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잃어버린 물건은 냉장고 안이나 근처에서 발견될까?
찬양을 들으려고 하는데 스마트폰이 안 보입니다. 이리저리 찾다가 냉장고를 열어 봅니다. 냉장고 맨 위 칸에 아주 당당하게, 마치 원래 제자리인 양 차갑게 식어 있는 스마트폰과 마주하는 순간, 머쓱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어머나, 스마트폰이 왜 여기서 나와?” “대체 내가 왜 이럴까? 치매가 온 것인가?”하는 서글픈 농담이 스칩니다. 우리가 건망증을 말할 때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무언가를 자주 잃어버립니다. 어느 날은 안경을, 또 다른 날은 핸드폰을, 그리고 서류와 같은 것들입니다. 곁에서 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언가 잃어버렸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안절부절못하며 왔다 갔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왜 뭐 잃어버렸나요?” “냉장고 안은 들여다봤어요?”라고 물어봅니다. 당연히 제일 처음 들여다봤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한참을 더 찾다가 결국은 저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본 뒤 주변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냉장고가 있는 방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 보고 주변에서 물건을 찾아봅니다. 대부분은 잃어버린 물건을 냉장고가 있는 방에서 찾게 됩니다. 우리는 “왜 잃어버린 물건은 항상 냉장고 근처에 있을까?”라며 함께 웃곤 합니다.
이런 현상을 연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가브리엘 라드반스키(Gabriel Radvansky)는 이 현상을 ‘출입문 효과(Doorway Effect)’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들고 이동할 때, ‘그냥 걷는 것’과 ‘문을 열고 통과하는 것’이 기억에 어떤 차이를 주는지 실험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먼 거리를 걸어가더라도 같은 방 안에서 움직일 때는 물건을 잘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가까운 거리라도 ‘문’을 통과하는 순간, 방금 전까지 들고 있던 물건이 무엇인지 훨씬 더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우리 뇌가 문을 ‘이전 일의 종료 지점’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문을 넘는 순간 뇌는 “자, 이전 방의 일은 끝났으니 다 내려놓아라”라고 명령을 내리는 셈입니다. 냉장고와 건망증 하면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내가 왜 왔는지를 잊어버려서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가는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조지 밀러(George A. Miller)는 그의 논문 ‘마법의 숫자 7’을 통해 우리 뇌의 작업기억 용량은 7개 목록만을 기억의 바구니에 담아 둘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방에 들어가면 그 방의 가구, 조명, 분위기 같은 새로운 정보들이 뇌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때 우리 뇌는 새로운 정보를 담기 위해 기억의 바구니에 들어 있던 이전 방의 기억 목록들을 밖으로 쏟아버립니다.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미리 공간을 비워 두는 ‘효율적인 청소’를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하려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문으로 돌아가 보면 기억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드반스키는 문을 통과해 나갔다가 다시 원래 방으로 돌아오게도 해 봤습니다. 원래 방으로 돌아와도 한 번 잊어버린 기억은 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문을 통과하는 순간 뇌가 “이 정보는 이제 필요 없어!” 하고 쓰레기통에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두 연구는 바쁜 날 여러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왜 자꾸 하던 일이나 쥐고 있던 물건을 까맣게 잊어버리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 줍니다. 문을 통과한다는 것은 뇌에게 ‘이전의 기억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냉장고 앞에서 무언가를 잊어버려 서성이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은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려는 우리 뇌의 부지런한 노력 때문입니다. 3가지 연습을 하면 극복됩니다. 문을 넘기 전에 “콩나물 가져와야지” 왜 가는지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고, 손에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물건을 한 번 더 터치하고 쥐는 동작을 유지하며,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왜 가는지 목적을 재확인하는 의도적인 노력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작은 습관들이 반복되면 분주한 일상에서도 문을 넘으면서 두 가지 일을 잘하게 될 것입니다.
왜 유튜브는 은혜로 시작해서“카피바라”로 끝날까?
어느 성도님의 웃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고구마를 삶으려고 불에 올려두고, 기다리는 동안 은혜로운 찬양 한 곡 들으려고 유튜브를 켰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1시간 40분이 지나 있었습니다. 화면 속에서는 ‘아마존에서 수영하는 카피바라’가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고, 부엌에선 시커멓게 탄 고구마가 연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시작은 ‘은혜’였는데 끝은 왜 ‘카피바라’나 이상한 걸로 끝날까요?
문제는 우리가 유튜브 쇼츠나 릴스를 볼 때 발생합니다. 화면을 위로 올리는(스와이프) 그 1초의 동작을 우리 뇌는 ‘문을 하나 통과하는 것’과 똑같이 여깁니다. 10분 동안 쇼츠를 봤다면, 당신의 뇌의 입장에서 약 40개의 방을 연달아 옮겨 다닌 셈입니다. 15초마다 문을 넘으니, 뇌는 “내가 왜 스마트폰을 켰더라?”
애초에 고구마 삶기, 은혜 찬양 듣기라는 목적을 기억할 새도 없이 기억 바구니를 계속 비워 버립니다. 더 나쁜 것은 쇼츠를 넘길 때마다 정교한 알고리즘이 우리가 가장 좋아할 만한 문을 열어 놓고 들어오라고 합니다. 처음 우리의 뇌는 새로운 영상을 보면 “ 뭐가 나올까?”라는 기대감에 흥분하고 도파민을 분출합니다. 그런데 우리 뇌의 작업기억은 고작 7개 내외입니다.
그런데 1분에 4개씩 새로운 문을 통과하며 정보가 쏟아지니 뇌는 과부하가 걸려 깊은 사고를 포기하는 ‘수동적 마비 상태(팝콘 브레인 상태)’에 빠집니다. 이 상태가 되면 우리의 머릿속은 팝콘이 톡톡 터지는 것처럼 빠르고 강렬한 자극에만 즉각 반응하지만 현실의 잔잔하고 느린 자극에는 뇌가 아예 반응하지 않거나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것이 쇼츠를 한참 봐도 정작 기억나는 내용은 하나도 없는 이유입니다. 정보는 들어오지만 저장되지 않고 흘러버리고 머리는 멍하게 되는 것입니다.
팝콘 브레인 상태가 위험한 것은 판단과 절제력이 떨어져 아무 의미도 남지 않는 기억에 남지 않는 쇼츠 넘기는 행동을 스스로 멈추지 못합니다. 그렇게 2-5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또한 영적으로는 고요한 묵상이나 성경 읽기 같은 ‘느린 자극’을 지루하게 느끼게 됩니다. 예배와 기도 시간이 지루해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됩니다. 더 나아가 강력한 도파민 자극이 없을 때 일상이 우울하거나 무기력해지는 등 감정의 기복까지 심해집니다. 자주 화를 내거나 자존감을 상실하게 됩니다.
디지털 디톡스 ‘온전한 정신(Sanity)’의 회복
이쯤 되면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쇼츠 중독의 결과를 알게 되기 시작합니다. 참다못한 가족 중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네가 제정신이냐?” 등짝 스매싱이 날아옵니다.
중독 회복의 고전인 Big Book과 이를 계승한 ITAA(인터넷·기술 중독 익명의 모임)는 중독의 상태를 ‘제정신이 아닌 상태(Insanity)’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의학적인 정신 질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파멸적인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나쁜 습관을 반복하는 통제 불능의 인지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이는 영적 우선순위를 잃어버린 모습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할 영혼이 세상의 자극에 고정되어 스스로를 해치는 선택을 반복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영적 마비’ 상태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앞서 우리가 본 것처럼 인간의 작업기억(Working Memory) 용량이 ‘마법의 숫자 7’에 불과하다고 밝혔습니다. 즉, 우리 마음의 바구니는 한 번에 7개 내외의 정보밖에 담지 못할 정도로 작고 연약합니다. 쇼츠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인지적 과부하 상태가 됩니다.
계속되는 자극과 강제 청소를 반복하면서 인생의 소중한 영적인 것들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내가 성경을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켰는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잊어버린 채 멍하게 하루를, 온밤을, 그리고 시간을 잊어버리고 디지털의 미로 속에서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