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념의 농어촌 선교와 서핑

지난 20세기 서핑의 발전과 함께 농어촌 선교에도 청신호가 떨어졌다. 서핑할 수 있는 바닷가는 시즌이 시작되면 사람들로 가득 찬다. 도시의 청년들과 가족들이 해마다 시원한 곳에서의 쉼과 여유를 찾아 몰려오기 때문이다.


그곳에 액션스포츠(action sport/extreme sport mission) 선교가 젊은 세대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트레일 러닝, 암벽타기, 스케이트보드, BMX, MTB, 온로드 자전거, 스노보드 및 파도타기와 같은 극한 스포츠들의 총칭이다. 그중 서핑은 20세기 후반부터 글로벌 미션을 이끄는 해외 복음주의 선교단체들의 훌륭한 선교 도구로 사용되었다.

호주에서 시작되었으니 뉴질랜드는 물론이고 오세아니아를 넘어 서핑이 있는 미주와 세계 곳곳으로 흘러 먼 곳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바닷가 교회들이 활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반도인 한국도 상황은 같다. 서핑할 수 있는 모든 바닷가는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선교기지가 된다. 동해, 서해와 남쪽 바닷가와 섬들이 그러하다. 추수의 때인 것이 확실하다.

지금까지 해외 서핑 문화는 바닷가 교회와 함께 공존해 왔다. 서핑을 중심 문화로 바다를 공유하는 바닷가의 모든 교회 삶 속에 녹아있다. 서핑이 있는 곳 어디든 농어촌 현지는 서퍼와 그곳의 다양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만나는 자리이다.

파도 타는 교회
신개념의 농어촌 선교로서 교회가 파도를 탄다는 것은 익숙한 그림은 아니다. 그러니 새로운 개념이다. 단순히 서핑은 널빤지 위에 올라 파도를 가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전하는 것과 파도를 타는 행위가 선교적인 연결점이란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면 더욱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철학적으로는 널빤지 위에서 파도를 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삶의 터전과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이다. 각 지역의 관습과 서핑 문화로서 파도타기는 삶에 직결 되어있기 때문이다. 널빤지 위에 올라 파도를 타는 행위만 집중한다면 오히려 설명이 쉽다. 그것은 선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멋진 파도가 들어오는 날이면 크든 작든 누울 수 있는 스펀지 판지를 가지고 나간다. 파도가 오면 수영하듯 탄다. 수영할 줄 몰라도 된다. 허리 깊이까지만 들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파도가 강한 날은 누구든 신나게 탈 수 있다. 일어서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서핑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접근해 본다. 파도가 들어올 때 보드에 올라간다. 해변을 향해 파도에 올라가 수영하듯 앞으로 간다. 파도가 밀어주기 시작하면 일어난다. 이것도 서핑이다.

위 두 방식은 단순히 파도 타는 행위이다. 하지만 서핑 선교가 아니다. 그러나 이를 칼로 가르듯 나눌 수 없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 지역을 찾는 여행객들을 이해하고 바다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선행된다. 그때 진정한 의미의 서핑이 시작된다. 서핑선교의 교집합 어디즈음에 있다. 서핑과 서핑 문화를 귀하게 여기는 진지하고 착한 마음이다. 여기에 선교적인 삶(Missional life)이 불쑥 들어온다.

하나님의 창조를 돌보지 않고 건강하고 건전한 의미의 서핑을 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폭력적이거나 이기심에 가득한 서핑은 다 같은 서핑이 아니며 서핑을 통해 하나님을 전하기도 전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건들을 만들기도 한다. 서핑선교 근처에도 오지 못한다. 기독교 신앙인이지만 신앙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서퍼들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농어촌 현지인들과 서핑 문화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바닷가에서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다음의 세 가지를 기억하자

현지 살고 있는 농어촌의 원주민을 만나자. 그리고 이야기를 듣자
새로운 미지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있다. 이주해 온 지 1년 된 사람도 있고 5~6년 된 사람도 있다. 정말 오래 지낸 분들도 있다. 그곳에 태어나서 자란 이들만 아니라 대대손손 이어 그곳을 아름답게 하려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삶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문화를 탐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모두 그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 나라 그리고 서핑을 알자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이거나 아닌 교회이거나 서핑을 하는 이들을 위해 선교를 하려면 그들과의 만남을 피할 수 없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거나 이권과 상관없이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찾아가는 걸음은 십자가와 구원의 부활 소망을 잘 이야기하는 것뿐이 아닌 대상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한다. 사도가 이야기한 유대인에겐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겐 헬라인처럼 다가가야 한다는 말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서핑하거나 서핑 문화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서핑과 바닷가 문화를 알자
그렇기 때문에, 서핑에 대한 이해만 아니라 문화가 생활화되어 있어야 한다. 도시에서 바닷가로 이사 온 이들이나 서핑 사업을 하는 이들을 천천히 조금씩 알아갈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론이 가득한 활자나 책상에서 되는 것이 아니니 지금 바닷가로 나가보자. 서핑을 배우거나 서핑숍 근처 커피숍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서핑을 생활화한다면 특정 생활방식 곧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이 필요하다. 라이프 스타일은 두 단어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날마다의 연속이라면 스타일은 서핑이 되는 것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은 그리스도로 새롭게 한다. 말씀으로 가득 채워 선하고 온전한 것들을 가지고 스타일은 서핑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서핑 선교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렇게 파도 타는 교회들은 사방이 막혀있는 높은 파도의 벽을 타듯 산다. 복음을 들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바람에 이끌려 믿음으로 장애물과 같은 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삶을 산다. 때론 물길을 잘못 읽을 수 있다. 안다고 착각하고 갔으나 탈 수 없는 거대한 파도를 만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겸손히 주를 의지하고 온전히 이끌려 살고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복음을 품은 사람들로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그들이 모두 파도 타는 교회이다. 신개념 농어촌선교, 서핑선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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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윤
현대문화를 통해 선교하는 제레미 윤(윤성운) 청년들을 사랑하는 목회자. 크리스천 서퍼스 코리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목사/선교사로 전도는 전도전사역Pre-evangelism을 시작으로 직접적인 구원영접까지 긴 삶의 연속을 함께하는 것. 이 비전 품고 서핑을 통해 젊은 이들을 ‘삶’으로 전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