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멋지십니다.”
지난겨울 늦은 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앞에 서있던 한 남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예, 나요?” 하며 나는 그를 보고 물었다. 엘리베이터 안엔 그와 나, 둘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나를 보고 한 말인 줄 알았지만 뜬금없는 그의 말에 나는 그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아, 예,”하고 그는 이번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입고 계신 무스탕 반코트 말입니다. 참, 옛날엔 그것 입고 나서면 멋쟁이란 소리 들었지요.” “아, 이 무스탕요?” 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 앞의 그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를 어르신이라고 부른 그 남자도 나이가 꽤 들어 보였다. 아무리 낮춰보아도 육십 대 후반은 되어 보였다. 그러니까 무스탕이 유행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 된 옷이지요. 우리 애들은 구식이라고 입지 말라지만 나는 그냥 편하고 따뜻해서 입었습니다. 역시 좀 촌스럽지요?”하고 내가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아니, 아닙니다. 정말로 멋지십니다. 이렇게 좋은 옷이 언제부턴가 유행에 밀려 사라졌는데 오늘 어르신이 입으신 것을 보고 너무 좋아 보여 제가 드린 말씀입니다. 혹시라도 실례가 되었으면 용서하십시오.” 깎듯이 예의 바른 그의 말에 나도 “별말씀을. 오늘 선생께서 칭찬해 주셔서 올겨울 내가 좋아하는 무스탕 반코트를 마음 놓고 입을 수 있게 되어 오히려 감사합니다.”라고 얼른 대답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와 악수를 하고 헤어진 뒤 추운 겨울밤 속을 걸어 집으로 오면서 나는 옛날을 회상했다.
1978년이었으니 무려 46년 전이다. 그때 나는 생전 처음 외국에 나갔다. 회사 일로 출장을 나갔는데 처음 목적지가 프랑스 파리였다. 지금과 달리 70년대 말 외국에 나가는 것이 아주 힘들고 드문 일이었을 때 프랑스 파리는 영화나 샹송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꿈의 도시였다. 한국에서 프랑스까지 직항(直航)이 없었던 그 시절, 대한 항공을 타고 일본 나리타에 가서 일본항공으로 바꿔 타고 알래스카에 들렸다가 파리까지 스무 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2시였다. 공항에 마중 나와 있던 파리 주재원(駐在員)의 차를 타고 숙소까지 가며 차창을 통해 보던 파리의 밤 풍경은 황홀하고 신비할 따름이었다. 거의 반세기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른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숙소와 지사(支社) 사무실을 오가며 일을 보며 사흘이 지나니 겨우 주변 거리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나흘째 되는 날 주재원들과 저녁을 같이 한 뒤 헤어져 숙소로 들어가다 혼자 파리의 거리를 좀 거닐어보고 싶었다. 서서히 거리를 구경하며 개선문을 중심으로 걸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걸었던 거리가 바로 그 유명한 샹젤리제(Champs-Élysées) 거리였다. 10월 말의 파리의 날씨는 제법 싸늘했지만 보는 것마다 신기하여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무슈, 무슈,” 하고 다가온 그는 얼굴에 구레나룻이 그럴듯하게 난 수수한 옷차림의 보통의 남자였다. “자포네(일본인)?” 하고 묻는 그에게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영어로 답했다. 그러자 그는 아주 서툰 영어로 자기는 이태리에서 왔는데 옷을 판다고 하며 손에 들고 있던 회색 비닐 포장에서 옷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때까지 나는 무스탕이 무언지도 몰랐었는데 그는 계속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무스탕, 레알 무스탕,” 하고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서툰 영어로 이백 불이지만 마지막 남은 것이라 백 불에 주겠다며 나보고 입어 보라고 했다. 나는 살 맘이 전혀 없었지만 포장에서 꺼낸 브라운 색의 무스탕 코트는 꽤나 부티가 났고 그의 간청에 못 이겨 입어 보니 몸에 딱 맞았다. 유럽의 날씨를 잘 몰라 따뜻한 옷을 준비해 오지 않았기에 살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백 불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기에 벗어서 돌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서 마지막이라며 “세븐티 돌라, 세븐티,”했다. 하도 간절한 그의 태도에 나는 칠십 불을 그의 손에 쥐여 주고 무스탕 코트를 받아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겨울이 되고 날씨가 추워지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무스탕 코트를 입고 회사에 나갔다. 회사 동료들은 처음엔 너무 좋다고 하다가 내가 그 코트를 사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자 모두가 그럼 진짜가 아니고 모조품일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격에 살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모조품이든 진짜든 상관이 없었다. 따뜻하고 보기에 좋으면 됐고 내가 첫 해외 출장에서 산 유일한 옷이었기에 애착도 갔다.
삼십 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 갈 때도 이 무스탕 코트만은 챙겨 갖고 갔다. 하지만 남반구 뉴질랜드의 겨울은 춥지가 않기에 입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작년 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면서 짐을 많이 정리했지만 이 무스탕 코트만은 귀하게 잘 포장해서 갖고 왔다. 그러면서 겨울이 되면 꼭 이 무스탕을 다시 옛날처럼 입으리라 기대하며 날씨가 추워지기를 내심 기다렸었다.
오늘 저녁 동창들과 약속이 있어서 내가 이 무스탕을 꺼내 입자 큰 딸이 요새 한국에서 누가 무스탕을 입느냐며 딴 옷 입으시라고 성화를 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척 그냥 나왔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입고 싶었던 무스탕을 입고 거리에 나선 나는 옛날의 젊음으로 돌아가 추억의 겨울 저녁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삼십 년 오랜 세월을 외국에 나가 지내다 돌아온 나를 마치 며칠 전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친구인 양 다정하게 맞아주는 동창들을 만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난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남자들은 상대방의 옷차림에 별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귀국 후 처음 만난 내 동창들은 삼십 년 전 입었던 무스탕을 입고 나타난 나를 옛날과 다름없이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런 말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동창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그들과 헤어져 차가운 겨울 밤을 따뜻하고 아늑한 무스탕 반코트 안에 몸을 파묻고 돌아오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남자를 만났던 것이다.
집으로 걸어오는 밤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밤하늘을 보다 나는 그 남자가 ‘이렇게 좋은 옷이 언제부턴가 유행에 밀려 사라졌는데…….’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또 아까 외출하기 전 딸아이가 ‘요새 한국에서 누가 무스탕을 입느냐’며 다른 외투 입으라고 했던 말도 생각났다. 삼십 년 넘게 한국에 없었으니 유행이 어떻게 변했는지 왜 무스탕 옷이 유행에서 밀렸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유행이 바뀌었다고 편하고 좋은 옷을 멀리하고 새로운 옷을 찾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 문득 얼마 전 누군가에서 들었던 ‘트민남(트렌드-trend-에 민감한 남자)’’과 ‘트민녀(트렌드에 민감한 여자)’라는 말이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이런 남녀는 대상이 무엇이든 트렌드 혹은 유행에서 뒤질까 봐 노심초사하는 사람들로 새로운 인기 상품이 나왔다면 그것을 사기 위해 오픈 런(open run: 상점의 개장과 동시에 뛰어들기)을 하려고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을 생각하다 문득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의 말이 떠올랐다. 보드리야르는 그의 책 ‘소비의 사회’에서 ‘오늘날 상품의 주된 가치는 그 유용성보다는 오히려 상품에 부여된 의미의 기호성”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오래전에 그가 한 말이 오늘 우리나라에서도 현실이 되었나 보다.
물질이 흘러넘치는 오늘의 시장에서 예전처럼 필요와 유용성과 가격만을 고려해서 상품을 고르던 시대는 지나갔다. 무엇보다도 그 상품은 지금 유행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 상품에 붙어있는 상표(brand)는 가능한 누구나가 인정하는 최고급의 상표여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몇몇 특정 상표의 상품을 소유함으로 자기의 삶도 그 상표가 누리고 있는 수준에 속한다는 착각 내지 자기도취에 빠져있다.
오늘날 소위 명품, 그리고 유행에 대한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욕망이 여기서 비롯되었지만, 명품을 가졌다고, 유행의 첨단을 걷는 상품을 소유했다고, 그 사람의 삶의 수준은 높아지지 않는다.
유행은 빨리 바뀐다. 유행이 바뀌므로 득을 보는 사람은 물건을 파는 사람들뿐이다. 유행에 뒤지면 마치 죽기라도 할 듯이 유행을 따르려 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소비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조만간 삶도 호주머니도 비게 될 뿐이다. 일찍이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공연히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은 어느덧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Consumo ergo sum)’의 사람이 되어 있지 않나 생각할 필요가 있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의 모양이 아무리 바뀌어도 바퀴는 땅 위를 굴러야 하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의 옷차림이 아무리 달라져도 다리는 땅 위를 걸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존재하느냐(How to be)’이지 ‘어떻게 보이느냐(How to appear)’가 아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겨울 밤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어주며 맞아들이는 아내가 “늦으셨네요. 밤 날씨가 몹시 추웠을 텐데 괜찮으셨어요?”하고 물었다. “춥긴, 이 무스탕이 있잖소. 오십 년 가까이 나를 감싸주는 무스탕!”하며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어이가 없는 듯 아내가 “아이고, 그 무스탕, 나보다 더 좋아요?” 하며 입을 비쭉 내밀어 우린 한바탕 웃었다.
46년 전 내게로 와 겨울마다 나를 품어준 무스탕 반코트를 유행이 변했다고 멀리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 겨울, 날이 추울수록 나는 더욱더 이 코트에 몸을 파묻고 옛 추억과 더불어 거리를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