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능력 . 2

죽음을 뛰어 넘는 감사의 능력
감사를 함에 있어서 다니엘의 감사신앙은 죽음을 뛰어 넘는 감사의 능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감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됩니다.

다니엘의 지혜와 총명은 바벨론의 박사와 술객들보다 뛰어났고 생각이 민첩하여 다리오왕 시절 세 총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특히 다리오왕은 전국을 다니엘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하여 다니엘의 명성과 권위가 높아지자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의 지위를 시기하여 모함할 기회를 찾게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 외에 달리 부정을 저지를 만한 빈틈이 없어 종교적인 문제를 가지고 다니엘을 없이 하려는 음모를 세우게 됩니다.

그 모략은 누구든지 삼십일 동안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죽임을 당하게 하는 조서를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다니엘은 늘 상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던 습관 그대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대부분 이러한 환경이 되면 기도하기는 하지만 많은 갈등을 갖고 기도할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지혜를 짜내면서 믿음생활을 영위해 나갈 것입니다. 그 30일 동안만 기도를 하지 않든지, 아니면 창문을 닫고 기도하거나 숨어서 기도하겠지만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한 기도에 타협 없이 동일하게 기도하였다. 무엇보다도 그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였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믿음을 소유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극한 환경에서의 감사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믿음의 반응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감사와 신앙은 같은 맥락일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신앙을 증진 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감사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믿음의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적 의미에서의 감사는 바른 신앙을 대변해 주는 직접적인 표현이 됩니다.

염려를 감사로 바꾸는 능력
바울 또한 감사의 능력을 전하는 사도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그 염려를 감사함으로 바꾸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염려란 곧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염려와 현재나 미래에 대한 걱정, 또는 자기 자신을 무슨 말로 변호할까 하는 염려와 그 밖에 “많은 일들”로 근심하는 것을 말합니다(마 6:25-28, 34; 10:19; 눅10:41; 12:11).

그런데 이러한 수많은 염려 가운데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사항은 기도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염려에 대한 치료 방법은 바로 기도와 간구에 있습니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바로 기도와 간구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간구에 대한 응답의 조건이 바로 감사이여야 합니다.

헨드릭슨은 이 감사에 대한 응답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간구는 ‘감사함으로’ 아뢰어져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최선의 것임을 알고 그의 뜻을 겸손히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과거에 베풀어 주신 은혜와, 현재의 축복들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기초 위에서의 확신에 대하여 넘치는 감사가 있어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거의 그의 모든 서신들을 하나님께 감사로 시작하고 있다. 그는 그의 서신들 전체에서 거듭 거듭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주장하고 있다. “

바울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소유자이었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기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염려함을 감사함으로 바꾸어 기도하게 되는 부분에 있어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감사는 모든 염려가운데서 하나님의 평강이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기적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감사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이요, 그 절대적인 믿음이 마음을 바꾸고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기적의 현상이 연출됨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숨겨진 감사의 능력
또 다른 하나의 감사는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권능과 기적을 행하신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에 대하여 심판을 선언하실 때에 일어난 감사입니다. 다른 어떤 마을들 보다 더 많은 애정과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권능과 기적을 나타내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배척하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마 11:21-24).

가장 많은 능력을 행하셨던 곳이고, 가장 관심을 많이 두신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배척할 때 그 주님의 심정은 착잡하고 우울하고 괴로우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이런 것들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의존하려는 의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영적으로 그들 자신의 무가치함과 공허함과 무력함을 겸손히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능력과 자비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함을 철저히 알며 스스로 그에게 의탁하고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을 그에게서 받을 줄을 신뢰합니다. 그리하여 구원을 충분히 또한 자유로이 즐기며 그에게 영광 돌리며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이러한 감사에는 절대적 의존 형 일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이 제시되어 있음을 감사하며, 어떤 어려운 환경이나 절망적일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의 모델이 되어 주시며 감사의 실천자가 되어 주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그 안에 감추어진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는 단순한 인사의 한 형태가 아니라 그 감사 속에는 많은 것들의 능력이 있음을 내포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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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재식
그리스도신학대학교(M.Div)와 침례신학대학교(D.Min)에서 공부했으며 청년사역과 다음세대 사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현재 뉴질랜드 대흥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크리스천 자녀교육에 대한 책 ‘하나님이 하셨어요’를 집필하였으며 그 내용을 본지에 연재함으로 다음세대를 어떻게 품어야 할지를 함께 공감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