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시골 농부의 스토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2남 1녀의 자녀를 둔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한 가지 큰 아픔이 있었습니다. 농부에게는 또 다른 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부가 얻은 첫째 아들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농부의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를 형에게 입양시켜라!” 종손의 대를 잇기 위해서 아들이 없는 형에게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부부는 어렸고, 집안의 종손을 잇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살 된 아이를 큰집으로 보낸 아이 엄마는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를 보낸 그 아픔을 삭이느라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우울증은 나아졌지만,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쪽 끝이 아려 왔습니다. 아이가 자란 후 방학이 되면, 큰집에서는 아이를 시골로 보냈습니다. 동생 부부를 위한 배려였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작은어머니’로 불렸습니다. 아들을 보고도 내 아들이라 말하지 못했던 그 아픔을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부모 되신 하나님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태초에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의 영원한 부모가 되셨습니다. 하지만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내 아들, 내 딸’이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어둠의 세력들에게 빼앗겼고, 우리는 영원한 부모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모는 세상이었고, 물질이었고, 우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보시고, 아픈 가슴을 누르고 누르셔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성인이 되어서야 자신의 친부모가 누누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라고 불렀던 친부모를 찾아와 큰절을 하며, 낳아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친부모의 무엇을 물려받았는지를 확인합니다. 아버지의 눈을 닮았고, 어머니의 식성을 닮았습니다. 라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자기를 임신했을 때 라면을 많이 드셨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는 자는 성인이 되어서야 자신의 친부모가 누군지 알게 된 이 아들과 같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부모 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미국 교회가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의 두 번째 도시입니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아름다운 해안, 연중 온난한 기후, 이름 그대로 천사들의 도시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나 높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다운타운의 내부적 현실은 매우 대조적입니다. 놀랍게도 다운타운 중심부엔 엄청난 수의 홈리스들과 마약 중독자들이 모여 살아가는 할렘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2008년, 바로 이곳에 뉴시티교회(New City Church)는 새로운 영적 공동체를 설립하기 위해 용감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뉴시티교회를 다른 교회들과 구별되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사회 경제적 계층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하는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크하게 차려입은 도시의 젊은이들과 몸이 불편하고 냄새나는 흠리스들이 함께 섞여 아무렇지도 않게 예배를 드립니다. 상류층의 자녀들과 홈리스의 자녀들이 아무렇지 않게 함께 뛰어노는 곳입니다.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함께 웃고 교제하며 섬기는 모습이야말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교회가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어느 주일예배에서 한 사람을 새로운 공동체 리더를 세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60대 초반의 남성이 강단에 올라섰을 때 사람들은 매우 큰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남성은 지난날 자신이 겪었던 삶의 굴곡들과 복음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감동적으로 전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학대와 폭력 그로 인한 술과 마약 중독의 삶을 살았습니다. 삶의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홈리스로서 살아왔던 과거의 모든 기억은 악몽이 되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곳이 뉴시티교회였습니다. 그는 새로운 공동체 속에서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랑과 환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나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습니다. 불행으로 점철된 절망적 삶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을 세우고 돌보는 리더가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복음이 우리의 실제 삶 속에서 놀라운 능력이 됨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뉴시티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은 다운타운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마약 중독자, 전과자, 어린 시절의 학대와 상처로 정신적 질병을 가진 사람들, 뉴에이지와 이슬람 등 타종교에 빠졌던 사람들, 무학력 무직자로 지내야 했던 사람들로부터 은행 투자가, 엔지니어, 하버드대학 출신, Ph. D, M.B.A 학위 소유자 등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전문가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이는 마치 각기 다른 퍼즐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뉴시티교회를 개척하고 섬기는 분은 한인 2세 케빈 하(Keven Haah) 목사입니다. 명문 코넬대의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형 회사와 로펌의 변호사로서 일찍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목회에 대한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와 그의 아내 그레이스에게 목회자로의 소명과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을 뜨겁게 부어 주셨습니다. 8개월간의 기도와 함께 그는 전임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법조계를 떠나기로 합니다. 이후 풀러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한 교회의 도시목회 담당 목사가 되어 Love LA라는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Love LA는 주일 오후 다운타운의 홈리스들을 섬기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주 다운타운의 중심부에 위치한 한 선교회의 주차장에서 모임을 열었습니다. 2-300여 명의 훔리스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에서는 마치 야외 부흥회처럼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회심의 변화가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임에 참석한 대부분의 흠리스들이 그곳을 자신의 교회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품을 수 있는 교회공동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케빈은 우선 섬기던 담임목회자를 찾아가 교회 개척에 대한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담임목사는 그의 비전과 사역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개척을 위한 초기 자금과 성도들을 함께 지원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케빈은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교회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양한 계층과 인종이 함께 모이는 교회가 되기를 원했고, 시작부터 한인 2세들이 주축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5개월, 그는 함께할 핵심 멤버들을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민족, 다인종, 다계층, 다세대로 이루어진 복음중심적 교회설립의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비전과 함께할 헌신된 20명의 동역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거리에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케빈 목사는 고백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다운타운을 위한 동네 교회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홈리스들과 함께 호흡하며 삶을 나누겠다는 것입니다.
뉴시티교회의 개척전략은 교회성장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매우 부적절한 방식입니다. 교회성장학의 창시자인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의 이론에 동질집단의 원리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인종, 언어, 계급의 틀을 가진 문화적 동질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볼 때 동질집단원리가 교회성장적 측면에서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과감하게 효율이 아닌 비전과 가치를 추구하기로 결심합니다. 복음을 붙잡고 기꺼이 실패할 위험을 감수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러자 뉴시티교회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함께 상생하는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 속에 각인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복음의 능력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엉망인 사람들”(We are all messed up people in God’s grace.)입니다. 거리에서 사는 홈리스나 고상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이나 동일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본질적으로 죄인이며 절망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성인이 되어서야 자신의 친부모가 누군지 알게 된 아들과 같이 영원한 부모 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상이 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기대하며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이상훈 교수 풀러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한국학부/“선교적 교회의 사역모델, 모델4: 복음으로 도시를 품고 변혁하는 모델, LA 뉴시티교회(New City Church of 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