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 . 미스터트롯

임영웅, 영탁, 이찬원, 조명섭, 손가인, 김다현, 정동원, 빈예서…


나열된 이름만 들어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는 트로트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20~30년 전만 하더라도 트로트라고 하면 왠지 고리타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실 것 같은 노래로 여겨졌습니다. 흔히 버스 안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주 들려지던 음악이었고, 가요무대나 전국 노래자랑 같은 조금은 올드(?)한 TV 프로그램에서 들을 수 있던 노래가 트로트였습니다. 그때는 당연히 트로트라 불렸는데 지금은 트롯이라는 좀 더 세련(?)되어 보이는 표기를 하기도 합니다.

인터넷 위키백과에 ‘트로트(영어: Trot)는 대한민국의 음악 장르이며, 정형화되고 반복적인 리듬과 펜타토닉 스케일 음계(오음음계), 그리고 한국 민요의 영향을 받은 떠는 창법이 특징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또한, 트로트는 미국의 춤곡인 폭스트롯(영어: Foxtrot)이 그 어원이며, 한국, 일본, 미국, 그리고 유럽 국가들의 다양한 음악들이 혼합하여 탄생했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트롯을 가지고 경연을 하는 TV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나서 대중들 속에 더욱 가까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음악 장르의 하나인 트로트를 보면 특별히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장르의 가수들보다 트로트 가수 중에 유독 나이 어린 친구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현재 경연 중인 미스터트롯이나 미스트롯에도 제법 어린 친구들이 눈에 띕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저의 눈길을 사로잡은 어린 트로트 가수가 있습니다. 바로 2012년생 빈예서입니다. 빈예서는 미스트롯이라는 경연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이제 겨우 12살의 초등학교 학생입니다. 하지만 그 어린 여학생의 트로트에 대한 열정과 실력은 어떤 성인 가수와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노래 실력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트로트에 담겨있는 깊은 정서들도 너무나 잘 표현해내고 있기에 대중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경연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그 어린 여학생에게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어린 여학생은 어떠한 이유로 트롯을 부르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어린 나이에 그러한 열정을 품고 그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을까요? 과연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어떠한 일을 할 때 그 일을 하는 동기가 있습니다. 교육학에서 동기는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의 두 가지로 나눕니다. 내적 동기는 외부의 보상과 상관없이 주어진 과제를 하거나 행동을 하는 것으로 행동 그 자체가 보상이 됩니다. 어려운 친구를 도와줄 때 도와주는 그 자체로 마음이 기쁘다면 이는 행동 자체가 보상이 되는 내적 동기가 작용한 것입니다. 반면 외적 동기는 외부로부터 어떠한 보상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입니다.


수학시험에서 1등을 하면 원하는 핸드폰으로 바꿔주겠다는 부모님의 약속에 수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면 이는 외부의 보상을 통해 공부를 하게 된 것이므로 외적 동기가 작용한 것입니다. 성취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렇지만 과연 우리 삶에 있어서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 중에 무엇이 더 큰 영향을 미칠까요? 다양한 연구를 통해 내적으로 동기화된 아이들이 외적으로만 동기화된 아이들보다 더 높은 성취를 보인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왔기에 다양한 나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우리 곁 머물며 함께하는 것에 매우 인색했습니다. 우리 땅에서 우리와 다른 피부색, 다른 얼굴 생김새를 가진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피부색, 얼굴 생김이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살다 보니 더욱 순서를 매기고 줄을 세우고 하면서 ‘튀’는 개성을 추구하기보다는 ‘함께’하는 유행을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겨울, 거의 발끝까지 내려오는 롱패딩이 유행했을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롱패딩을 입고 거리를 지나다녔습니다. 올겨울은 크롭 수준의 짧은 패딩이 유행이라더니 정말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롱패딩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비슷하고 입고 다니는 옷이 유사하다고 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같은 마음 같은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구촌 80억 인구가 모두 다르고 생각 또한 다양합니다. 그렇기에 삶을 살아가는 모든 ‘나’마다 각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나’만의 무언가가 있습니다.

아무리 올해는 눈길이 닿는 곳마다 짧은 패딩이 보이더라도 사람들 마음 안에는 수없이 다양한 나만의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보내는 바로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짜 우리를 기쁘게 하고 성취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그 내적 동기를 알고 행동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적 동기를 가지고 행동하게 되면 그 행동 자체가 나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고 그 기쁨이 바로 나에게 주는 진정한 보상인 것입니다. 그것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름답다’에서 ‘아름’은 ‘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나답게 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아름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아는 것이 바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내적 동기입니다.

존스홉킨스의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는 인간의 내적 동기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즉, 부모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일에 대한 사랑, 예술에 대한 사랑 등은 우리 자신이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큰 힘이자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낙심될 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고 바라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는 회복할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삶의 소망이 되어 견딜 힘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소속감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인간의 행복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건강한 관계, 행복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날고뛰는 사람이라도 세상에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의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너무나 힘이 드는 것입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들조차도 탄생의 순간부터 아니 이미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엄마와의 관계를 맺습니다. 그 관계가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애착이라는 심리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가치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위해서는 돈을 받지 않아도 행동합니다. 즉, 정의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끔 뉴스나 언론을 통해 ‘시민 영웅’들이 소개될 때가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자를 끝까지 쫓아가서 잡거나, 화재 현장에 뛰어들고 철로에 떨어진 누군가를 구했다는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또한, 3.1절을 지나면서 우리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희생해 가며 나라를 위해,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희생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그러한 자기희생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그리고 마지막은 세상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을 통해 내가 이 세상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내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 나에게 주어진 능력, 나에게 주어진 교육 등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기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삶의 의미나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동기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를 존귀하게 여기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내적 동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외부의 보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 일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면의 깊은 곳에서 생겨나는 동기가 그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 내가 이 땅에 그러한 상태로 존재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계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바로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명이 있기에 축복받은 사람임을 묵상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이유가 있는 특별하고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에게 주어진 것을 더욱 선명하게 알 수 있게 되고 내가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도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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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경
연세대교육대학원 석사. 홍익대대학원 교육학 박사 수료. 창천감리교회 장로.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이사로 활동하며 술, 담배, 마약 중독문제와 태아알코올증후군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영혼육이 건강한 미래세대 세워 가기위해 부모와 자녀 교육에 관해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