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특별한 사람이?

선교와 목회를 별개의 활동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선교는 목회의 연장선 위에 있어야 한다. 선교 현지에는 목회자 선교사도 있고 평신도 선교사도 있어 어떤 이들은 선교는 목회적 경험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평신도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소위 직능적 선교사로 사역하는 일들이 많고, 목회자 선교사를 돕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선교지의 교회나 사람들은 소위 직능적인 선교사라고 해도 선교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참된 목자를 목마르게 기다린다.

선한 목자의 심정으로 현지인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선교의 목적이나 의미가 상실될 수 있다. 목자로서 선교사들은 목회적 경험의 바탕이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목자상을 길러 세심한 애정의 배려와 뜨거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맘이 폐쇄되고 굳어진 저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할 수 있다.

복음 전달 이전에 먼저 선교지 사람과의 상호 신뢰와 이해를 확인하는 화해 단계가 중요하다. 이때에 비로소 대화와 접근을 통한 회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내가 속해 있는 GMS 뉴질랜드 지부에는 목회자 선교사와 평신도 선교사가 함께 정식 멤버십을 가지고 사역한다. 목회자 선교사는 당연하지만, 평신도 선교사로 사역하는 분들도 목회자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해 볼 수 있다. 평신도 선교사라고 해서 선교지의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어떤 선교사이든 선교사에게는 지치지 않는 끈기와 지구력을 가지고 이들의 마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목회자적인 애정과 기다림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날의 선교는 선교지에 가서 그 곳에 알맞은 목회자적 사역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선교사는 특별한 사람인가?’ 그리고 ‘선교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인가?’ 질문에 어떤 대답이 나와야 하겠는가? 물론 ‘아니라’고 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생각들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특별히 생각해 줄 사람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씀한 경우가 있다.

선교사가 ‘선교사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선교사가 ‘선교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선교사들의 ‘사역 이기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을 평가절하하고, 사역하도록 도와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역자로 부적합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을 종종 본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이런 면에서 진실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로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는 겸손하고, 뜨겁고, 자신을 과소평가하면서 열심히 준비하고 헌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날이 가고 해가 지날수록,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선교사라고 신분을 밝히면 대접해 주고, 존경해 주는 성도들을 대하게 된다.

이럴 때마다 스스로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하면, 마음속으로는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종종 자신을 잘 인정해 주지 않거나, 대접이 소홀한 경우에는 ‘섭섭한 마음’까지 생기게 된다. 이것은 사람들 대부분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나는 최근 한국 교회의 목회자로부터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소리를 들었다. 선교지에서 맛있는 커피나 마시러 다시는 것을 즐기는 그런 선교사보다 차리리 ~ 그 뒷말은 차마 하지 않는 것이 내 마음에도 편하게 느껴진다.

모두 특별하다는 말은, 모두 특별하지 않다는 말과도 같다. 신앙 생활하는 모든 우리는 하나님 앞에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사실은 모든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누구든지 해야 하고, 선교는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 선교의 보편성을 선교사들도, 그리고 성도들도 마땅히 인정하며 믿음 생활해야 한다. 선교사들이 가지는 위험한 생각 중의 하나는 자신들은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물론 사역에 있어서 독특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도들이 ‘선교사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신임 선교사 훈련을 진행하면서 유언장을 작성하게 되는데, 훈련생 한 사람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물었다. 그만큼 선교지에서의 사역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언어와 기후, 문화, 민족적 특성은 물론 피부색이며 음식 등 선교지에서 겪어야 하는 삶은 매우 다르다.

그래서 성도들의 생각에는 ‘선교사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는 경우는 매우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사로 헌신하기에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해외 선교사와 교회 사역자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른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역시 이런 생각은 선교의 활성화를 막게 된다. 우리는 편안하게 믿음 생활하되 선교사는 복음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이런 생각은 선교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우리의 생각이나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렇다고 선교사를 대접하지 말자고 하거나, 선교사는 편안한 사역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바른 의식과 겸손한 생각을 부단히 키워가야 오히려 선교가 활성화됨을 부인할 수 없다.

성도들은 헌신하여 수고하는 선교사들이 일시 귀국하여 선교보고하는 것을 들으면 모두 감동한다. 그리고 그들을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을 하는 분으로 여긴다. 이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그것이 지나칠 때 성도들의 의식과 선교지원에 문제가 발생한다.

선교는 성도의 특권
선교는 성도의 특권이다. 선교사는 이런 특권을 행하는 사람이지만,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다. 선교 자체가 특권일 뿐이요, 선교를 통하여 누리는 것이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부분을 구분하지 못하는 성도와 선교사들을 종종 볼 때마다 답답하다. 마치 선교사라는 직분이 특권을 가진 것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교사로 헌신하고자 할 때에 분명한 자기 평가를 한 이후에 헌신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무엇?’을 위하여, 그리고 ‘왜?’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내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지만’이라는 겸손한 마음이 있은 연후에 헌신을 결정함이 필요하다. 성도가 없이 선교사로만 선교가 가능한가? 성도가 아니면, 그 누가 선교할 수 있겠는가? 이방 종교인이 기독교 선교사가 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성도는 선교의 특권을 마땅히 행사해야만 한다. 이런 특권을 주신 하나님, 이런 특권을 행할 수 있도록 능력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선교해야 한다. 이것은 선교사에게나 성도에게나 언제나 동일한 자세이어야 한다.

선교에 헌신하여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선교의 개념을 가지는 일이다. 선교는 결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하는 자가 특권을 누리거나 요구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했다. 단지 하여야 할 일을 하는 무익한 종들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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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명균
총신신대원 졸업, 24년째 한인을 대상으로 목회를 이어가고 있으며 총회세계선교회(GMS) 뉴질랜드지부장을 맡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에는 를 연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성경일독을 이어가는 을 5년째 집필하고 있고 뉴질랜드 초기 선교사들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 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선교적인 시각으로 다시 보면서 이 이야기를 펼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