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장 23절 말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Romans 3:23(New International Version)
“There is no difference,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직/의역: NIV 성경을 기반으로 재 번역하다
“차별이 없다, 모두가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한다”
단어공부
Fall: (동사)떨어지다, 빠지다, 내리다 (명사)넘어짐, 떨어짐, 낙하물, 가을
말씀의 나눔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나는 누구인지, 내가 얼마나 죄악된 존재인가를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바로 로마서 3장 23절 말씀이다. 죄는 모든 인간에게 고난과 질병과 죽음을 가져다준다. 오해하지 마시고 들어라! 우리가 고난받는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이요, 우리가 질병을 가지게 된 이유 또한 우리의 죄 때문이며,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이유도 바로 이 죄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바로 죄 때문이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알려주는데:
첫째, 사람은 본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사람은 그 창조자 되시며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을 받았다. 그러나 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은 이후 이 목적이 흐릿해졌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게 되었고, 사람은 자기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뭐든지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먹고 그리고 혹시라도 남는 것이 있으면 남도 주고, 그리고 또 양심에 거리끼면 헛기침을 해 대며 적선하듯 헌금도 한다. 이것이 다 사람의 죄악된 속성 때문일 것이다.
둘째,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 말씀은 결국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르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갈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며 바로 그 죄 때문에 원천적으로 천국 길이 막혔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로마서 3장 23절, NIV영역 성경의 문장의 시작은 ‘for all have sinned’이다. 따라서 본래 이 문장의 시작은 22절부터 보아야 한다.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Jew and Gentile,’ 번역하자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차별이 없다, 혹은 다를 게 없다’ 정도라 하면 어떨까? 이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것과 그로 인한 결과는 먼저 로마교회 안에서 그렇게 서로 싸우고 있던 그 잘난 유대인도, 그리고 그들에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그 이방인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것이다. 현대 교회는 이것을 인종이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신분에 따르는 위치나 자리에도, 그리고 성별의 차이에도 전혀 차별이, 또는 다름이 없이 모두 죄인이라 해석한다.
이 또한 사실이다. NIV 영역 성경은 이것을 ‘all have sinned’라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의 시제는 현재 완료형이다. 곧 모든 사람, 현재 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현시점까지 끊임없이 죄를 지어왔다는 강력한 표현이며 이 사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그렇다! 과거를 살았던 사람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사람마저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그 모두가 죄인이었고, 죄인이며, 죄인이 될 것이다. 그것은 원죄와 자범죄 때문인데 원죄란 모든 사람이 죄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으며, 또한 인간은 스스로 죄를 지으면서 살고 있는데 이것이 자범죄이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모든 인간은 스스로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죄의 구속함 또는 이 죄로 인한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의 한날 한날의 삶 가운데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라고 하는 것이다.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용서함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용서함을 받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입으로 시인하며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러야 한다.
참 사람들이 어리석다. 주께서 내게로 오면 용서해 준다 하시는데 그래도 오지 않는다. 그러나 용기를 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용서함을 받은 자들은 날마다 자신을 용서해 주신 그분에게 감사하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 한 가지 남겨진 숙제가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도 없는 산속으로 들어갈까?
아무것도 없는 사막으로 나아갈까?
세상과 단절된 삶 그 자체가 그 사람을 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효과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죄는 혼자 있어도 얼마든지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피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그래서 피할 수 없다면 밎닥뜨려야 하며 싸워 이겨야 한다. 우리는 죄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죄와 싸우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반드시 그 죄와 맞서 싸우라 하신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 I have fou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race, I have kept the faith 딤후 4:7).’ 바울 사도는 분명 자신은 선한 싸움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이렇게 선한 싸움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 또한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돈, 물건, 사람에 대한 우리의 욕심, 우리는 그 욕심과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 욕심이라고 하는 녀석이 죄의 시작이라고 하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기독교 안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막으로 나아가 살았다. 어떤 수도사는 거룩함을 위해 불타는 사막 가운데 막대기를 하나 꼽아놓고 하루 종을 그 위에 있다가 저녁에 내려와 잠을 자고 또 그 다음날 사막으로 나아가 또 막대기 위에 앉았다가 또 해가 지면 들어와 자는 생활을 죽을 때까지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라고 계시는 거룩함이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는 피하지 말고 지금의 나의 삶 가운데 나의 거룩함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싸우자!
싸우자!
죄와 더불어 피흘리기까지 싸우자!
영어 한마디!
Steady! Don’t fall off.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A light(heavy) rain began to fall.
보슬비(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