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저 빈곤을 미워합시다

내가 제이슨을 만난 건 7년 전 어느 롯지의 허름한 거실에서였다.

지원을 요청하는 타 단체 코디네이터의 긴급한 연락으로 아무 준비 없이 찾아간 자리에서 만난 그는 이제 막 교도소에서 출소한 모습 그대로 허름한 트레이닝 복과 맨발로 나를 맞고 있었다. 웃을 때는 잠시나마 생글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때때로 퍼져 나오는 두려움을 쉽게 감추지 못하는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교도소를 출소한 직후 가족에게 돌아가 새로운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많은 사람 사이에서 어린 시절 가족과 단절을 경험한 제이슨과 같은 이들은 마땅히 갈 곳도 계획도 없이 뉴질랜드 교정부가 지정한 임시 숙소에서 한동안 지내게 된다.

간단한 인사 후 조금은 편안한 장소를 찾아 이동한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그는 내게 그의 어린 시절과 반복된 절도, 그리고 교도소 생활까지 그저 담담하게 그의 지난 시간을 꺼내 놓았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생활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하지만 나는 그의 당당한 다짐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실패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뉴질랜드의 가난은 많은 경우 어린 시절 부모의 방치와 학대로부터 시작한다. 희망을 잃어버린 부모가 술로 인생을 버텨가는 동안 그 자녀의 성장 과정은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내버려진다.

보살핌을 받지 못한 어린아이들의 삶은 그저 또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 부모의 삶을 답습하기 마련이어서 성장기 위험한 환경의 노출, 이른 가족과의 분리, 이른 임신과 출산, 그리고 가난 속 자녀의 방치로 다시 이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반복된 가난의 굴레는 작고 큰 정서적 어려움과 정신적 장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의 상처를 남겨 놓고 만다.

그 전형적인 빈곤의 굴레를 피해 가지 못했던 것은 제이슨의 부모도 또 그들의 부모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 지긋지긋한 굴레를 함께 끊어 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특히 제이슨처럼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엔 더 할 것이다.


그저 기준에 의해 기계적으로 처리되는 정부 보조금은 개인의 처지와 상황이 무시된 채 지급될 것이고, 경험 많은 고용인들은 단번에 이들을 거절할 것이며, 세상은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 너는 실패자.’라 끊임없이 속삭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예정된 절망 속, 새로운 삶의 계획을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적절한 삶의 회복을 이루기까지 필요한 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찾는 일이었지만 반대로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지원을 적절히 조절하고 초기 정착을 위해 지급되는 소액 융자를 최소화하는 일이었다.

가족으로부터 이른 분리를 경험하는 많은 이들은 건전한 재정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주어진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 없이 허투루 없애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은 큰 빚을 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빚으로부터 시작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고통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특히 중고물품 숍의 견적으로 정부 소액 융자를 이용하는 경우 개인 간 거래와 비교할 수 없이 높은 가격임에도 당장 현금이 없는 이들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곤 한다. 결국 안정되지 못한 삶은 그나마 구매한 물품들을 지키지도 못한 채 빚만 남겨 이후의 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하곤 하는 것이다.

이 구조적 어려움이 목격된 이후 우리 한인들의 기부로 나누어지기 시작한 가구와 생활용품은 단순히 이들의 생활 편의를 향상시키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고, 빚을 최소화 시켜 삶을 안정시키고 미래를 계획하는데 지금까지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정부 보조금 신청 이후 제이슨과 나는 정기적인 정신 상담, 가석방 담당관과의 미팅, 그리고 구직의 과정까지 그에게 가석방의 조건으로 제시된 그리고 그의 삶에 꼭 필요한 과정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그는 상담에도 사뭇 열심이었는데 그가 겪은 어린 시절 하나하나의 어둠을 스스로 들추어낼 때면 상상보다 더 참혹한 현실에 함께 듣고 있는 내 마음이 함께 무너져 내렸다.


우리 사는 세상의 일부는 모두에게 공평할 것 같은 빛조차 모두 받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어둠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 어둠을 한 장 한 장 걷어내는 그의 시간은 지루했으나 제이슨은 그 안에서 조금씩 평화를 찾아갔다.

처음 교도소를 나왔을 때 의도적으로 보이고자 했던 과시용 폭력 성향을 더 이상 드러내지 않고도 낯선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함께 구직의 과정을 시작했다. 가장 어려운 단계다. 세상의 거절을 그저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다 받아내야만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먼저 경찰 이력 조회가 필수인 업종과 정규직은 구직의 대상일 수 없다. 오히려 파트타임으로 조금씩 일의 시간을 늘려 갈 수 있는 곳이면 완벽한 상황이었다. 운이 좋게도 이 상황을 이해한 어느 지인 사장님으로부터 페인트 전 단계인 샌딩 작업을 하는 일을 얻을 수 있었지만 3일 후 그는 동료와 다툼을 이유로 해고 되고 말았다.

건설 현장의 노동자, 잔디 깎기, 이삿짐 운송, 세차…

그로부터 그가 경험한 직종은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만 스무 업종이 넘었고 연간 이직 횟수는 많게는 15회를 넘기기도 했다. 자금 관리에 실패해 때때로 노숙을 해야 했으며 한 지역에서의 낙인은 또 다른 지역으로, 그리고 다른 도시로 그를 내몰았다.

하지만 몇 차례 삶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비록 세상이 그를 거절했을지라도 그는 끊임없이 세상과의 접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다음 달 9월이면 이제 만 7년을 넘긴 제이슨의 최종 범죄기록은 더 이상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아마도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찾을 수 있으리라….

더 이상 정부의 보조 없이 살아 온 시간도 이제 1년을 넘기고 있다. 그동안 트럭 운전을 배운 그는 많은 사람과 만나지 않으면서도 자기의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트럭 드라이버로서의 꿈을 꾸고 있다. 우리가 거절한 그는 이제야 비로소 다시 우리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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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익형
레이드로 대학에서 성서연구와 공공신학으로 학부와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고, 현재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는 나눔공동체 낮은마음의 대표 간사로 일하고 있다. 성도와 교회가 함께 섬기고 있는 낮음의 사역 안에서 교회와 세상의 연대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에 비전을 두고 세상의 낮은 곳에서 일함을 즐거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