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전용사(K-Force)를 기억하며

한 개의 포병부대(Korean Force) 창설하여 파병해

한국전 위해 웰링턴항 떠나는 Wahine호

2025년은 뉴질랜드 한인 동포들의 이민 4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고자 크리스천라이프에서 <이민의 기억, 그 때를 말하다> 특별전을 준비했었다. 이번 전시회는 크리스천라이프에서 창간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는데 여러 가지 바쁜 일로 찾아보질 못했었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감사하게도 전시회 자료들이 대부분 그대로 있었다.

발행인 이승현 목사가 큐레이터 역할까지 감당해 주어서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며 우리 한인 동포들과 뉴질랜드의 한국전 참전용사(K-Force)는 끊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크리스천라이프에서 발행한 그간의 신문도 그들의 모습이 많이 비춰지고 있었다. 전시회를 찾기 전에도 로토루아를 방문하고 왔었다.

뉴질랜드 이민 40년을 넘긴 지인이 건강 문제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다. 그와 마주 앉아 십수 년 전, 베이 오브 플랜티(Bay of Planty) 지역의 참전용사들을 함께 섬기던 일들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인은 마치 자신이 그 지역의 참전용사들에게 큰 빚이라도 진 것처럼, 참전용사들을 위해 많이 헌신했다. 이제 베이 오브 플랜티(Bay of Planty) 지역의 참전용사들도 한 분 한 분 고인이 되고 겨우 한 분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K-Force 파병 이야기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UN) 안보리는 6월 27일 한국전 참전을 결정하고 회원국에게 한국군 지원 요청을 전했다. 북괴군의 남침은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될 정도로 속전속결이었지만, 뉴질랜드 의회의 파병 결정 역시도 매우 빨랐다. 뉴질랜드 의회는 1950년 6월 29일 만장일치로 파병을 결정하고 7월 3일 오클랜드에 정박중이던 두 척의 순향함을 한국 해역으로 출항시켜 일주일만인 7월 30일 한국 해역에 도착하여 유엔군의 해상작전에 참여하였다.


한국에 파병된 뉴질랜드 군인 중에 해군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북괴군의 남침에 속수무책이던 한국군은 8월 1일 낙동강까지 밀려나 최후의 방어선을 쌓아야 했고 며칠 후에는 임시정부를 대구에서 다시 부산으로 이동하여야 했다. 유엔은 한반도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음을 파악하고 UN 사무총장은 지상군 투입을 각 회원국에 요청하고, 뉴질랜드는 7월 26일, 한 개의 포병부대를 창설하여 파병한다. 제대로 훈련할 겨를도 없었다. 새로 신설한 이 부대를 한국부대(Korean Force)라고 명명했으니 이를 K-Force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국전에 참전한 뉴질랜드 포병 한국부대(Korean Force) 마크

Wahine호 이야기
뉴질랜드의 8월은 많은 비와 거센 폭풍의 날이 연속이다. 내가 정기검진을 위해 닥터를 만나러 병원에 간 날도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가까운 주차장은 차를 댈 곳이 없어 멀리 주차를 하고 추적추적 비를 맞은 채 병원에 들어섰다. 리셉션 이스트가 비 많이 맞았다며 인사를 한다. 괜찮다, 염려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서가에서 잡지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표지를 넘기고 읽어 내려가다가 한국 전쟁에 관한 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읽는 도중 닥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잡지를 꽂아 놓고 의사와 마주 앉았다. 진료가 끝나고 다시 대기실에서 그 잡지를 꺼내 마저 읽기 시작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일로 나에게는 흥미보다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Wahine호 모습


잡지에서 읽은 것은 뉴질랜드 첫 페리선 Wahine호에 대한 이야기다. 뉴질랜드군의 6.25 한국전쟁 파병에는 한국인도 잘 알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실도 많다. 그중 하나가 Wahine호 이야기이다. 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51년 8월 2일에는 뉴질랜드의 웰링턴 항에서 575명의 뉴질랜드 병사가 Wahine라는 배에 몸을 싣고 한국으로 향했다.

NZ의 유일한 페리선이 한국전쟁 위해 참전했으나 침몰해한국 조선소에 페리선 건조 의뢰했으나 재정 어려움으로 건조계약 파기 소식 들려

Wahine호는 원래는 군함이 아니었다. 뉴질랜드의 북섬 웰링턴(Wellington)과 남섬 픽턴(Picton)을 오가는 뉴질랜드의 첫 페리선이었다. 이 배를 인생에 비유하면 참 기구하다고 할까, 1913년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건조되어 뉴질랜드의 첫 페리로 운행을 시작하다가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때에 징발되어 갈리폴리(Gallipoli)에 군인과 군수물자를 실어 날라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 6년 만에 뉴질랜드로 돌아와서 운항을 재개했으나 1923년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로 징발되어 전장에 투입되었다. 수많은 기뢰 설치하는 데에도 쓰였다.

침몰 직전의 Wahine호 모습


이 Wahine의 운명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발발한 6.25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뉴질랜드군을 실어 나르기 위해 1951년 8월 2일 웰링턴항을 떠났다. 함장 존슨(F. D. Johnson)의 지휘하에 575명의 병력을 태우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케언즈(Cairns)를 거쳐 약 열흘 후인 8월 14일 다윈(Dawin)항에서 연료와 보급품을 싣고 다시 출항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다윈항을 출항한 배는 그 새벽에 다윈항 북쪽 450km 지점인 파푸아 뉴기니의 마셀라 섬(Masela Island) 인근에서 암초에 좌초되고 말았다. 뉴질랜드 군인과 승무원, 간호사, 수녀 등은 SOS 메시지를 받고 현장에 온 유조선에 구조되었지만, 대부분의 보급품은 주변 원주민들에게 약탈당하고 배는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뉴질랜드의 유일한 페리선이 한국전쟁을 위해 희생되고 만 것이다.

탈출하는 수녀들

새로운 페리 건조 이야기
뉴질랜드에 있어서 남북으로 크게 두 섬으로 나누어진 쿡 해협을 사이에 둔 웰링턴과 픽턴을 연결하는 페리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도 두 대의 배가 운항 중이다. 그러나 이 두 배는 오래되고 자주 고장을 일으켜 어려움이 많다. 그리하여 뉴질랜드에서는 몇 년 전, 한국의 조선소에 두 대의 페리선 건조를 의뢰했으나 최근 뉴질랜드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건조 계약을 파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국 정부와 현대중공업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하던 뉴질랜드 병사들을 싣고 가다 침몰한 Wahine호를 대신하여 페리 하나를 건조하여 선물로 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건조 비용이 수천억 원에 이르는 것이니 정부나 현대중공업에서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릴 적 꾼이 큰 배를 만들어 너른 바다를 항해하고 싶다고 했던 나였다. 그러나 배라고는 종이배를 만든 경험밖에는 없으니 그 꿈을 이룰 수 없는 것이고.

잊혀가지만 잊을 수 없는 K-Force
나는 23년 전, 로토루아에서 뉴질랜드의 한국전 참전용사(K-Force)를 처음 만났다. 그 이후, 약 10여 년 동안 로토루아 갈릴리한인교회에서 목회하며 베이 오브 플랜티(Bay Of Planty) 지역 참전용사들을 초대하여 여러 번 행사하고 그들과 교제를 나누었다. 그때 만났던 몇 분을 지금도 기억한다. 머레이 파킨슨(Murry Parkinson) 부부는 자주 당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스노우 콜린(Snow Collins), 피터 갈라쳐(Peter Gallacher), 그리고 남섬 넬슨(Nelson)에서 오셨던 클레리 매스킬 씨는 ‘북쪽 놈들은 다 나쁘다.’는 농담으로 모임을 즐겁게 했었다. 북한 괴뢰군과 맞서 싸워야 했던 저들의 현실에서 남섬에서 혼자 올라온 자신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나 저들의 모임이 유쾌했지만, 항상 송시(Ode)를 낭송할 때는 모두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They shall grow not old as we who are left grow old
Age shall not weary them nor the years condemn
At the going down of the sun and in the morning
We will remember them, We will remember them.

뉴질랜드에 있는 참전용사 K-Force를 기념하는 기념비는 한국과 뉴질랜드에 각각 4개씩 세워져 있다. 오클랜드 파넬(Panel)에 있는 우리에게는 Parnell Rose Garden으로 더 알려진 Dove Myer Robinson Park에 세워져 있는 참전용사 기념비는 1992년 7월 27일 정전 5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또한 2000년 12월 10일 뉴질랜드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웰링턴 항에서 승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에도 찾아보았다. 이 표지석은 콘크리트로 조성된 바닥에 참전 용사의 발자국을 찍어 놓았는데 비바람에 깎여 나가 희미해진 흔적에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참전 용사들에게 들었던 가평 전투에 대하여 한국의 국방부에 보관하고 있는 영상물을 받아 함께 보기도 했고, 가평군청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었다.


부르스 E. 콜린스(Bruce E. Collins)는 그의 책 Forgotten Ships에서 한국전에 참전하던 K-Force를 싣고 가다 침몰한 Wahine호를 소개했다. 그의 표현대로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간 오래된 이야기일 것이다. 올해로 6.25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있은 지 72년이 지났다. 10대의 어린 소년병들이었던 K-Force,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한국을 사랑하고 전쟁의 기억 속에 있던 작은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남겨주려 했었다. 잊혀가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들이다.


자료 및 사진 출처: , Issue 137 April/ May 2019, pp 4-8에서 발췌.
커버 사진: 강성준 목사<웰링턴>

이전 기사트리니티한인교회
다음 기사갈 수 있는 데까지 가라
나 명균
총신신대원 졸업, 24년째 한인을 대상으로 목회를 이어가고 있으며 총회세계선교회(GMS) 뉴질랜드지부장을 맡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에는 를 연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성경일독을 이어가는 을 5년째 집필하고 있고 뉴질랜드 초기 선교사들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 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선교적인 시각으로 다시 보면서 이 이야기를 펼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