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 여덟 가지 단상

한명수 목사<서울 경복교회 담임>

해밀턴에서의 사역을 부족함 속에 마무리하고 한국에서 목회하다가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교회에서 배려해 주셨다. 튀르키예를 여행했고 뉴질랜드에 머물며 가족과 시간을 함께했고 때론 홀로 있기도 했다. 기다림과 헤어짐이 삶의 한 부분임을 가족과 목회에서 많이 느낀다.

목회의 시간이 더할수록 한계와 부족함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기다리고 있는 교우들에게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글과 함께 보냈다. 보시기에 좋으라는 의도였는데 기뻐해 주었고 아무 걱정 말고 편히 지내다가 오라고 응원해 주었다. 내가 보내 드린 글은 아래와 같다.

버림 오래된 가방을 들고 다니셨던 교수님이 생각난다. 내게도 마음과 손이 더 가는 그런 가방이 있다. 수선집에 맡겼는데 작업이 어렵단다. 고치려다 오히려 흉하게 됐다. 가방이 필요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온라인으로 주문했지만 반송했고 우연히 눈에 들어온 가방을 샀다. 불필요한 생각 마음 말에 에너지 소모가 많다. 알뜰하게 구입했던 책들이 골동품이 되어간다. 생활용품도 사용 횟수는 줄어드는데 스마트폰의 사진처럼 쌓여간다. 사람도 물건도 마음에 들어야 오래간다. 아쉬운 마음에 가져갈까 버릴까 주저하다 용기를 냈다. 다 욕심이다.

열정 쉼의 기회를 얻었다. 감사함이 큰 지난 시간이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생각한다. 떠난 빈자리는 크겠지만 그래도 성숙한 믿음으로 기다려 주실 거다. 콩쿠르에 참여한 연주자들은 연습 외엔 다른 길이 없다. 그날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홀로 씨름하며 즐거워한다. 남다른 맛을 자랑하는 맛집이 있지만 웬만하면 먹을 만하다. 평범함 속에 진리가 담겨있다. 남겨진 시간 내게 필요한 것은 열정이다. 불러 주신 분을 생각하며 결과는 내 몫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분으로 인해 기쁨을 이어감이다. 크레센도에서 데크레센도로 마무리할 때다.

웨딩 소박한 목조 예배당이다. 초창기 이주민들의 공동묘지도 있다. 떠난 가족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돌비는 세월 앞에 묻혀버렸다. 주변이 개발되고 있지만 역사적 가치로 예배당과 묘지는 보존되겠다. 예배는 드려지며 웨딩과 세례식 이벤트를 위한 대여 공간으로 사용된다. 아는 목사님의 자녀가 예식을 이곳에서 했다. 이주민처럼 낯선 곳에 살고 있는데 자녀들이 가족처럼 십시일반 해서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공간을 꾸민다. 큰 딸은 새벽에 꽃을 사서 정성스럽게 준비해 만들었다. 안식의 장소에서 행복을 향해 모험한다. 함께함이 모두 대견하다.

일상 “엄마 아빠 오늘은 뭐 하실 거냐?”라며 딸들은 묻는다. 자신들은 일을 해야 하니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한다. 교우들도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궁금하실 거다. 처음은 아니지만 새롭고 단순하고 소박하다. 크고 작은 지난 일들이 아쉬움은 남지만 자양분이 됐다. 무료해 보이고 느려진 시간이 무목적의 사람처럼 비친다. 아이들과 러닝 이벤트도 했고, 손이 미치지 않는 일들을 하며 반응을 기다린다. 다양한 예배에 참여하면서 회중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살핀다.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역할에서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불 지필 시간이다.

메모리 사연 없는 인생은 없다. 타국의 삶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지인 교회에서 일할 수 있어서 그들의 문화와 전통 안에서 공동체를 이뤄감을 접했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속도감은 덜해도 우러나옴이 있다. 유쾌함을 잃지 않으면서 본분을 지켜간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는 애환도 듣고 경험했다. 정착과 뒷일은 덤으로 맡아야 했다. 좋은 분들을 신앙 안과 밖에서 만났다. ‘고맙다’며 잊지 않고 기억하고 연락 오기도 한다. 귀국 후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자양분 된 지난 시간의 소중한 만남과 기억이다.

트래킹 아름답게 펼쳐진 초원에서 풀을 먹는 그들을 다시 본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에서 눈과 비가 어우러져 자유로이 춤추며 노래한다. 스물두 명이 설렘을 안고 걷고 보며 감탄을 이어간다. 대자연을 보살피며 웅장하고 장엄함에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퀄러티 높은 일정이다. 감사하게 첫날을 마쳤는데 밤사이 그들은 옷을 갈아입고 모른척한다.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감춰진 비밀스러움을 보는 남다른 기쁨도 있다. 거대한 자연이 만든 그림 같은 호수에 발은 담그니 냉정히 맞는다. 가까이하고 깊이 알기보단 거리를 유지하며 바라봄도 나쁘지 않다.

돌아봄 딸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무엇을 하고 누굴 만나야지 하는 바람도 미뤘다. 내 삶의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변화는 늦지만 그래도 조금씩 달라지고 편리해졌다. 가볍게 산책하며 둘러보는 것으로 충분한데 기회가 이어졌다. 더니든에 가서 그곳에 거주하는 함께 공부했던 이들도 만났다. 시내 곳곳에 있는 기념물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정착민들의 삶의 애환과 소망도 느껴진다. 그들이 걸었던 곳을 오가며 내 지난 일들과 가야 할 길을 두루 생각하다 “Time is short”가 마음속에 머문다.

좋으라고 듣기에 피곤할 정도로 불필요한 말들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인식 없이 계속 그러면 누가 반기겠나? 관심 있고 위한다며 나도 착각하면서 그런다. 나이가 들면 말을 줄여야 함을 알면서도 잔소리가 많아진다. 자기도 하지 못했던 일을 후회한다면서 모순을 범한다. 딸들의 염려와 잔소리가 많아진다. 자기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데도 어리숙해 보이고 전과 같지 않은 작은 모습이 그들에게 비쳐지나 보다. 사랑과 진심이 담긴 그들의 말이니 더 귀 기울임은 나이 듦이 느껴진다. 다 좋으라고 하는 말들이 모두 그리울 거다.

한국 귀국을 앞두고 교회 중직자들에게 한가롭고 부러워 보이는 사진들을 보내 드렸지만 귀국 후의 교회 현실을 생각하면 잠을 설쳤던 날이 많았다. “무거운 마음이지만 길이 있을 것이고 함께 길을 찾아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유쾌함을 잃지 않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임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위기가 없던 시간은 없었지만 해결책 또한 찾았다. 한국교회가 어려움에 직면했다면 이민교회의 미래는 더욱 힘들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랑과 용서가 필요하다’는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처럼 목회와 신앙생활에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토핑에만 치우칠 것이 아닌 기본과 본질에서 답을 얻을 것이다.

깊은 기도와 묵상에서 얻은 깨달음 그리고 공동체와 여러 자료를 통해서 자생력을 갖출 수 있다. 감사함과 함께 좋은 기억을 간직하며 가족과 내 자신을 더 돌아보는 값진 시간이었다. 주어진 자리에서 능력 주시는 주님의 도움 속에 실행 가능한 것들을 위해 불꽃을 피우고 싶다.

더니든 제일장로교회 마당에 있는 종에는 ‘TIME IS SHORT’라고 새겨졌다.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짜증과 불쾌감이 아닌 유쾌하고 깨움이 있는 은은한 울림을 주는 그런 소리를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