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모인 공동체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로 인식되지만 원어적 의미는 교회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신약에서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έκκλησία)로 사용되며 이는 한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의 회중을 의미하지 결코 건물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뜻하지만 모든 일반적인 사람들을 뜻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을 뜻하는 것이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와 주인으로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즉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분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구원의 유일한 기초가 됩니다.

또한 그분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다한 절대적 헌신입니다. 그 은혜와 헌신의 산물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공동체를 우리는 교회라고 명명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감사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모임은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은혜 앞에서 감사하는 공동체로 존재되어야 하며 이것을 신앙의 본질로 출발시켜야 합니다.

감사가 신앙의 본질이 되는 이유는 구속의 은혜를 받은 이유이며 그 은혜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와 연합한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엄밀하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을 의미합니다. 마음속에서 사랑과 미움이라는 두 가지 대립적 감정이 서로 부딪혀 혼란과 모순을 야기 시킬 때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기에 개입해 사태를 통제한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일치를 유지하고 그 사명을 신실하게 수행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이때에 평강과 밀접하게 관계 되는 덕목이 바로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는 동질적 특권의 인식으로부터 기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을 이루는 교회는 평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것입니다. 그렇기에 감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본질적 요소가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선물 중에서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한 것에 비교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 메시지이자 신앙의 기본입니다.
그렇기에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기에 교회 공동체는 감사공동체로 존재합니다.


감사로 평가되는 믿음
‘믿음이 좋다’라는 것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일까요? 만약 신앙심을 측량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 신앙심을 평가하는 기준은 매우 다양할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의 삶으로, 예배의 삶으로, 헌신의 삶으로 본인들의 신앙심을 측량할 수 있고 타인의 신앙심도 측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신앙심의 척도를 인간이 잴 수 있는 자격은 없습니다. 인간은 외모만 보고 그 중심은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신앙이 좋은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척도의 기준이 있겠지만 그 많은 척도의 기준 중에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감사로 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사의 근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심이 높을수록 감사 성향이 높아집니다.

감사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은 신앙의 영향을 받아 환경이 그 신앙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바울을 보면 그의 감사는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며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며 만족하는 사람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은 빈부에 처하거나 비천에 처하거나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만족함을 누립니다. 바울의 신앙심은 이러한 감사를 통해서 깊은 영성, 최고의 영성에 도달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를 이해하고 그 감사를 삶 속에서 적용하는 자는 분명히 환경에 따라서 자신의 감정이나 신앙을 쉽게 노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든 환경과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결국은 어떠한 환경이라도 주의 뜻을 믿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감사의 삶을 살게 되면 그 이면에는 반듯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29절에 보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인생들에게 벌어지는 한 가지 한 가지의 사건들이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감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감사의 삶을 신앙과 연결 짓게 된다면 모든 환경의 변화를 주도하는 하나님께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인생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만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자는 감사를 삶속에서 그리고 신앙 속에서 적용하고자 노력하기에 분명히 감사는 신앙심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며 기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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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재식
그리스도신학대학교(M.Div)와 침례신학대학교(D.Min)에서 공부했으며 청년사역과 다음세대 사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현재 뉴질랜드 대흥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크리스천 자녀교육에 대한 책 ‘하나님이 하셨어요’를 집필하였으며 그 내용을 본지에 연재함으로 다음세대를 어떻게 품어야 할지를 함께 공감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