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전체를 한 눈에 보면, 그 중심에 아브라함이 서 있습니다. 성경전체가 예수님 전후로 나뉘듯이, 창세기는 아브라함 전후로 나뉩니다. 아브라함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창세기를, 이스라엘을, 성경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갈대아 우리에서, 하란으로, 다시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도착해서 첫 번째 정착을 시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에 정착을 시도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때는 항상 승리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는 항상 굴욕과 모멸이 따라왔습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르는 삶이 연습되어지고 훈련되어질 때까지는 그는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았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정착의 닻을 내리지 못하고 돌고 돌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삭을 낳은 지 37년, 가나안 땅에 들어온지 62년 될 때까지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창세기23:4절을 보면, 사라가 127세에 헤브론 기럇아르바에서 죽었는데, 사라의 시신을 매장할 장지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불쌍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시오’ 라고 부탁하며, 가나안 땅에서는 나그네요, 정착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민자이든, 어떤 사람이든 마음의 닻을 내리지 못할 때, 나그네처럼 늘 떠날 생각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60여년 동안이나 가나안 땅 여기저기를 배회하면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는데, 사라가 죽어서 매장할 땅이 없는 현실을 보고, 그는 막벨라를 구입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몸을 굽히고 막벨라의 주인인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가서 땅을 팔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에브론은 “…내 주여,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제가 그 밭을 어른께 드리고 그 밭에 있는 굴도 드리겠습니다. 제가 제 백성들 앞에서 그것을 어른께 드릴 테니 어른의 돌아가신 부인을 장사 지내도록 하십시오.”(창세기23:11)라고 말했습니다. 거저 줄테니 그냥 쓰시라는 겁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값을 지불하고 땅을 매입하겠다고 하자, 에브론이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주여, 들어보십시오. 그 땅은 은 400세겔이 나가지만 저와 어른 사이에 그런 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냥 어른의 돌아가신 부인을 장사하십시오.” 라고 말하자, 아브라함은 상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무게로 은 400세겔을 달아 주며, 모든 헷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마므레 근처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에 있는 굴과 그 밭의 경계선 안에 있는 모든 나무를 공개적으로 매입했습니다.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축복의 씨앗을 심으려면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믿음의 닻을 내리기 위해서 값을 지불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막벨라를 땅으로 보지 않고 민족의 뿌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싼 값을 지불하고 꼭 필요한 것을 구입했습니다.
폴 존슨이 쓴 <유대인의 역사>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막벨라 굴을 사수해 나가는 모습을 소개하면서, 유대인들이 얼마나 집념의 민족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막벨라 굴에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유해, 이삭과 리브가의 유해, 야곱과 레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고, 바깥쪽에는 요셉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4000년 유대 역사가 시간과 공간의 닻을 내린 곳이 바로 막벨라 동굴입니다. 헤브론 막벨라는 유대인 비극의 역사, 그에 따른 유대인들이 끈질긴 생존능력을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다시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그곳에서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자, 헤브론은 에돔이 차지했고, 그 후에 그리스가 정복했고, 로마에게 정복당했고, 열심당원이 헤브론을 차지하자 로마인들은 헤브론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랍인, 프랑크족, 맘루크 왕조가 차례로 헤브론을 정복했습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헤브론은 히브리인의 성지, 회당, 비잔틴 양식의 성당, 이슬람 사원, 십자군 교회, 그리고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1266년부터는 유대인은 막벨라 굴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마저 금지당했습니다. 1518년에는 오스만 제국이 헤브론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무시무시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1600년대에는 헤브론에서 샤베타이 체비라는 거짓 메시야가 나타났습니다. 18세기 들어서서야 최초의 기독교 순례자가 방문을 할 수 있었고, 19세기 들어서 서서야 유대인 정착민들이 생겨났으며, 1918년에는 영국이 그곳을 점령했을 시대에 그곳에 살고 있던 소수의 유대인 공동체는 1929년 아랍인의 잔인한 공격을 받았으며, 1936년에 또다시 아랍인의 공격을 받으면서 공동체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1967년 6일 전쟁 중에, 헤브론에 이스라엘 병사들이 들어가기 전까지 거의 한 세대 동안 헤브론에는 단 한 사람의 유대인도 생존하지 못했습니다. 1970년에 이르러 아담한 정착촌이 재건됨으로써, 여전히 공포와 불안이 남아 있지만, 유대인들은 다시 그곳을 탈환했습니다.
과거 4000년 동안 수많은 민족이 헤브론을 거쳐 갔지만, 지금 그곳을 지키고 그 땅을 사랑하며 그 땅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아브라함의 후예들입니다. 아브라함이 비싼 값을 지불하며 막벨라 굴을 매입한 사건은 가나안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의지입니다.
‘이곳은 우리의 땅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스라엘의 땅이다.’라는 믿음의 닻을 내리는 위대한 선언은 나그네 생활에서 정착민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짙게 묻어나는 깊은 울림입니다.
어떤 하나의 작은 사건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모든 믿음의 정신이 담겨진 역사적인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비싼 값을 지불하며 막벨라를 구입했던 아브라함의 정신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또한 이민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나가는 우리 모두의 정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