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의 역사와 선교

지금까지는 선교학과 이민학의 개론을 살펴보고, 이어서 성경 속에서 나타나는 선교와 성경 속에서 나타나는 이민을 살펴보았다.

이번 호부터는 교회의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선교와 이민을 살펴볼 것이다. 순서는 우선 교회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선교를 살펴보고, 이후에 교회사 속에서의 이민을 알아보는 순서이다.

선교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역사는 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개념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역사, 다른 말로 교회사는 교회 확장의 역사이고, 교회 확장의 역사는 복음의 전파, 다른 표현으로 선교의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에는 신약성경의 형성을 제외한 약 2세기부터 다루어 보려 한다. 이 부분은 초대교회 속 선교가 될 것이고, 5세기부터는 중세교회 속 선교가 될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후 476년을 초대교회의 선교 기간으로 보는 이유는 476년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시기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고, 단 하나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476년을 기준으로 삼을 때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그 근간이 된다.

초대교회 시대에서 복음이 퍼져 나갈 수 있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로마라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잘 정비된 도로망과 무역과 그리고 언어의 통일은 로마 제국의 변방이었던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를 로마의 중심 종교로 탈바꿈되는 일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였다. 더불어서 초기 교회의 확장에 있어서 로마 지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들의 역할도 한 축을 담당하였다.

70년 예루살렘 함락은 유대인들이 정통 유대교를 제외하고 박해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고, 기독교는 유대교와 완전히 분리되어서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즉, 박해는 기독교가 한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로마 전역으로 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복음 확장의 조건이 교통망, 평화, 언어, 이민자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지금 전 세계가 일일 생활로 접어드는 교통편이 있고, 영어라는 언어가 있으며, 우리는 뉴질랜드 속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다. 뉴질랜드에 있는 이민자들의 공동체는 자신들의 고향 땅의 복음화율보다 높은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면 초대교회의 선교는 이민의 선교라고 추측할 수 있게 된다.

박해에 의해서 흩어지기 시작하던 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에 선포한 밀라노 칙령에 의해서 사라지고, 오히려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379년 데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서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즉, 이전의 교회의 선교들은 핍박과 억압을 피해 다니며 흩어지는 선교였지만, 밀라노 칙령 이후로 황제들의 후원을 받으며 선교를 하게 된 것이다. 이는 선교의 방향과 전략에 있어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 예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플라비우수 데오도시우스(379-395)는 394년에 공식적으로 이방제사 제도와 신전을 폐쇄시키고, 그로 인해서 황제들의 지원을 받은 선교를 통해서 ‘집단 개종’이라는 새로운 선교의 흐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기독교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하면서 등장한 기관이 수도원이다. 수도원은 선교의 훈련 기지이며 파송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수도원에서 훈련받은 수도사들은 여러 지역으로 파송을 받아 선교하는 현재의 선교사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 예로 패트릭(396-493)으로 아일랜드 선교에 큰 기여를 하였고, 그로 인해서 아일랜드 지역에는 ‘집단 개종’이 일어났다. 패트릭을 중심으로 하는 아일랜드의 집단 개종의 선교를 더 알고 싶다면 조지 헌터 III(George Hunter III)의 “The Celtic way of Evangelism”의 책을 추천한다.

지면상 400년의 교회 역사 속 선교를 매우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로마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선교의 흐름이 초대교회의 선교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초대교회 속 선교를 로마로부터 유럽권의 선교로만 단순화하면 우리는 그 흐름이 서쪽으로만 진행되었다고 착각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이 땅에 복음이라는 물방울이 이 세상에 떨어졌을 때 그 흐름은 단 한 방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이 받아진 대접에 물방울 하나를 떨어뜨리면 그 파장은 동서남북 모든 곳으로 퍼지게 된다. 복음도 마찬가지였다.

앞의 내용들은 초대교회 선교의 흐름 속에서 서방지역 또는 유럽지역을 향한 역사였다면, 반대로 동방지역을 향한 선교의 흐름도 있었고 아프리카로 퍼지는 흐름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인도와 페르시아 제국 안에 있던 오쉬로엔, 아디아벤, 아르메니아가 중요한 기독교 선교지였다. 특히 오쉬로엔의 왕인 아브가르(Abgar) 8세는 콘스탄티누스보다 이전에 기독교인이 되어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하였다.

또한 인도는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도마의 선교지로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선교 사역을 기념하여 성 도마교회가 세워져 있기도 하다. 고대 기록들에 따르면 마가는 남쪽 방향인 이집트로, 열심당원 시몬은 아프리카로 향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즉, 교회의 역사 속 복음의 확장은 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온 세상을 향하여 동시에 퍼져 나갔다.

정리하자면, 초대교회 시대의 선교는 개별적인 관계 전도에서 집단이 개종되어지는 흐름으로,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흩어지는 선교에서 각 지역에 정착해 가는 선교로, 독립 선교사에서 기관 선교사의 흐름으로 발전해 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흩어지는 선교가 역할을 할 때에 나타나는 것은 ‘도시’가 먼저 선교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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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균
장로회신학대학교 학부, 신대원, 일반대학원 졸업(한국교회사 전공). 오타고대학교 박사(선교학, 이민자 신학, 종교사회학 전공). 파머스톤노스 한마음교회 담임. 알파크루시스 강사. 현지교회와 이민자를 연결하는 꿈을 가지고, 선교와 이민이라는 주제를 다루려 한다. 관심분야는 선교학, 이민자 신학, 한국교회사와 아시아신학이다.