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방법이 아니라 방향이다

송재흥목사<오엠국제선교회>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세계선교를 이루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거나 토를 다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전 세계 교회 가운데 과연 몇 %의 교회가 세계 선교에 동참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실제적으로 교단적으로 따진다면 교단교회의 10% 미만의 교회들이 선교사를 파송하였거나 후원하고 있음이 통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그들의 현실인식과 전략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

교회가 선교를 할 때에는 분명한 선교적 전략이 있어야 한다
종종 교회를 방문할 때, 그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들을 눈 여겨 볼 때가 있다. 그리고 담임 목사나 선교위원장을 만나 특별하게 그 나라를 선교하는 이유가 있는가? 라고 물을 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보게 된다.

물론 모든 민족과 족속 그리고 나라에 복음을 선포하고 전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역교회가 선교를 할 때 필요한 것은 분명한 선교적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과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선교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교는 방법이 아니라 방향이 더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가장 뛰어난 선교 전략가이다
흔히 우리가 생각할 때 선교는 예수님 승천이후 바울사도를 중심으로 한 신약적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을 생각할 때 예수님이야 말로 가장 뛰어난 선교 전략가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은 갈릴리와 나사렛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마태복음4: 13-16, 마가복음1: 14-15).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을까?

왜냐하면 그 때 당시에 가장 많은 이방인들 및 외국인들의 게토는 갈릴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갈릴리와 나사렛, 그리고 가버나움은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이방인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에서 이방인 여인을 고치시고 깨끗케 하심으로 그의 관심이 모든 열방, 이방인에게 있음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마태복음15: 21).

예수님은 일부러 사마리아로 지나가기로 작성하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요한복음4: 4-42).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은 이방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마태복음4: 24-25).

“데가볼리스”(Decapolis)라는 말은 10개의 그리스의 도시라는 뜻으로 수많은 이방인들의 거주지였음을 말하고 있고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이들이 바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었음은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다.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철저히 선교적인 전략이셨다. 성경은 예수님이 행했던 기적 가운데 5,000명, 4,000명을 먹이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마태복음14: 13-21)이 기록된다. 이때 12광주리가 남았는데 광주리라는 코피노스(Kophinos)라는 단어는 철저히 유대인 중심의 지역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4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기록하는 성경(마가복음7: 31-8:10)은 광주리를 스푸리스(Spuris)라는 말로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지역도 데라볼리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공생애는 철저하게 계산된 이방인 선교를 전략적으로 실천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예수님이 우리의 본으로서 교회가 담당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일꾼을 보낼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추수할 땅은 희어져 있어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 하신다(마태복음9: 35-38). 그런데 문제는 추수할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즉 교회는 주님이 예비하시고 그리고 희어져 있는 추수의 땅이 어느 곳인지를 찾고 희어져 추수할 땅으로 보내는 전략을 갖고 선교사와 일꾼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최초의 선교사 바울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모델을 따라서 선교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이 이미 세운 터 위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는 항상 개척자적인 미전도종족과 같이 가장 복음이 필요한 지역으로 나아갔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 선교사의 90%가 이미 교회가 있는 곳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세계선교사의 90%를 선교사들이 없는 미 전도종족 가운데로 보내어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선교사를 보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말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된 추수의 땅으로 우리 선교사를 보내느냐이다.

선교는 방법이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교회가 어떠한 선교의 방향과 목표를 갖느냐가 얼마나 많은 선교사를 보냈느냐, 얼마나 많은 선교예산을 지출하느냐 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임을 우리에게 말하여 주고 있다.

지금 여러분의 교회는 어떤 선교의 우선순위를 갖고 있는가? 여러분의 교회는 과연 복음이 가장 필요로 한 추수의 땅으로 여러분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가?

이전 기사상상하면 현실이 된다
다음 기사넥타이와 격려
송재흥
1990년부터 오엠국제선교회 소속으로 터키, 영국 런던 Turning Point와 이슬람권 전략 사역 컨설팅과 뉴질랜드 Te Awamutu에서 선교사들을 양성하는 학교(Iner Cultural Institute of NZ)에서 사역을 하였고, 현재는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총회의 선교국장으로 섬기며 선교의 ABC부터 선교 현장에 필요한 전략에 관한 내용을 25회 동안 풀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