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으로 비누(be new)!

“댁들이 생각하는 그런 옷이 아냐. 이 옷은 40년 동안 츄리닝만 만들어 온 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수놓아 만든…”

오래전에 한 드라마 주인공이 했던 대사가 유행어가 되어 일파만파 퍼졌던 적이 있었다. 까칠한 주인공의 얄미운 표현이 재밌기도 했었고, 당시 유행하던 명품 사조와 맞물려 각종 비슷한 유행어가 파생되었던 유쾌한 장면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나도 가끔씩 내 수제 비누를 소개할 때 한땀한땀 정성 들여 빚어낸 명품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말을 그저 우습게만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이 확실히 수제 비누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성 비누들과 비교했을 때 차이점과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일반적인 기성 비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선 익숙한 향기가 그 존재를 알려 준다. 비누 향은 비누를 떠올리게 해 주는 큰 요소 중 하나로, ‘너 향수 뿌렸구나?’, ‘아닌데, 이거 그냥 내 비누 냄새야.’ 이 정도 대화가 오갈 만큼 향이 강한 제품들도 있다. 대부분 그런 기성 비누들은 비싼 천연 오일 대신 저렴한 합성 향을 사용한다.

합성 향료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천연 향료와 달리 화학적 방법으로 대량 생산된다. 그런데 이런 인공 향이 피부에 자극과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호흡기를 자극하거나 눈이 따끔거리게 하고 두통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지어 합성 향료에 자주 포함되는 프탈레이트라는 화학 물질은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니 단순히 향이 짙다고 좋은 제품이라 할 수는 없다.

비누의 사용감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자
잘 씻기긴 하는데… 뭔가 너무 뽀득하고, 씻고 나면 피부가 땡기는 느낌을 주는 그 감촉. 익숙하지 않은가? 사실 그것은 비누가 피부를 보호하는 수분과 유분까지 싹 쓸어가 버린 결과이다. 원래 모든 비누는 비누화 과정에서 천연 보습 성분인 글리세린이라는 물질이 형성된다. 그런데 기성 비누는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글리세린을 제거하거나 이를 따로 빼내 화장품 등 다른 제품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써 보습 기능은 아웃되고 로션의 힘을 빌려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마트나 몰을 지나가다 보면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욕실용품 코너. 거기엔 화려한 포장과 기능을 앞세운 비누들이 줄을 서서 우리를 유혹한다. 경쟁이 심한 만큼 마케팅도 참 감각적이다. “모공까지 상쾌하게!”, “프랑스산 xx 추출물 함유!”, “99.9% 항균!”, 등등, 그런 미사여구에 현혹되지 말고 성분표를 잘 확인해 보시라.

이름부터 위압적인 화학물들, 소듐라우릴설페이트(SLS),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SLES), 트라이클로산(triclosan), EDTA, 파라벤, 합성향료, 합성착색료 등등의 발음하기도 힘든 성분들이 포함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SLS나 SLES는 풍성한 거품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계면활성제인데, 그만큼 자극도 강하다. 트라이클로산은 항균 효과가 있지만, 호르몬 교란과 환경오염 논란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퇴출되었다. 파라벤은 방부제 역할을 하지만 호르몬 유사 작용으로 인해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물론, 법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된 범위 내에서 사용된 것이지만 문제는 이 성분들이 매일매일, 우리의 얼굴과 몸 전체에 반복적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피부가 민감한 사람, 특히 아기나 노약자에겐 더더욱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거기에 이런 화학물들이 세면대에서 흘러 나가 하천과 바다를 오염시키는 주범 중 하나라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왠지 모를 배신감이 스며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비누쟁이들이 한땀한땀 손으로 제작하는 수제 비누는 어떠한가?
첫 번째로 성분이 참 착하고 안전하다. 코코넛 오일, 올리브 오일, 팜 오일, 시어버터, 아보카도유나 해바라기유… 비누에 사용되는 이런 오일들은 모두 식용 등급의 제품들이다. 합성 계면활성제도 방부제도 응고제도 없다. 수제 비누 제작에 사용되는 유일한 화학물질인 가성소다는 비누화(saponification) 과정이 끝나면 남지 않는다.


두 번째로, 수제 비누는 피부에 부드럽고 탄탄한 보습효과를 남긴다. 위에서 설명한 바 있는 천연 글리세린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누쟁이들이 만드는 주방 비누는 맨손 설거지를 해도 피부가 갈라지거나 당기지 않아 써 보신 분들이 모두 좋아한다.


세 번째 수제 비누의 장점은 맞춤형 제작이다. 비누의 용도에 따라 베이스 오일의 비율을 조정함으로 다른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첨가되는 에센셜 오일은 본래 향기로 심신을 치료하는 아로마테라피에 사용되기도 하는데, 자극적이지 않게 다양한 치료 효과를 발산한다. 건성 피부엔 아보카도유와 시어버터를 더하고, 지성 피부엔 숯가루와 티트리 오일을, 여드름 피부엔 캐모마일이나 카렌듈라처럼 진정 효과 있는 재료를, 민감성 피부엔 무향, 무첨가 레시피를 쓴다. 아기용, 남편용, 선물용, 심지어 반려동물용까지 만들 수 있다.

언젠가부터 bespoke(맞춤형 제작)라는 단어가 명품을 넘어 새로운 고급 제품의 트랜드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히 모두에게 똑같은 제품이 아니라 나와 내가 처한 상황에 적합한 맞춤형 제품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피부와 내 기호에 맞게 성분을 바꿔 제작할 수 있는 수제 비누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소소한 bespoke 제품 중 하나가 아닐까.

이러한 장점들과 함께, 수제 비누는 또한 좀 까탈스럽고 예민한 녀석이다
무엇보다 숙성이 필요하다. 비누 틀에서 막 빼낸 수제 비누는 보통은 4주, 길게는 6주까지 기다리는 동안 수분이 증발되며 단단해진다. 마치 사춘기를 겪는 것처럼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속에서는 호르몬(?)의 변화가 한창이다. 이 사춘기를 잘 보내야 비로소 숙성을 마치고 ‘어른 비누’가 된다.

또한 수제 비누는 보관을 잘해야 한다. 천연 글리세린이 남아 있어 수분에 특히 취약하다. 물에 계속 닿아 있거나 통풍이 안 되면 금방 물러져 버리기 때문에 꼭 비누 받침대를 써야 한다.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생수나 음료수 등의 플라스틱병 뚜껑을 비누 밑에 눌러 붙여 놓는 방법이다. 이로써 버려지는 플라스틱도 재활용하고 비누 물러짐도 방지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명품과 bespoke를 생각하다 문득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우리 존재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성을 갖고 주어진 사명에 맞게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의 bespoke 명품임에 틀림 없다. 우리가 쓰는 물건이 우리의 가치를 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안에 선한 뜻이 있으면 우리의 언행과 쓰는 물건,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모두는 보다 친환경적이고 의식 있는 소비로 수제 비누의 효과도 누리시고 하나님이 만드신 또 다른 걸작인 자연환경도 보존하는 명품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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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진
2019년 남편과 딸과 함께 오클랜드로 이민 와 살고 있으며, 수영강사로, 수제 비누 제작자로 활동하면서 지난 해, 크리스천라이프 아카이브에서 비누 전시회를 가졌다. 많은 분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수제 비누의 세계를 독자와 나누고 틈틈히 수제 비누 공방도 열어 개인의 용도에 맞는 고급진 비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