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세상이 참 살만 합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학부모 갑질 사건과 교사의 자살사건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가운데 교육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누구는 교육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하고 누구는 학부모의 교육관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누구의 책임이며, 어떻게, 어떠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이나 답은 없는 상황입니다.

교육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아이들도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백 년의 큰 계획 즉,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고 키워내는 것이며 이를 위해 지원과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를 잘 키우고 싶어하고 그러한 마음으로 자녀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크리스천이라면 자신의 자녀가 세상에 온 목적을 위해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소명의식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모’로서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자녀를 키우고 있는지, 내 아이를 위해 무엇에 더 집중하면서 양육하는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물었더니 약 74%가 자신의 자녀가 성장하면서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분별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이 타인에게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으며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범위안에서 행동하고 사회질서를 지키고 지탄받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David R. Shaffer & Katherine Kipp).

아기들은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부분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않더라도 어른들의 행동과 닮은 방식을 흉내 냅니다. 돌을 갓 지난 아기들도 같이 놀던 다른 아기에게 장난감을 나눠 주고 걸레질을 하거나 청소하는 엄마를 보게 되면 이를 흉내 내면서 부모를 도우려 합니다(Rheingold, 1982).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기들이 자신의 친구가 예방주사를 맞고 아파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를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리기도 하며 위로하듯 장난감을 건네줍니다. 과연 이런 행동들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타인을 배려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어느 시기부터, 어떻게 나뉘게 되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린 아기때부터 반응하는 모든 것은 부모나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좀 더 성장한 아이들도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어른이 친절한 말로 어떠한 행동에 대해 알려준다면 더욱 긍정적이고 적절한 반응을 보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좋아하는 선생님의 말투를 따라하고 그 선생님의 과목을 더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만 보더라도 그러한 행동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성장하고 성숙해지면서 더욱 타인을 이해하고 반응하며 배려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도 간혹 있습니다. 동정심을 적게 보이는 유아의 부모에게서는 훈육을 할 때 비난의 언어나 신체적 처벌 같은 강압적인 행동을 보일때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Zahn-Waxler & King, 1979). 또한, 평소에 합리적이고 훈육에 의존하는 부모들이 동정심 많고 자기희생적인 아이를 양육하는 경향이 있으며 강제적이고 처벌위주의 훈육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부모는 자기중심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아이로 양육한다는 결과가 있습니다(Eisenberg dt al., 2006).

반드시 연구 결과가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가 태어났으니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부모가 되어야 하며,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면 좋을지를 신중히 접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자이자 철학자이며 종교문제 연구가이기도 한 도로시 로 놀테는 자신의 책 『아이들은 삶을 통해 배운다』에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If children live with criticism, they learn to condemn.
꾸지람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비난하는 것을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hostility, they learn to fight.
미움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싸움을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fear, they learn to be apprehensive.
두려움 속에 자라난 아이들은 근심을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pity, they learn to feel sorry for themselves.
동정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기 연민을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ridicule, they learn to feel shy.
놀림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수줍음을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jealousy, they learn to feel envy.
질투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시기심을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shame, they learn to feel guilty.
부끄러워하며 자란 아이들은 죄책감을 배운다.


If children live with encouragement, they learn confidence.
격려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용기를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tolerance, they learn patience.
관용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인내를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praise, they learn appreciation.
칭찬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감사를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acceptance, they learn to love.
수용적으로 자란 아이들은 사랑을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approval, they learn to like themselves.
인정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기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honesty, they learn truthfulness.
정직함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실함을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security, they learn to have faith in themselves and in those about them.
보호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If children live with friendliness, they learn the world is a nice place in which to live.
친절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격려, 관용, 칭찬, 수용, 인정, 정직함, 보호, 친절… 이러한 가치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을 대하는 모든 방식 안에 있었습니다. 저는 도로시 로 놀테 글을 통해 성경적인 가치관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여기며 무엇보다도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갈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특별히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해 보이신 예수님의 교훈은 우리에게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 그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섬김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부모들이 어떠한 태도로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자기 인식하기’ 즉, ‘자기 객관화’라고 합니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잘 알고 있어야 자신의 장단점도 문제점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자신이 자녀를 대하는 태도, 양육방식, 교육에 대한 가치 등을 깊이 살펴보고 고민해 보는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얼마나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대하는 지도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 부모인 나를 통해 나의 자녀도 내 아이의 선생님도 내 이웃들도 살 만한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있어 세상이 참 살만 합니다’. 이제 우리가 이러한 얘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살 만한 세상,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만들어 가도록 오늘도 소망을 품고 열심히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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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경
연세대교육대학원 석사. 홍익대대학원 교육학 박사 수료. 창천감리교회 장로.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이사로 활동하며 술, 담배, 마약 중독문제와 태아알코올증후군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영혼육이 건강한 미래세대 세워 가기위해 부모와 자녀 교육에 관해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