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가왕국을 아십니까?

통가 김인권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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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가의 정식 국명은 통가왕국(The Kingdom of Tonga)이다.

“통가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자기소개를 하면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조차 통가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아프리카에 있는 어느 종족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는 것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지리적으로 통가는 남태평양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에 피지, 북쪽에 사모아 그리고 남쪽에 뉴질랜드가 위치해 있다. 인구 11만명의 조그만 왕국이며 주민의 대부분은 폴리네시안들이다.

약간의 유럽인들과 약 천 여명에 이르는 중국인들 및 약 10명 정도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 중국인들은 주로 마을에서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인은 선교사이거나 식당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통가의 수도인 누쿠알로파가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통가타푸섬(260km2)은 한국의 강화도(302km2) 보다도 작다. 통가의 섬들(717km2)을 모두 합쳐도 제주도 크기(1849km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별한 자원이나 산업이 없어서 주민들은 대부분 가난한 생활을 하며 주 수입원으로는 해외에 나가 살고있는 친지들의 송금에 의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별히 통가의 기독교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통가를 기독교 국가로 알고 있는 분들에게는 왜 통가에 선교가 필요한지를 아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겉으로 봤을 때 통가는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라고 볼 수 있다. 통가의 국기를 보면 선명하게 붉은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있다.

통가는 1615년에 처음으로 유럽인에 의해 발견되었고 1643년에 아벨 타스만이 처음으로 통가 땅을 밟았다. 제임스 쿡은 1773, 1774, 1777년 3번 통가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1797년에 영국의 ‘런던선교사회(London Missionary Society)’ 소속 선교사 10명이 통가에서 사역을 시작하였지만, 그들 대부분은 손재주를 가진 장인들이었으며 선교를 위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고 통가인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3명의 선교사가 순교하면서 철수하였다.

그 후 1822년에 웨슬리안 감리교 선교회(Wesleyan Methodist Mission)가 통가에 다시 선교사를 파견하였으나 같은 이유로 인해 사역은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다시 이 선교회는 1826년에 두번째로 존 토마스(John Thomas)를 선교사로 파송하면서 마침내 사역은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 두번째 선교팀이 방문한 1826년을 통가인들은‘통가에 기독교가 전래된 해’로 기념하고 있다.

통가에서 진정한 웨슬리안 선교의 주역은 월터 터너(Walter Turner)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827년 11월 2일에 통가타푸 섬의 서쪽에 상륙하였지만 곧 누쿠알로파(Nuku’alofa, 현재 통가의 수도)로 이주하였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네 명의 타이티출신 선교사들로 인해 누쿠알로파에는 기독교가 조금씩 전파되고 있었다. 터너일행은 도착하자마자 사역을 시작한 연유로 미처 통가말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였지만 1828년부터 본격적으로 학교를 개설하면서 사역을 넓혀나갔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함에 따라 출석인원도 급격히 불어났다.

그사이 선교회는 하아파이 군도의 강력한 추장 타우화아하우(Taufa’ahau)의 요청에 따라 통가인 회심자 피타 비(Pita Vi)를 하아파이 섬에 선교사로 파송하게 된다. 그러나 누쿠알로파를 방문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된 추장은 내국인인 피타 비를 거절하고 화가 나서 하아파이로 돌아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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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 비(Pita Vi)VI의 무덤과 묘비

그러나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그는 큰 돌풍을 만나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살아 돌아오게 되는데, 그는 이 돌풍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기고 회개하며 피타 비를 받아들이게 된다.

피타 비는 하아파이에서 추장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학교를 개설하고 주민들을 전도하면서 이 섬들에 있던 재래종교를 몰아낸다.

이 하아파이의 추장은 1831년 8월 7일에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자신이 하아파이에서 왕이 되었음(George Taufa’ahau, King in Lifuka)을 선포한다. 이 왕의 영향력으로 인해 하아파이 군도와 바바우 군도에 기독교가 정착하게 된다.

1834년부터는 통가 전체에 강력한 성령의 감화를 따라 기도의 열기가 불면서 부흥의 물결이 넘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1845년 12월 4일에 그는 자신을 통가의 왕(King George Tupou I)으로 선포하고 통가 전체 섬들의 진정한 통치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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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최고통치자가 전통종교로부터 기독교로 회심을 함에따라 필연적으로 기독교는 평민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가지며 전파되어 통가 전체가 기독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게 된다. 즉 전 국민이 기독교인이 되는 놀라운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2011년에 실시되었던 인구 센서스의 결과를 보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었다. 선교사들의 순교와 피땀어린 노력으로 이루었던 전국민 복음화의 주역인 Free Weslyan Church 는 약 35%의 교세로 쪼그라 들었다.

반면에 몰몬과 다른 종교들이 급격한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전에는 없던 불교(183명), 바하이교(777명), 힌두교(200명), 이슬람교(24명)까지 분포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6년 11월에 큰 폭동이 있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위대에 폭도들이 가세하면서 폭동이 일어났고 중국인 상점에 방화하고 물건을 약탈하다가 8명이 불에 타 죽었으며, 수도인 누쿠알로파 중심가의 거의 모든 빌딩들이 불에 타는 전무후무한 큰 사태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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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로 인해 통가인들은 생명없는 신앙생활을 하던 자신들의 참 모습을 보게되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닌 껍데기뿐인 기독교문화에 취해 스스로 만족해하던 그 껍데기가 깨진 것이다.

전에 칠레에서 진도 9가 넘는 큰 지진이 발생하면서 다음날 새벽 3시에 통가에 큰 쓰나미가 밀려 온다는 경고가 있었다. 높은 곳이 없어서 피할 곳이 없는 이 평평한 섬에서 참담한 심정으로 쓰나미를 기다리고 있을 때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모여 밤새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통가를 포기하지 않으시겠지만 통가인들이 다시 주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