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선교 속 하나님의 서사

새벽 커피 시음을 마치고 쉬고 싶었다. 새벽에 카페들이 문을 열기도 전에 로스팅 연구실에서 하는 커핑이었고 몸이 무리한다 싶었다. 지난 한 달간 한국에서 방문자들이 3팀이나 되었고 그렇게 사라진 한 달이 어디 갔나 싶을 때였다.

새벽에 카페를 다녀와서 아침을 먹을 때 문자가 하나 왔다. 제이투였다. 제이투는 짧은 파도 영상과 함께 “정말 멋지고 아름다워서 영상 보내봐요”라는 DM 문자였다. 이에 바로 답글을 남겼다. “지금 올라갈게요.” 100km가 넘는 거리였다. 노스쇼어에서 노스랜드를 향해 가게 된다. 오래와/오마하를 지나 티아라이/망가파이, 그렇게 한 시간 반을 달리면 와이푸 코브 캠핑장에 도착한다. 훌쩍 만나러 간다.

서핑을 통해 전도하던 친구였다. 8년간의 긴 뉴질랜드 생활 끝에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정했다. 그가 타던 8피트 롱보드도 대신 처리했다. 이곳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아 다시 한국에 부모님이 계신 시골로 농사를 지으러 간단다. 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시작된 모든 시간이 흘러가는 옛날 영화 필름처럼 지나간다.

이제 그와 쌓아온 시간에 복음을 소개할 시간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낭만과 비례할 정도로 낭비가 많고 느슨한 뉴질랜드의 삶을 한국에 가서 소개하겠다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삶을 꾸미고 산다고 해도 하나님 없이는 그 어디에도 평안이 없으니 도심에서나 농촌에서나 삶은 여전할 것이다. 큰 변화 없이 늘 그런 것처럼 적응되면 또 그럴 것이다. 크게 다르지 않다.

서핑을 마치고 나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장애인 서핑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올해 프랑스 장애인 올림픽에 공식 종목으로 등록된다. 도쿄 올림픽에 이은 서핑의 발전이다. 이런 이야기로 우린 모두 신이 났다. 작년 한국에서 시각장애인 서핑과 자폐 아동 서핑 및 하반신 지체 장애인의 서핑을 함께한 것이 바탕이 된 이야기들이었다. 이때 놀라운 전도의 연결점이 만들어졌다.

장애인 서핑에서 파병 나갔다 돌아온 군인들이 의족을 하고 서핑하는 해외의 프로 서퍼들의 이야기가 나올 즈음이었다. 자기 친구가 교통사고로 팔을 잃었다는 사실을 한국에서 친구를 만나러 온 방문자가 나눈다. 좌절과 절망으로 소망을 잃고 있었던 시간을 넘어 스키로 자신감을 얻고 삶을 다시 정비하고 있다고. 바로 한국에서 만나자고 했다. 다음엔 서핑 처치로 만나게 된다. 집회와 수련회에도 오게 된다 믿고 소망하며 그들을 더욱 진심으로 사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삶의 의미를 찾는 일들을 하는 목사를 보는 눈빛이 그저 그렇게 서핑할 때와는 조금 다른듯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움직이고 계시다는 것, 이 일이 가능한 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으로 거듭난 이들의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가능한 일 아닌가! 그렇게 우리의 여정은 더 멀리 갈 수 있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추적이 삶의 서사로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 너레이티브는 하나님의 서사이다. 결국 역사를 써 오신 주께서 일하신다. 오직 주의 말씀이 승리하리라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짙게 무르익어가고 있다.

다음 날은 한 명의 신학생과 함께하는 중급 스텝업 강습이었다. 스텝업은 비기너 보드를 타다가 숏보드나 퍼포먼스 롱보드로 가기 바로 전에 배우는 비기너-인터미디엇 강습이다. 파도타는 교회 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청년 신학생은 복음과 음악과 운동으로 어떻게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도해 갈지를 고민한다. 곧 한국에 돌아가 섬길 교회와 한국교회를 생각한다.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것 말이다.

오가는 차에서 한국의 현실과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나누고 그들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일하고 있음을 논한다. 우리도 모르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이시다. 감동과 깨달음과 심지어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도전과 의지가 타오르는 것은 분명 우리 내면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쏟아지는 능력이다. 여기에 지혜와 명철함과 시대를 읽는 눈과 마음마저 더해지며 우리의 사역은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과 시대를 품는 사랑으로 거대한 파도가 가로막는 듯한 현실을 뚫고 나아갈 일꾼과 군사와 경기를 치르는 선수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달려 나갈 것이다.

그런 뜻에서 서핑 처치를 교회의 축구동호회나 골프선교회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50년간 선교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연구된 선교적 장치이고 현대음악 예배와 같은 탄탄한 신학적 고민이 담겨있다. 들여다보지 않으면 오해하기 쉽다. 이 신학적 고찰과 지난 50년간 씨름해 온 선교사들의 사실들을 다음 호에서 다루겠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이틀 서핑 다녀와서 몸이 곤하다. 그러나 내 영은 날로 새롭다는 사도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빠르게 마시고는 피로를 잊은 듯 또 물에서 하게 될 거룩한 노동을 준비한다. 육신은 곤하여도 희미하게 흐뭇한 미소를 짓는 이유이다.

이 늦은 오후에는 하나님께 감사의 시와 노래를 올려드리며 찬미로 찬양을 드리고 수고하는 모든 전도자를 도고와 중보로 마음 깊은 곳에 떠올린다. 골방 기도실에서 하늘로 올려 보낸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능력과 지혜로, 깊은 감동으로 전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에게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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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윤
현대문화를 통해 선교하는 제레미 윤(윤성운) 청년들을 사랑하는 목회자. 크리스천 서퍼스 코리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목사/선교사로 전도는 전도전사역Pre-evangelism을 시작으로 직접적인 구원영접까지 긴 삶의 연속을 함께하는 것. 이 비전 품고 서핑을 통해 젊은 이들을 ‘삶’으로 전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