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해를 맞이하며

김영출목사<오세아니아창조과학선교회>

내가 성경을 처음 접한 것으로하면 고등학교 시절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성경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동네 선배의 권유로 예배에 참석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 성경은 나에게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갈 바를 모르고 방황할 때 성경은 인생의 방향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다. 한마디로 나에게 성경이란 “나의 삶을 이끌어 주는 네비게이션과 영적 GPS와 같은 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삶의 모든 기준은 성경에서 나온다. 성경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우선이 되는 그러한 삶을 살려고 오늘도 최선을 다 하려 한다.

1517년 10월 31일은 독일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당시 교권의 타락과 부패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전통과 관습으로 일관된 중세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신앙개혁 운동을 일으킨 날이다.

금년이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독일 북부 비텐베르그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루터의 종교개혁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Back to the Scripture)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는 늘 새롭게 개혁(Reformation)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은 3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교회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으로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것이 성경이다.

그런데 중세 시대 때에 성경말씀보다 우선하는 것이 생겼다. 바로 교황의 교시, 가르침이었다. 로마의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뒤를 잇는 영적인 후계자였고 교회의 최고 권위자였다. 그러다보니 실제적인 힘을 가진 세력가가 되었다. 교황의 말이 교회의 운영하는 법이 되었던 것이다.

교황의 권위가 절대적으로 되다보니 교황은 실수가 없는 완벽한 존재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교황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옳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교황무오설, 즉 ‘교황에게는 어떠한 오류도 없다’는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위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에 사람들은 독일어를 쓰고 있는데 성경은 라틴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성경도 없었지만, 줘도 읽지를 못하는 형편이었다. 성경은 당시 종교교육을 받은 신부들만이 읽을 수 있도록 독점하고 있었다. 일반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접할 기회가 없고 알지 못하니 교황이나 신부의 말을 의지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을 분별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신부였던 마틴 루터는 이에 대해서 분별할 수 있었다. 마틴 루터는 신부로서 성경을 접할 수 있었을뿐더러, 대학교 교수로서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 말씀으로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마틴 루터가 당시에 교회의 모습을 보았을 때에 분명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난 일들, 거짓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기에 마틴 루터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야 함을 주장했던 것이다.

둘째, 교회는 오직 은혜(Sola Gratia)로
마틴 루터가 수도사가 되고 신부가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는 원래 아버지의 바램에 따라 당시 명문대학이었던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들판을 걷다가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를 맞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가 친구를 내리쳤고 친구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는다. 이를 본 루터는 두려움 속에서 기도를 한다.

“성 안나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저는 수도자가 되겠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해서 루터는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사가 되고 사제로 서품을 받게 된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격한 마틴 루터의 관심은 구원에 관한 것이었다.

마틴 루터는 구원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경건한 생활을 했고, 엄격한 고행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자신은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죄를 다른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했는데 어떨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가 고해성사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구원의 확신을 갖기는 커녕, 도리어 자신이 죄인임을 뼈져리게 절감했다.

그러던 중, 마틴 루터가 깨닫게 된 것은 구원은 사람의 공로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에베소서 2:8-9)

셋째, 교회는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성경은 로마서 1:17절의 말씀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원래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한 죄가 없는 의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아무리 성자라고 하더라도 완전한 의를 이룰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고백할 때에 그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신다. 실제적으로는 의인이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죄를 다 씻어주셨으니 죄 없는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고, 그것에 근거해서 구원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결코 나의 행위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구원이 아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으셨다.

오늘날 마틴 루터가 주장하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이라는 표어는 너무 당연하고 일반적인 것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기존 교회의 권위, 특별히 교황의 권위에 대해서 도전하는 불경스럽고 이단적인 행위였다.

그러기에 이러한 개혁 운동이 시작이 되었지만, 이미 거대한 주류가 되어버린 잘못된 흐름을 바꾸는 것, 개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마틴 루터에게 개혁의 사명을 주셨지만 그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일로 인해서 기존 천주교로부터 쫓겨나는 것뿐만 아니라, 죽음의 위협도 받았다.

종교개혁 500주년 해를 맞이하면서 다시금 그 의미를 새기면서 지금도 믿음의 개혁은 날마다 이루어져야 한다.

세상에 여러가지 말들이 많지만 오직 성경을 우리의 삶의 지표로 삼고,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드러내며,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 나름대로 선행을 행하고 그것으로 확신을 삼으려고 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날마다 개혁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