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가 되긴 힘들어

“어머~, 세상에 너무 예뻐요! 어쩜 이렇게 만드셨어요? 참 대단하다!”

색색이 줄 맞춰 진열된 비누를 보는 분들이 한마디씩 감탄사를 내뱉는다. 전시를 하게 되면 종종 듣게 되는 칭찬의 말이 쑥스러워 나는 겸연쩍게 웃는다.


“내 작품을 좋게 봐주어 고마워요. 이렇게 나에게 힘을 주는 그대들의 마음과 그 말씨가 더 예쁘네요.”

웃음 뒤로 삼킨 못다 한 말이 생수처럼 내 마음을 시원하게 쓸어 내려간다. 내가 만든 비누를 보고 나를 칭찬하듯, 이렇게 감동할 줄 알고, 사랑스런 표정을 지으며 예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드신 그분은 참 얼마나 대단하신지… 산과 바다, 나무와 꽃들… 세상의 마지막 paradise라는 뉴질랜드의 자연도 아름답지만, 이렇듯 감흥하고, 공감하며, 뭔가 멋진 것들을 만들어내는 우리 사람이야말로 정말이지 숨 막히게 아름다운 피조물의 정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그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작년 12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뉴질랜드에서는 처음 치러보는 비누 전시를 무사히 끝마쳤다. 찾고자 하는 모든 제품을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고, 주문만 하면 하룻밤 사이에 마술처럼 척척 집 앞까지 배송되는 위대한 구매 시스템을 보유한 나의 조국이 아닌, 날개가 퇴화되어 더 이상 날 수 없는 새들이 상징인 나라, 이곳 뉴질랜드에서 경험해 본 행사는 또 여러모로 달라서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고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마음으로 준비했었다.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신 덕에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울러 퇴근해서 저녁만 먹으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 이것저것 필요한 걸 얻어낸 결과도 거의 한몫하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건 지구 반대편까지 이민 와서도 이렇게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내가 만든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늘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왔고, 또 그렇기를 갈망해 왔던 사람이라 비누를 만들기 전에도 여러 가지 제품들을 만들어 쓰고, 판매하곤 했었다. 수제 가구가 그랬고, 꽃누르미라고도 하는 압화가 그랬고, 향초, 뜨개질 등등... 

하지만 수제 비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좀 특별했던 것이, 다니던 교회에서 섬기던 장애아 부서에서 피부질환과 아토피 등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을 보게 되었는데, 자신만의 벽에 갇혀 평상시에 남들보다 조금 더 불안해하고 무서워하는 그 어린 친구들이 찬양을 부를 때면, 맛있는 걸 먹을 때면, 게임을 할 때면 세상 어느 누구 부러울 것 없는 웃음꽃을 얼굴에 활짝 피우곤 했었다.

그 친구들의 꽃을 좀 더 많이 보고, 더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발단이 되었다. 처음 내 손으로 비누를 만들어 봤을 때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오히려 전에도 그랬듯이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즐거움과 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행복한 분주함에 빠졌던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이 수제 비누라는 것이 결코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사실, 비누를 만드는 좀 더 편한 길도 있긴 하지만, 내가 선택된 방식은 재료도, 만드는 방법도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CP(Cold Press) 방식의 비누였던 것이었다.

이 방식은 들어가는 재료의 비율을 정확히 맞춰야 하고, 무거운 재료를 힘들여 꼼꼼히 잘 섞어 주어야 하며, 틀에 부어 비누화가 진행되는 중의 까다로운 조건을 잘 맞춰 주고, 그 후로도 비누가 자연 건조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가히 가내수공업 중 난이도의 끝판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제 비누는 오일(Oil)에 포함되어 있는 지방산을 ‘가성소다’라는 알칼리와 반응시켜 만들게 되는데, 이때 사용되는 기름은 올리브유, 포도씨유, 코코넛유 등 원하는 목적에 따라 다양한 종류를 섞어 사용한다. 그런데 기름마다 비누화에 필요한 알칼리의 값이 달라서 이를 계산하고 정량을 넣어 주는 것이 좋은 비누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스킬이다. 흔히 음식을 요리할 때 사용되는 어머니의 손맛 같은 두루뭉실한 측량은 비누 사업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공들인 제품을 폐기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특히 좋은 비누를 만들고픈 열망으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같은 비싼 기름을 왕창 썼는데, 과정에서의 실수로 비누가 되지 못한 미완의 기름 덩어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껴놓다 냉장고에서 상해버린 선물 받은 고급 치즈를 바라볼 때의 허망함과 고대하며 기다리던 해외 배송 택배에 불량품이 당첨되었을 때 따위의 맹렬한 분노가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복합적으로 차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인고의 과정을 거친 후 비누의 산에서 하산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내가 원하는 재료를 사용하여 용도에 맞는 비누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모양도 색상도 내가 결정할 수 있으며, 스스로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고급진 비누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들이 그런 고난의 아픔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매력 있는 것이 또 수제 비누의 세계이다.

비누의 원료인 기름, 그 기름이 비누가 되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그 내면에는 온갖 복잡한 화학반응과 법칙이 숨어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복잡한 조건들이 충족되었을 때 기름은 비로소 비누가 된다. 원래의 것보다 더한 가치를 품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말장난 같고, 또 누군가는 아재 개그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뉴질랜드에서 첫 전시의 표어를 ‘Let’s 비누(be new)‘라고 정한 건 그 발음의 중의적인 의미가 주는 메시지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늘 새로워지고 싶다. 어제보단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더 낫고 좋은 방향으로 새로워졌으면 하고 바란다. 내가 만든 비누가 사람들의 칭찬을 받듯이 기름 덩어리 같았던 나도 점점 새로워져서 나를 만든 그분이 찬사와 높임을 받으신다면 피조물인 나로서는 소임을 다한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함께 Let’s 비누(be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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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진
2019년 남편과 딸과 함께 오클랜드로 이민 와 살고 있으며, 수영강사로, 수제 비누 제작자로 활동하면서 지난 해, 크리스천라이프 아카이브에서 비누 전시회를 가졌다. 많은 분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수제 비누의 세계를 독자와 나누고 틈틈히 수제 비누 공방도 열어 개인의 용도에 맞는 고급진 비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