왜 못하는 걸까, 하기 싫은 걸 왜 해야 하는 걸까 라며 자책도 해보고 불평 불만을 쏟아낸 적도 있었다.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니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이 줄어들었다.

일기장에 매일 적어두던 꿈들에 하나씩 빨간 줄을 긋기 시작했다. ‘난 이것도 싫어하고, 잘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이것도 할 수 없고, 저건 저래서 할 수 없고.’ 이런 생각이 커지면서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못하는 것들, 싫어하는 것들만 생각해냈다.

점점 ‘해봐야지’ 보다는 ‘아무것도 못하겠다’ 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하루하루 해야하는 공부가 하기 싫었고, 의지를 잃어갔다. 성적은 떨어지니 그것마저 남들과 비교하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저 친구는 저걸 잘하는데 왜 나는 못하는 걸까, 왜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나 라는 책망을 쏟아 붓고 또 쏟아 부었다. 남들과 나와의 비교는 끝이 없었다. 주변에서 남을 칭찬하면 그저 그렇구나, 인정하면 되는 것을 그 불똥을 굳이 내가 맞으려고 불똥이 튀는 곳을 찾아 뛰어들었다.

나는 그렇게 반년을 지내며 대학 원서 내는 시기를 맞았다. 원서는 내야겠는데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것은 물론, 나는 무얼 해도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온 걸까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대학을 못 가다니 서러움 반 걱정 반에 매일 울었다.

나의 행복 위한 일을 발견하게 돼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누군가가 내게 도움을 청해왔다. 예배시간 동안 아이엄마들을 위해 아이들을 봐줄 수 있느냐고.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서 흔쾌히 하기로 했다. 하루 해보고 고민해 보려던 일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냥 매주 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남들이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보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어떠한 이익을 보려기 보다는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해 하는 자신을 돌아본 나는 그 때 모든 열등감을 물리치고 동기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교육학과에 뛰어들기 위해 필요한 것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하던 공부가 재미있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잘하는 것이 분명해지니 자책은 줄어들고 칭찬이 늘기 시작했다.

하는 일에 재미가 생기니 나는 어느 순간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무한한 믿음과 사랑하는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분명 나를, 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북돋워 준 것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내가 그 믿음과 응원으로 나를 세워나갔고, 내가 나를 확실히 믿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열등감을 누르고 자존감을 키워 나갔다. 비교를 버리니 나는 나대로 최고의 사람이었다.

나는 나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다. 나는 왜 어떠한 것을 못하는지, 남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교육학과를 공부하면서 한 번도 의대를 다니는 친구들이나 법대를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부러워한 적도 없다. 나는 나대로 살아나가고 싶었다.

가장 ‘나’다운 일을 하고, 가장 ‘나’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나대로 내가 하는 공부와 일에 자부심을 가졌다.

그 이후에 나는 정말 행복했다. 대학에서 자유를 만끽하면서 즐겁게 공부를 해나갔다. 일 년에 한두 번 나가는 교생 실습에서 늘 내게 너무 과분한 칭찬이 돌아왔다. ‘넌 최고의 선생님이다.’ 그 한마디가 나를 매일 일으켰고, 지금도 나를 세우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나 하나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열등감은 나로하여금 자꾸 남을 누르려고 하지만, 자존감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사랑하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에겐 유하고, 나에겐 강하다. 같은 실수를 해도 남이 하면 ‘그럴 수도 있지’가 되고, 내가 하면 ‘왜 그것밖에 못하니’가 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유해져야 할 상대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사람은 흔히 살면서 실수하고, 넘어진다. 그게 잘못된 것이 아니다. 실수하고 넘어져야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성장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흔히 본인 자신의 실수를 쉽게 넘기지 못한다. 묻고, 또 묻고, 또 묻고. 그렇게 자꾸 자기 자신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한번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면, 내가 행복해진다. 실수해도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면 나는 더 이상 그것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넘어져도 ‘넘어져야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지 뭐’라고 생각하면 나는 더 이상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나는 나를 많이 사랑하고 아낀다. 왜냐하면, 세상에 ‘나’는 나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누군가와 비슷한 길을 걷는 것 같아 보여도,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나’라는 존재는 결국 본인 하나뿐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최고의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를 남과 비교할 수도 없고, 더 이상 남과 비교하고 싶은 생각도 없을 것이다.

열등감과 자존감은 단 한 끗 차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내가 나를 얼마나 아는지에 따라 나의 생각은 열등감이 될 수도 있고, 자존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딱 한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이 세상에‘나’라는 존재는 나 하나 뿐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누구보다도 최고의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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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민
12살 때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 오클랜드대학교 유아교육과 졸업, 킹스크로스교회 출석, 런던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다. 20대에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적응해가면서 보고 느낀 많은 것들을 나누고, 영국이란 나라, 런던이란 도시는 어떤 곳인지 조금이나마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