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면부지(生面不知)! 태어난 이후 한 번도 얼굴조차 못 본 남남끼리 결혼을 하고 부부로 함께 산 세월이 40년…. 나의 일생 중 절반 이상을 차지 한 세월을 뉴질랜드에서 살았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질문을 던진다. “옛날에 뉴질랜드 이민 와서 살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어요?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어요?” 단연코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저는요 인간…. 그러니까 로이 윌슨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영어도, 서양 관습도, 그의 건강도, 이런 문제는 오히려 그다음이고요.”
결혼을 결정할 때도 그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오로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영국인이고, 국가 공무원이고, 결혼한 적 없는 총각이며, 나보다 20살 연상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때 당시 내가 갖고 있던 지도에는 뉴질랜드라는 나라가 없었다. 영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아프리카도 아니고, 하와이 어디쯤? 있는 나라일까? 그러나 내 성격상 자잘한 일들을 굳이 따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냥 단순한 것이 좋고, 모르는 게 약이려니…. 간단히 결정했다.
결혼이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일단 결정한 일은 앞으로 전진! 뒤돌아보는 일은 안 한다는 생각이었다. 밀고 나간다. 나가다 넘어지면 또 밀고나간다. 그러다 실패하면? 그 실패는 받아들인다. 책임도 내가 진다. 구차스러운 변명은 안 한다. 그래도 도저히 문제 해결이 안 된다면? 바닷물에 빠져 죽는다는 각오로 결혼을 했다. 사실 뉴질랜드에 와보니, 우리집 코앞이 바다여서 빠지기가 쉬울 수도 있는 환경이다.
바닷물에 빠져 죽을까? 생각하기 전에 잠깐만요! 친정 엄마의 교훈이 있었다. 아주 간단명료하다. ‘사람이 살다 살다 죽을 만큼 힘든 일이 닥쳤을 때…. 해결책은 “죽지 않고 그저 살아만~ 살아만~ 있으면 돼야, 살아만 있으면 돼야.” 지금까지 내가 붙잡고 사는 엄마의 교훈이 내 삶의 원칙이다.
로이가 세상 뜰 때까지 단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대놓고 부른 적이 없다. 엄마랑 동갑인 어른의 이름을 어떻게 감히 부르랴? 서양식 관습을 전혀 몰랐던 나는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실행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큰아들이 태어나고부터 아들이 부르는 식으로 “아빠”라고 불렀다. 그런 호칭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오래전 우리가 웰링턴에 살 때 어느 한국 할아버지가 야단을 쳤다. “어째 당신 남편 로이가 아빠요? 그렇게 부르는 거 틀립니다. 당신 아빠는 한국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내 맘대로~ 그 할아버지 충고를 무시해 버렸다. ‘나 편한 대로 부르면 되는 거지…. 웬 잔소리람?’
영국인 남편 로이 윌슨과 한국 여자 변경숙은 너무나 다른 생각, 다른 관습, 한국과 뉴질랜드의 거리만큼 동떨어진 가치관으로 소소한 일상생활에서 매일매일이 부딪힘의 연속이었다. 특히 결혼 초기에 겪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1년에 5백 번씩 크고 작은 일에 부딪혔다고 계산해 보니 10년이면 5천 번, 40년이면 2만 번이나 부딪히고 싸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평생에 단 한 번도 나와 싸운 적이 없다고 말한다. 오래전 어느 한국 남성이 그에게 경숙과 많이 싸웠냐고 질문했을 때 정색을 하며,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1화 주차는 가장 멀리에!
오래전 키위 주최 무슨 세미나에 간 적이 있다. 가장 먼저 그 장소에 도착한 우리는 가깝고 편한 곳에 주차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굳이 멀리멀리 돌아가 주차를 한다. 볼멘소리로 한 마디 던졌다. “왜 가장 가까운 자리 놔두고 멀리 주차해서 나를 걸어가게 만드냐고요?” 돌아온 그의 대꾸! “우리는 일찍 도착해서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행사 장소까지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행여 누군가 늦게 온 사람이 가까운 곳에 주차하면 빨리 입장하기 쉽지 않겠냐?” “What? 뭐라고요? 누가 알아주는데요? 늦게 온 사람이 자기 탓이지요. 뭐 그런 것까지 우리가 신경 쓸 필요가 있어요? 뾰족구두 신고 한참 걸어가야 하는 나는요?” 하지만 속으로 가만히 투덜거림을 삼켰다. 이러한 소소한 일상의 일들이 로이와 생각이 달랐다.
2화 조개 채취 : 나만 왕따가 된 날!
오래전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이었던가? 우리 식구들이 어느 바닷가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운전 거리 2시간 정도였고,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사람들이 거의 안 보이는 평화롭고 한적한 곳이었다. 깨알만큼 쓰여 있는 안내판(주의 사항)이 있었는데, ‘해변에서 조개 채취 금지’하라는 내용이다. 그곳은 차를 주차시키고 해변까지 한참이나 모래사장을 걸어야만 하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물장난을 하며 한참을 놀았다. 어느덧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주차장까지 모래사장을 걸어 나오는데, 그때 나는 예쁜 조개를 발견했다. ‘오늘 바닷가에 온 기념으로 이 조개를 가지고 가야지’ 눈치를 챈 남편이 나에게 “그대로 놓고 가라”고 한 마디 주의를 준다.
“뭐 이까짓 거 하나뿐인데…. 뭘 그래요? 10개, 100개도 아닌데. 아이고 빡빡하기는 또…. 꽉 막혀가지고. 참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스레 굽히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손에 들고 걸었다.
어느덧 우리 아이들 넷은 눈치를 챘다. 엄마가 아빠 말을 듣지 않고 하는 행동이란 것을…. 자연히 애들은 아빠 좌우로 딱 붙어서 5명이 같이 걸으니 엄마 한 사람은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한 셈이다. 터벅터벅 나 혼자 떨어져서 모래사장을 걸어 나왔다. 한 손엔 그 조개 하나를 끝까지 들고서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묘한 침묵이 흐른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남? 이까짓 조개 하나 가지고. 아이고 융통성이라곤 참. 누가 알아준다고….’ 로이라는 사람은 ‘조개 채취 금지 구역’에서 한 개만 들고나와도 법을 어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3화 들판의 꽃
너무나 화창한 날씨다. 뉴질랜드의 가을 하늘, 들녘에 나갔다. 이름도 다 알 수 없는 수백, 수천 송이 군락으로 피어 있는 꽃의 바다가 장관이다. 봐주는 이 없어도 자연과 어우러져 화사하게 피어 있는 꽃. 하양, 노랑. 빨강의 예쁜 꽃들이 풍성하고 탐스러웠다. 그냥 보고만 가기에는 너무나 예쁘고 아까웠다. 한 무더기 꽃 숲에서 딱 두 송이 꺾어 들었다. 집에 가지고 가야지…. 화병에 꽂아 놓으면 예쁠 것 같다!
어느새 여지없이 내게 핀잔을 한다. “아름다운 꽃, 그냥 여기서 눈으로만 보고 가라! 왜 굳이 이쁜 꽃을 꺾느냐고…. 놓고 가라!” 여지없이 나의 반격도 시작된다. “저 수천 개 핀 꽃송이 중에서 한두 송이 꺾었다고 뭐 티가 나요? 표도 안 나는데…. 아이고, 참 내…. 꽉 막히기는….”
그의 두 번째 반론이 시작된다. “들녘의 이 장소는 우리 소유물이 아니다. 이곳은 카운슬(시)의 소유 지역이다. 남의 소유물에 왜 터치하냐! 왜 우리 영역 밖을 침범하냐?”
“아이고 안 통한다. 누가 알아준다고.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라니까요. 그저 보통 사람일 뿐!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본 예쁜 꽃을 좀 더 오래 보려고 한두 송이 꺾어 가려고 하는데…. 보통 사람이 성인군자 도사에 어떻게 맞추고 살아요! 참 내….”
4화 장애인 주차증 : Kiwi 아줌마
뉴질랜드 정부는 보행상 장애인이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장애인 주차증(Mobility Parking Permit)을 발급해 준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도 그렇게 한다고 생각된다. 특히 뉴질랜드에서의 대형 쇼핑센터는 물론 작은 건물이라도 장애인 주차구역을 확보해야 함이 의무적이다. 주차구역뿐이 아니고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전반적으로 상당히 상위급이라고 할 수 있고, 장애인 운전자나 동승자에게만 허용된다.
주차증은 안쪽 보이는 곳에 걸어놔야 한다. 만약 이 법을 어기게 될 시 벌금을 물게 되어있다. 어느 나라의 경우 장애인 무료 주차 장소에도 불구하고 1/3은 불법 사용자들이 차지한다고 한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남의 것을 빌려 쓰기도 하고, 때론 사망한 사람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가짜로 장애 진단서를 발급해 달라고 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뉴질랜드 사람들은 공공질서, 법을 잘 지키며 이기적인 얌체 행위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2011년 로이의 건강이 더 나빠지면서 지팡이 2개에 의지해야 겨우 걸을 수 있는 몸이 되었다. 그 후 장애인 주차증을 발급받아 그와 함께 외출할 때는 가까운 곳에 주차할 수 있어 조금 편리했다. 그렇지만 그 사용은 반드시 본인이 본인 소유 차에 탑승했을 때 허용됐다. 혹시라도 나 혼자 급할 때? 단 한 번의 사용도 절대 불가다.
어느 날 육류 쇼핑센터에 갔다. 그는 육류(Red meat) 구경을 좋아한다. Rump Steak, Eye fillet, Skirt meat, Sirloin Steak, T bone Steak etc…. 세월아 네월아 한없이 느림보 걸음이다. 반면에 나는 휙! 대충대충 둘러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그날도 그의 투어?가 다 끝나자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나는 차 안에서 기다리겠다고 나왔다.
우리 차 주차 자리에 온 순간 어떤 키위 아줌마가 다가온다. 그리고 갑자기 “따다다다 따다다다…. 쏼라쏼라….” 토끼 눈을 아니 호랑이 눈알을 굴려대며 막 퍼붓는다. 멀쩡한 젊은 동양 여자가 왜 장애인 주차 자리에 주차했냐는 질책인 것 같다. 기가 막혀서 영어를 못 들은 척하고 빤히 그 여자를 쏘아보았다. (so what? 속으로만)
그 여자는 뭔가 나의 변명이나 미안하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 퍼부을 기세다. 그리고 얼마 후 2개의 지팡이에 의지한 남편이 천천히 걸어 나온다. 차 앞까지도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도 왕방울 눈을 굴리며 내게 쏘아붙이는 그 여자. 남편이 차 앞까지 왔을 때 “what’s the matter? What happen?” 힐끗 로이 얼굴,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 왕방울눈 아줌마는 이내 줄행랑을 치고 달아났다.
2018년 11월, 이제 그의 지팡이도 주차증도 다 필요 없어지게 되었다. 7 년 넘게 나는 그의 주차증을 차에 갖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가고 없다. 그런데도 주차증을 반납하거나 버리기가 왠지 섭섭하다. 또 만에 하나 급한 상황에 주차 자리를 혹시 못 찾을 때 한 번쯤은…?
어느 날 아들이 왔다. 아빠가 쓰던 주차증이 내 차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자마자 야단을 친다. 왜 엄마가 이것을 아직도 가지고 있냐고! 반납하던지 잘라서 버리지 않았다고…. “만에 하나 엄마가 한 번이라도 이 주차증을 사용한다면 법을 어기는 거예요. 그리고 벌금을 물고요….”
잔소리가 쏟아진다. ‘어휴…. 저 법! 법! 시어머니 잔소리는 저리 가라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