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 가야 할 또 하나의 십자가 ‘성경’

정창직선교사<남태평양부족선교회>

성경은 약 BC 1500년부터 AD 100년경까지 1600여년에 걸쳐 40명에 가까운 필자들에 의해 기록된 책으로서 전역과 부분 역을 합해 25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고 지금까지 약 50억부가 넘게 발행되었다.

성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책임과 동시에 가장 많은 거부와 비판을 받아온 책이기도 하며 또한 성경처럼 다양한 해석상의 갈등을 야기시키는 책도 없을 것이다.

목사는 이렇게 특별한 책인 성경을 삶의 준거로 삼고 사는 자이며 그것을 해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이다. 그러므로 목사가 이세상에서 어떤 것보다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사는 것은 바로 성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성경과 함께 주의 종으로 살아왔던 지난 32년 동안의 삶, 그리고 수많은 설교를 했던 설교자로서의 지난 날들을 되돌아 보면서 자부심보다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부족한 소견을 몇 자 적는다.

첫째로 목사에게 있어서 성경은 주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는 자기관리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목사의 사역은 대부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사는 자기성찰과 자기 영성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또한 경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때때로 당회의 견제를 받거나 교회성장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사역에 몰두하다 보면 정작 남은 잘 가르치지만 자신의 영성은 메말라 버리는 함정에 빠질 수가 있다. 이것은 필자도 경험해본 바이다. 그래서 목사는 아무리 바빠도 자기의 영성 관리를 위해서 성경묵상 하는 일을 잠시도 쉬어서는 안된다.

일주일에 10번 이상을 설교하는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매일 손에서 성경을 놓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성경과 함께 생활한다.

그래서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목사들은 설교작성을 위해 성경을 읽고, 성경말씀을 설교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언제나 말씀 안에 있다고 스스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설교를 위해 성경을 묵상하고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말씀은 목사 자신의 영성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적용하는 말씀이 아니라 청중들에게 적용시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자신을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성경묵상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설교 준비를 위해서 아무리 많은 시간을 성경에 할애한다고 할지라도 나를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없다면 그것은 성경을 놓고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성경묵상을 통해 상황으로부터 빠져 나와서 객관적인 관점으로 자신과 당면한 문제들을 바라볼 수가 있다. 그럼으로써 관계의 위기를 극복하고 여러 가지 목회적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주님으로부터 부여받게 된다.

목사에게 있어서 사역은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주님 앞에 가는 그 순간까지 놓지 않고 함께 가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둘째로 목사에게 있어서 성경은 지고가야 할 또 하나의 십자가이다.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도 목사 본연의 최우선적인 과제이다.

목사의 신학적, 신앙적, 학문적 배경에 따라서 성경 해석과 적용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고, 이 차이들은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청중들의 신앙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목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자기 주관과 자기 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많은 독서가 필요하며 급변하는 문화와 사고체계 속에서 성경의 본질을 어떻게 바르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자기 설교를 과감하게 비판할 수 있는 겸손한 용기도 필요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위기를 말한다. 혹자는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때라고도 한다. 교회의 위기는 교인의 감소를 뜻하기도 하지만 교회의 세속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교회마다 각종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이 행해지고 리더십과 목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세속화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교회위기를 설교말씀의 위기로 본다. 이것은 설교의 방법론적 문제가 아니라 설교에 대한 관점의 문제이다. 설교는 교회성장의 일환으로서 성경을 인용하여 청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목회 아이템 중의 하나가 아니다. 설교는 성경말씀으로 청중을 깨우는 사역이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목사 고유의 선지적 사역이다.

인간은 모두가 다 죄가 많고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하며 살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려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사는 존재이다(빌립보서2:12).

그런데 목사가 청중들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고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하여 값싼 축복과 위로, 무법주의적 상황윤리로 말씀을 합리화하여 설교한다면 교회는 잠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영적 힘을 잃게 되고 교회 고유의 역동성도 사라지게 된다.

교회에는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설교에 귀가 익숙해진 열심 있는 교회 봉사자들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나 거룩한 부담감 대신에 자기 확신에 충만한 교인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 십자가는 구원과 축복의 통로일 뿐, 자신들은 질 수 없는 하나의 큰 부담거리이다.

이들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의 능력이 있지만(히브리서 4:12) 달콤한 언어의 유희가 되어버린 설교로는 아무것도 쪼갤 수 없다. 또한 쪼갤 것도 없다.

죄와 거짓과 불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다 감추어져 버리고 위로와 축복과 성취와 영광만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말씀의 세속화요 현대교회의 위기이다.

목사는 자신과 청중들이 지키지 못하는 말씀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합리화하거나 피해가지 않고 전해야 한다. 비록 위선자라는 비판과 고난이 예견될지라도 청중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가감하지 않고 전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의 바른 선포는 종교개혁시대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목사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십자가이다. 이 십자가 때문에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한없이 엎드려야 한다. 그래야 선포된 말씀이 살아 역사한다. 그리고 말씀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이 글을 쓰면서 묵직하게 내려 누르는 위선의 십자가의 무게 때문에 오늘도 신실하게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많은 동료 목사님들과 하나님께 부끄러움과 죄송함을 금치 못하며 이 글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